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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이매진] 오늘날 한비자에서 배울 점은

송고시간2017-06-13 08:01

김원중 교수 "법치 통한 변화·개혁 모색해야"

김원중 단국대 한문교육과 교수 [사진/임귀주 기자]

김원중 단국대 한문교육과 교수 [사진/임귀주 기자]

(용인=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한비자(韓非子·기원전 280~?)는 중국 전국(戰國)시대 칠웅(七雄) 중 가장 작고 약한 한(韓)나라의 명문 귀족 후예였다. 그는 '법치 리더십의 창시자' '동양의 마키아벨리'라고 불린다. 군주의 권력을 유지하고 사람을 통제하며 신하들에게 권력을 빼앗기지 않기 위한 방법 등 통치술의 모든 것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의 저서 '한비자'는 진나라의 시황제에게 전해져 중국 최초의 통일 국가를 세우는 주춧돌이 됐다. 유비의 아들 유선은 이 책을 읽고 40년간 촉나라를 수성할 수 있었다. 도대체 한비자는 어떤 주장을 펼쳤던 것일까.

김원중(54) 단국대 사범대학 한문교육과 교수는 중국 고전 전문가다. 논어, 손자병법, 정관정요, 명심보감, 삼국지 관련 책을 내고, 2011년에는 세계 최초로 사마천의 사기(史記)를 개인 번역했다. 지난해엔 전 20권 55편의 한비자를 완역했다.

김 교수는 한비자의 핵심은 신상필벌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법치주의'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저서 '한비자'에는 현대의 국가 지도자나 기업 경영자가 새겨들어야 할 주옥같은 내용이 많다고 한다. 군주론과 제왕학의 고전 '한비자'가 우리 시대에 전하는 가르침에 대해 들어봤다.

-- 한비자는 어떤 인물입니까.

▲ 한비자는 전국시대 한나라의 서자 출신 공자(제후의 자제)입니다. 한마디로 비주류였죠. 전쟁이 끊이지 않던 당시에 한나라는 서쪽으로 진(秦)나라, 북쪽으로 위나라, 동쪽으로 제나라, 남쪽으로 초나라 등 강대국에 둘러싸여 나라의 존망이 위협받는 상황에 처해 있었어요. 한비자는 한나라 왕에게 법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을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울분을 터트리며 10만 자에 달하는 '한비자'라는 책을 썼습니다.

한비자는 '비운의 사상가'이기도 합니다. 그는 난언(難言·말하기의 어려움) 편과 세난(說難) 편을 쓰면서 군주를 설득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을 얘기했습니다. 막상 자신도 군주를 설득하는 데 실패하고 희생양이 되고 말았어요.

조나라의 사상가인 순자(荀子) 문하에서 공부한 한비자는 천성적으로 말더듬이였지만 문장력은 굉장히 탁월했다고 해요. 진나라의 시황제를 도와 천하를 통일한 이사는 한비자와 함께 순자 밑에서 수학했는데, 그는 자신의 능력이 한비자만 못해 열등감을 가지기도 했죠.

-- 한비자가 집필한 '한비자'는 어떤 책입니까.

▲ 한비자 이전에 법(法)을 강조한 상앙, 술(術)을 강조한 신불해, 세(勢)를 강조한 신도 등 세 갈래의 학파가 있었죠. 한비자는 이 세 학파의 주장을 두루 수용하고 발전시켜 법가(法家)사상을 집대성했습니다. '한비자'는 강대국에 둘러싸인 한나라가 약소국의 비애와 굴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법가를 바탕으로 강력한 군주론과 제왕학으로 무장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이 담긴 책입니다.

-- 한비자가 주장하는 핵심 내용은 무엇입니까.

▲ 한비자가 내세운 통치론의 핵심은 '법·술·세'입니다. 법은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지켜야 할 원칙이고, 술은 신하의 능력을 검증하는 방법이며, 세는 법과 술을 행하려고 할 때 군주가 가지고 있어야 하는 권세, 즉 카리스마입니다.

한비자는 특히 술을 중시했어요. 군주가 신하를 검증하는 술수를 알지 못하면 신하를 다스릴 수 없고, 신하를 다스리지 못하면 간신이 양산돼 결국 간신이 군주와 신하 사이의 소통을 방해하고 나라가 어지러워진다고 했죠. 그래서 군주는 항상 마음을 숨기고 신하를 시험하고 현명하게 불신(不信)해야 한다고 했어요.

