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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돌문화] ① 돌 틈에서 나고 자라 돌 틈으로 돌아가다

"생활 속의 문화유산…소박한 삶·척박한 자연환경 이겨낸 지혜 담겨"

[※ 편집자 주 = 문화는 지역의 자연환경과 역사적 배경 속에 사람들이 만들어낸 생활양식입니다. 따라서 문화는 그 지역의 특성을 고스란히 드러냅니다. 화산섬 제주 지천에 널린 화산석, 즉 돌은 제주 사람들에게 극복해야 할 대상이자 생활의 원천이었습니다. 삶의 지혜와 예술적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는 제주 돌문화는 그 자체가 제주도 문화입니다. 제주 돌문화의 기원과 현재, 미래를 3편에 걸쳐 송고합니다.]

돌담길 걷는 관광객
돌담길 걷는 관광객(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지난 15일 한 관광객이 제주돌문화공원 입구 돌담길을 걷고 있다. 2017.5.28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돌·바람·여자가 많아 삼다도(三多島)로 불리는 제주도.

'삼다' 가운데 특히 돌은 제주의 산과 들, 바다 어디를 가든 곳곳에 널려 있어서 농사·신앙·방어·생활도구 등 목적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쓰이며 제주만의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냈다.

돌문화는 척박한 제주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일생을 함께 일구고 가꿔온 삶 그 자체다.

◇ 화산섬 제주, 돌문화의 기원

제주는 지금으로부터 170만년 전 신생대 제4기 동안 진행된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섬이다.

화산 폭발 흔적 간직한 제주 수월봉
화산 폭발 흔적 간직한 제주 수월봉[연합뉴스 자료사진]

화산에서 분출한 뜨거운 용암이 지표면으로 흘러내려 식어가고 또다시 흘러 쌓이기를 반복, 대지를 이루고 수많은 동굴과 지형지물을 형성했다.

중국·한반도와 육로로 연결됐던 제주가 오늘날과 같은 섬으로서의 환경을 갖추게 된 것은 마지막 빙하기가 끝난 불과 1만년 전 무렵이었다.

돌이 바람과 바다에 쓸려 깎이고 깎여 모래와 흙이 되고, 그 위로 풀이 돋고 나무가 자랐다.

'돌이 많은 섬(石多)' 제주는 이렇게 생겨났다.

돌은 그 자체가 화산섬 제주의 자연환경이었고, 사람에게는 극복해야 할 대상이었으며 자연스레 제주 문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밭과 들판 등 곳곳에 널린 돌은 농사짓는 데 많은 어려움을 줬고, 해안가에 솟아난 바위와 돌은 배를 대기 어렵게 했다.

1521년 제주도에 유배 와서 '제주풍토록'(濟州風土錄)을 쓴 김정(金淨)은 책에서 "자갈이 많고 평토가 절반도 되지 않아 밭을 가는 자는 마치 생선의 배를 도려내는 듯하다"며 돌을 생선의 가시에 비유해 밭갈이의 어려움을 표현했다.

제주의 돌문화 풍경
제주의 돌문화 풍경(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지난 15일 관광객들이 제주돌문화공원을 둘러보고 있다. 2017.5.28

조선 숙종 때 제주목사를 지낸 이형상 역시 저서 '남환박물'(南宦博物)에서 "(제주의) 사방 둘레는 칼날 같은 돌로 둘러쳐져 있어, 썰물과 밀물에 관계없이 배를 붙일만한 포구가 없다"고 기록했다.

그렇다고 돌이 제주 사람에게 부정적인 영향만을 준 것은 아니다.

제주의 많은 생활용품이 돌을 재료로 만들어졌고, 돌은 제주 사람들의 생활 일부분과 다름이 없었다.

그래서일까.

옛말에 제주 사람들은 '돌 틈에서 나고 자라서 돌 틈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제주 유채밭과 청보리밭 가른 밭담 풍경
제주 유채밭과 청보리밭 가른 밭담 풍경[연합뉴스 자료사진]

◇ 밭담에서 말방아까지 가지각색 돌문화

제주에 돌이 많다는 것은 조금만 눈을 돌려 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사람들은 우선 집이나 밭, 무덤의 경계를 돌을 쌓아 만들었다. 집 울타리의 돌담을 '집담', 밭의 돌담을 '밭담', 무덤의 돌담을 '산담'이라 일컬었다.

집담과 밭담이 서로 이어져 '올레'라는 골목길이 생겼고, 크고 작은 올레는 다른 지역에서는 느끼기 힘든 은은하면서도 정겨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산과 들에 시커먼 현무암을 쌓아 구불구불 끝도 없이 이어진 돌담은 마치 검은 용이 용틀임을 하는 듯하다 해서 흑룡만리(黑龍萬里)라는 명칭도 붙여졌다.

제주 사람들은 소와 말을 집 안에 가둬 기르지 않고 집 밖에 풀어놓아 길렀는데, 마소의 침입을 막고 거센 바람으로부터 화산회토가 날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집·밭·무덤 주변에 돌담을 둘렀다.

해녀들이 옷을 갈아입고 쉬는 공간에도, 마을의 신당을 모신 성스러운 공간에도 돌담을 쌓았다. 밀물을 따라 들어온 바닷고기를 잡기 위해 바다에 쌓은 돌담인 '원담' 등 다양한 돌담은 제주만의 독특한 풍경을 자아낸다.

정주석과 말방아
정주석과 말방아(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제주돌문화공원에 전시된 정주석과 말방아. 지난 15일 촬영. 2017.5.28

돌하르방을 필두로 한 다양한 석상들과 마을의 허한 곳을 막아주는 일종의 액막이 역할을 하는 방사탑은 현대인들에게 예술적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집안에 들어가는 길목을 지켜주는 정주석, 곡식을 찧는 말방아, 말방아로 보리를 찧기 전에 알맞게 수분을 적셔주는 보리통, 실내 온도를 높여주던 화로의 일종인 봉덕, 현무암 솥뚜껑, 밭갈이에 쓰이던 곰돌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돌을 이용한 각종 살림도구는 민속 공예품으로서 가치와 의미를 지닌다.

이외에도 화산석으로 빚어낸 선사시대 고인돌과 돌로 이뤄진 불교유적, 제주의 성곽, 조선시대 국영목장의 존재를 증명해주는 잣성, 세계 유일의 제주 전통 돌가마(石窯·석요),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지역 고유의 옛 등대인 도대불 등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제주의 중요한 문화재다.

고영철 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은 "제주 돌문화의 가치 중에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바로 생활 속의 문화유산이라는 점"이라며 "제주 사람들의 소박한 삶과 척박한 자연환경을 이겨낸 지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많은 돌문화가 있지만, 방사탑·환해장성·잣담·도대불 등을 보면 돌을 인위적으로 깎아 반듯하게 쌓는다기보다 돌 자체의 모양을 그대로 이용해 쌓으면서 자연스러움과 아름다움을 살렸다"며 "오늘날 흉내 내기 힘들 정도로 돌을 볼 줄 아는 눈과 기술이 월등함을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림읍 금능리 해안의 원담
한림읍 금능리 해안의 원담[연합뉴스 자료사진]

bjc@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7/05/28 07:0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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