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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말 소설 대여점은 문학의 산실"…日교토대 한글소설 분석

송고시간2017-05-28 13:44

유춘동 순천향대 교수 "도서 환경 변화에 따라 다양한 필사본 제작"

지난해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열린 '세책과 방각본' 전시에 재현된 조선시대 세책점. [연합뉴스 자료사진]

지난해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열린 '세책과 방각본' 전시에 재현된 조선시대 세책점.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조선시대 후기에 접어들면서 '소설 읽기'는 새로운 도시 문화로 부상했다. 한양의 중심지와 시장 주변에는 한글소설을 빌려주는 대여점이 급격하게 늘었다.

소설 대여점에서 대여하는 소설 필사본은 '세책'(貰冊)이라고 불렸다. 세책은 책을 빌린 사람들이 작품 평가나 세태 한탄 등을 기록한 낙서가 있어 중요한 사료로 평가된다. 하지만 지금은 많이 사라져 국내외에 90여 종만 남아 있다.

유춘동 순천향대 교수는 일본 교토대 도서관에 있는 세책 고소설을 분석해 19세기 소설 대여점이 도서 환경에 따라 다양한 필사본을 제작했고, 이렇게 만들어진 책이 구활자본(구한말 활판인쇄기로 찍은 책)의 저본이 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28일 밝혔다.

교토대 도서관에는 모두 11종, 28책의 세책 고소설이 있다. 이들 책은 모두 1897∼1899년 서울 아현동의 세책점에서 30장 내외로 필사됐다.

유 교수는 교토대의 세책 고소설 중 '장한절효기', '장백전', '제갈무후전'을 분석했다.

장한절효기는 여성의 정절과 자식의 효를 강조한 작품으로, 구활자본과 비교하면 자구가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유 교수는 "아현동 세책 고소설 장한절효기는 구활자본의 원천이 세책이었다는 점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자료"라고 설명했다.

중국인 주인공 장백의 영웅적 면모를 다룬 장백전은 세책 필사본 외에도 방각본(坊刻本, 목판을 이용해 대량으로 찍은 책)과 구활자본이 존재한다. 시기적으로는 세책과 방각본이 19세기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구활자본은 20세기 초반에 처음 인쇄됐다.

유 교수는 교토대의 장백전과 방각본 장백전을 비교한 결과 방각본이 인기를 끌자 세책업자가 발 빠르게 새로운 필사본을 만들어 배포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는 "세책점은 단순히 기존에 만들었던 책을 계속 보수하면서 대여했던 것이 아니라, 독서 시장 환경의 변화에 따라 전략적이면서도 유동적으로 움직였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경향은 '삼국지연의'의 일부를 발췌한 제갈무후전에서도 드러난다. 교토대의 세책 제갈무후전은 모두 세 권으로 구성됐는데, 이는 한 권짜리 방각본을 베껴 나눈 것이다.

유 교수는 "방각본이 필사본보다 재미있다고 생각되자 새로운 책을 만든 것"이라며 "방각본의 가격이 비쌌기 때문에 이를 쉽게 볼 수 없는 독자들을 겨냥한 전략이었다"고 말했다.

한편 유 교수는 교토대의 세책을 수집한 인물이 종전에 알려진 이마니시 류(今西龍)가 아니라 가와이 히로타미(河合弘民, 1873∼1918)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1907년 동양협회전문학교 교사로 조선에 들어온 가와이는 그해 세책을 한꺼번에 구매했다.

유 교수는 "필사본 세책 고소설은 1900년대 들어와 구활자본에 밀리기 시작했는데, 가와이는 사료적 중요성을 알고 구매한 것 같다"며 "세책 텍스트에 대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 교수가 교토대 세책을 분석한 논문은 한국서지학회 학술지 '서지학연구' 제69집에 실렸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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