한비자는 술에 관해 얘기하며 동상이몽(同床異夢)을 말합니다. 위나라 사람 부부가 기도를 드리는데 아내가 삼베 100필을 얻게 해달라고 해요. 남편이 "어찌 그리 적은 것이오?"라고 묻자 아내는 "이보다 많으면 당신은 첩을 살 것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하죠. 한비자는 군주와 신하 사이를 이해관계로 봤어요. 그래서 군주는 나라를 통치하기 위해 신하의 일거수일투족을 끊임없이 살피고, 신하는 자기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군주의 마음을 헤아리려고 한다는 거죠. 결국 인간의 성품은 선하다는 관점에서 벗어나 모든 것이 이해관계에 의해 결정된다는 말입니다.

-- 한비자가 유가(儒家)를 신랄하게 비판한 이유는 뭔가요.

▲ 한비자는 "나라가 영원히 강성할 수 없고 영원히 약할 수도 없다. 법을 받드는 사람이 강하면 나라가 강해질 것이고 법을 받드는 자가 약하면 그 나라도 약해질 것이다"고 말하며 철저한 법치를 강조하죠.

당시 유가, 병가, 묵가는 따르는 무리가 많고 세력도 커서 군주들에게 존중을 받았습니다. 한비자는 당시 비주류이긴 했지만 영향력을 펼쳤던 유가가 지나치게 인치(仁治)와 도덕을 강조하고 있다며 비판했죠. 초나라 장왕, 제나라 환공, 연나라 소공은 영토를 크게 확장하며 당대를 제패했는데 다들 죽자마자 나라가 몰락했어요. 리더가 바뀌었다고 나라가 곧바로 망한다는 것은 사람에 의한 통치에는 문제가 있다는 거죠. 한비자는 리더십의 공백을 최소화하는 힘을 법치, 즉 시스템으로 봤습니다. 또 유가가 주장하는 인과 덕은 비리가 싹트기 가장 좋은 환경이라며 비판했죠.

-- 한비자는 인간의 본성이 악하고 사익만을 추구한다고 주장합니다. 너무 비정한 인간관을 가졌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 한비자는 당시 부모가 딸이 태어나면 죽이는데, 그것은 아들은 성장하면 재산을 불려주고 장구한 이득을 가져오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죠. 즉 인간의 본성은 이해득실만을 따질 뿐 도덕은 생각하지 않는다고 봤어요. 이렇게 부모와 자식 간에도 이익을 추구하는데 군주와 신하 사이에 무슨 의리가 필요하냐는 거죠. 이런 관계에서 군주가 신하에서 충성을 요구하거나 도덕만으로 다스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고, 신하를 다스리는 유일한 방법은 법뿐이라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반드시 악한 면만 있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죠. 이렇게 볼 때 한비자의 인간관은 인간성의 상실을 가져올 여지가 있습니다.

-- 진의 시황제는 한비자의 사상을 어떻게 받아들이게 됐습니까.

▲ 한비자의 뛰어난 통찰력을 알아본 것은 시황제였어요. 그는 우연히 '한비자'를 읽고 "이 사람을 만나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고 했죠. 진시황은 한비자를 얻기 위해 한나라를 공격해 그를 데리고 옵니다. 아마 한비자를 모사로 삼으려고 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친구 이사는 한비자가 진시황의 총애를 받을까 두려워 모함했고 결국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하죠.

하지만 한비자의 사상은 진나라 통치의 근간이 됩니다. 한비자는 군주와 신하가 본능적으로 각자의 이익을 추구한다고 했어요. 한비자의 통치술은 법치에서 출발하는데 법은 인간을 구속하며 강제력을 생명으로 하죠. 한비자의 법은 약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군주가 통치를 위해 휘둘렀던 수단이었던 셈이죠.

오두 편은 나라를 좀먹는 벌레 5마리에 관한 글입니다. 좀벌레는 유가, 세객, 종횡가, 권문귀족, 유협 등 5가지 부류를 말하죠. 그런데 첫 번째가 유가에요. 진시황 이전에 진나라에서는 많은 이들이 개혁과 병법을 얘기했지만 항상 걸림돌은 유가였어요. 진시황 당대에도 이사가 개혁을 하려 하자 다른 신하들은 요와 순 임금을 들먹이며 개혁을 막았죠.

