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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 참전 미군, 64년 늦게 '동성무공훈장' 가슴에 달아

빌 포스터 미국 연방하원의원(좌)과 한국전 참전용사 피터 버리
빌 포스터 미국 연방하원의원(좌)과 한국전 참전용사 피터 버리[데일리 헤럴드]

(시카고=연합뉴스) 김 현 통신원 = 한국전쟁에 참전, 최전방에서 포병 화력을 유도하는 전방 관측 장교로 복무한 퇴역 미군이 공로를 인정받기까지 64년이 걸렸다.

1일(현지시간) 시카고 언론에 따르면 시카고 교외도시 라일에 거주하는 피터 버리(89)는 90을 바라보는 나이에 미국 연방정부로부터 한국전 참전 공로를 뒤늦게 인정받고 동성무공훈장(The Bronze Star Medal)을 가슴에 달았다.

버리는 지난 28일, 노환으로 입원 중인 네이퍼빌 에드워드종합병원에서 지역구 정치인 빌 포스터 연방하원의원(61·일리노이·민주)으로부터 훈장을 전달받고 "이 별을 가슴에 달기 위해 딸도 (포스터 의원에게) 편지를 쓰고, 나도 편지를 썼다"면서 "포스터 의원이 답을 주고 연방 당국과 접촉해 수훈을 성사시켜주었다"고 감격스러운 마음을 표했다.

한국전쟁 참전 당시 피터 버리 중위
한국전쟁 참전 당시 피터 버리 중위[데일리 헤럴드]

버리는 스물두 살이던 1950년 한국에 파병돼 1953년까지 미 육군 3보병사단 58포병대에서 전방 관측 임무를 맡았다.

그는 "망원경을 이용해 적군의 행동을 관찰하고 있는데 중공군 포탄이 날아왔고 망원경이 산산조각이 났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잔해 속에 4명의 동료가 묻혀있었다"면서 "잔해 더미를 파헤치고 보니 1명은 숨져있었고, 2명은 처참하게 부상했으며, 나머지 1명은 온몸을 떨고 있었지만 무사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버리는 한국에서 군 복무를 마친 후 동성무공훈장을 받게 될 것이란 사실을 통보받았으나 서류 작업에 착오가 생겨 훈장을 손에 넣지 못했고, 이후 60년 이상 마음속에 늘 큰 아쉬움으로 남아있었다.

버리는 포스터 의원의 도움이 없었다면 끝내 훈장을 가슴에 달지 못했을 것이라며 고마움을 전했다.

에드워드종합병원 응급실 직원들도 버리의 건강상태가 더 악화되기 전 훈장 수여식을 가질 수 있도록 포스터 의원 측과 일정을 조율하는 등 최선을 다했다.

또 해외참전용사들의 모임 VFW(Veterans of Foreign Wars) 회원들도 행사에 참석해 경의를 표하고 축하했다.

데일리 헤럴드는 "한국전 참전 용사 모자를 쓰고 행사에 참석한 버리는 국가가 울리자 간병인의 도움을 받아 휠체어에서 일어섰고, 모자를 벗어들고 국기를 응시했다"고 전했다.

포스터 의원은 행사에서 아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소개했다. 그는 2008년 한국인 변애숙씨와 재혼했다.

한편, 동성무공훈장은 미국 정부가 전쟁에 나가 영웅적이거나 가치있는 성취를 이룬 군인을 기리기 위해 1944년 3월 제정했으며, 1941년 12월 이후 공적에 소급 수여된다.

한국전쟁 참전 공로를 뒤늦게 인정받아 동성무공훈장을 가슴에 단 피터 버리
한국전쟁 참전 공로를 뒤늦게 인정받아 동성무공훈장을 가슴에 단 피터 버리[시카고 abc방송 화면 캡처]

chicagorho@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7/06/02 14:12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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