한비자는 역사는 진화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견되면 시대와 환경의 변화에 순응해 새로운 방법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봤어요. 그리고 수주대토(守株待兎) 이야기를 합니다. 송나라 농부가 밭을 갈다가 토끼가 그루터기에 부딪혀 죽는 것을 보고는 쟁기를 버리고 그루터기를 지키며 다시 토끼 얻기를 기다렸지만 얻을 수 없어 송나라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됐다는 거죠. 변화나 개혁에 부응하지 못하고 과거에 사로잡혀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것을 비판하고 있죠. 진시황은 한비자의 사상을 가지고 나라를 통치하면 진나라가 반석에 올려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김 교수는 "최측근이야말로 군주가 가장 멀리해야 할 대상"이라고 말한다.

김 교수는 "최측근이야말로 군주가 가장 멀리해야 할 대상"이라고 말한다.

-- 한비자의 사상을 받아들였지만 시황제 사후 얼마 지나지 않아 진나라가 망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 흔히 비인간적이고 가혹한 형벌을 주는 법가 때문에 진나라가 망했다고 하는데 저는 꼭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분서갱유를 단행하는 등 문화말살정책을 취한 진시황의 급진적인 개혁시도가 일차적 원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만, 한편으로 그가 만일 객사하지 않았다면 진나라의 운명은 바뀌었을 겁니다. 진시황은 문자, 도량형, 화폐를 통일했는데 핵심은 최초의 지방자치제도라고 할 수 있는 군현제죠. 전국을 군과 현으로 쪼개 거기에 맞는 사람이 다스리도록 했습니다. 왕족이나 혈족이 아닌 법에 따라 나라가 다스려지도록 했죠. 그래서 진시황을 '위대한 폭군'이라고도 합니다.

이사는 "태산은 흙을 양보하지 않기에 그 높음을 이룰 수 있고, 하해는 작은 물줄기를 가리지 않기에 그 깊음을 이룰 수 있다"며 인재개방론을 내세웠어요. 어리석은 왕족이 나라를 차지하고 백성을 도탄에 빠뜨리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죠.

하지만 진나라는 중국 역사상 가장 무능하고 어리석다는 호해에게 왕권이 넘어갔습니다. 리더의 부재로 리더십의 혼란이 초래됐고, 최측근 조고의 농간으로 인해 궁정의 권위가 몰락하고 민심이 이반하면서 멸망에 이르게 된 거죠.

-- 최근 한비자가 새삼 주목받는데요.

▲ 팔간(八姦) 편은 나라를 가장 위험하게 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비자는 동상(同床·처와 첩), 재방(在傍·측근), 부형(父兄·친인척)을 먼저 이야기하고 맨 마지막에 사방(四方·이웃 나라 제후)을 언급하죠. 한비자는 군주가 최측근에 의해 자리를 잃거나 죽을 확률이 무려 절반에 달한다고 했어요. 우리도 어느 정부에서건 아들, 형, 친구 등에 의해 국정이 농단됐죠. 한비자는 최측근이야말로 군주가 가장 멀리해야 할 대상이라고 주장하죠. 바로 이런 점을 지적했기 때문에 리더들이 한비자를 읽으면 가슴을 때리고 후벼 파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해요.

특히 한비자는 사물을 굉장히 냉정하게 봤어요. 끊임없이 조짐이나 미세한 것에 초점을 맞췄어요. 망징(亡徵·망하는 징조) 편에 보면 천길 제방도 땅강아지나 개미구멍에 의해 무너지고, 나무는 좀벌레 때문에 부러진다고 했죠. 모든 문제는 작은 조짐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한비자의 일관된 생각입니다. 나라의 붕괴 과정과 존망의 조짐을 말하면서 가장 믿는 사람이 바로 자신을 가장 위험에 빠뜨릴 자라고 얘기하죠.

-- 새 대통령이 취임했습니다. 한비자의 관점에서 국가 지도자가 가장 명심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요.

▲ 당(唐) 태종 이세민은 "배는 군주에 비유되고, 물은 백성에 비유된다, 물은 배를 띄울 수 있지만 뒤집을 수도 있다"는 말을 되새겼어요. 정권이 안정기에 접어들었을 때 태종이 "창업과 수성 중 어느 것이 어려운가"라고 물었을 때 창업공신 방현령은 창업이 더 어렵다고 했지만 제왕을 보필한 위징은 변화하는 민심을 거론하며 수성의 어려움을 피력하고 태종이 초심을 유지하도록 했죠. 당 태종의 소통과 열린 리더십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죠.

저는 현대 국가에서 이런 소통과 열린 리더십도 중요하지만 법치에 바탕을 두고 적절한 술과 세에 입각한 통치를 20~30% 정도 가미하면 좋을 것 같아요. 또 "사람 좋다"는 평가가 리더에게 꼭 좋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군주가 너무 선하면 안 된다고 한비자가 얘기했듯이 군주는 필요할 때는 냉정해져야 하죠.

-- 지도자가 추구해야 할 인사원칙은 뭘까요. 또 등용한 사람은 어떻게 대해야 합니까.

▲ 인사의 원칙은 대탕평입니다. 적(敵)이라도 능력이 있다면 등용해야 하죠. 능력에 따라 등용하지 않으면 결국 지난 정부가 저질렀던 과오를 되풀이할 수 있습니다. 한비자는 자신 곁에 사람을 두려 하지 말고 멀리하라고 합니다. 마음을 잘 아는 사람이 바로 독이 될 수 있기 때문이죠. 또 하고 싶은 말을 절대 하지 말라고 합니다. 바라는 것을 말하는 순간 신하들은 군주가 원하는 것에 맞추게 되고, 간신이 생기게 된다고 하죠. 가족이나 지인은 가장 믿고 의지해야 할 존재이지만 이들이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늘 경계해야 합니다.

한비자는 군주가 신하를 다스릴 술책으로 '칠술'을 제시합니다. 첫 번째는 참관(參觀)으로 여러 신하의 말을 두루 참조하고 관찰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필벌(必罰)로 죄지은 자에게는 반드시 벌을 주라는 거죠. 상예(賞譽)는 일을 시키면 반드시 거기에 대해 합당한 보상을 하라는 겁니다. 그다음은 일청(一聽)인데 여러 사람이 함께 피리를 연주하면 누가 잘하는지 모르니까 한 사람씩 연주하면 실력이 드러나듯이 한 명 한 명 따로 이야기를 들으라는 거예요. 궤사(詭使)는 의심하는 신하를 계책으로 부린다는 것입니다. 이 밖에 군주는 알고 있는 것을 모르는 척 물어보고(협지·挾智), 말을 거꾸로 해 반대되는 일을 하라(도언·倒言)고 합니다.

--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있는데요.

▲ 한비자는 신상필벌을 강조하면서도 '법불아귀'(法不阿貴)라고 했습니다. "법은 귀한 사람에게 아부하지 않는다"는 뜻이죠. 법은 만인에게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어요. 우리는 조선왕조 500년을 지나 지금까지 유가가 사회를 지배하고 있죠. 조선 시대에 유가에 법가, 병가 등 제자백가 사유를 접목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지 못한 것이 아쉽죠. 특히 우리는 사적 관계를 중요시합니다. 관계를 만든다는 것은 그만큼 부정과 비리가 발생할 소지가 많아질 수 있다는 거에요. 가능하면 사적 관계보다는 공적인 틀에서 조직이 움직이는 열린 시각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 국민행복을 실현하기 위해 지도자가 명심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요.

▲ 한비자는 신상필벌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본다고 했어요. 핵심은 공평하게 해야 한다는 거죠. 우리는 불공평한 것에 대한 불만이 매우 큽니다. 만약 제가 학생을 평가할 때 감정이 개입되면 공정성에 문제가 생기게 될 것이고 다른 사람들은 불만을 품겠죠. 또 회사에서 채용이나 승진은 능력에 따라 해야 하는데 감정이 개입한다면 안 되겠죠. 한비자는 이런 불평 부당함이 없도록 감정개입을 자제하고 냉정하게 보자고 요구합니다. 우리가 모두 불편하지 않고 행복해지려면 공평하고 공정한 신상필벌이 중요하죠. 지도자는 국가를 공정하게 관리할 의무가 있습니다.

-- 향후 계획을 소개해 주시죠.

▲ 최근 논어 전면개정판을 출간했습니다. 논문 작업도 게을리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학술서 출간도 계획하고 있고요. 지금은 대학, 중용, 채근담 번역서 출간 작업을 하고 있죠. 삼국지 개정판도 곧 내놓을 예정입니다. 건전하고 도덕적이며 공정한 사회나 조직을 위해 이 시대의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인문학 강연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 교수는 "법은 만인에게 공평하게 적용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 교수는 "법은 만인에게 공평하게 적용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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