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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도 선문답 나눴다"…문집서 빠진 불교문서 98편 확인

정민 한양대 교수 "강진 유배 시절, 승려들과 폭넓게 교유"
'시의순첩'(示意洵帖). 다산이 초의에게 써준 증언첩이다. [정민 교수 제공]
'시의순첩'(示意洵帖). 다산이 초의에게 써준 증언첩이다. [정민 교수 제공]
'제초의순소장석옥시첩'의 일부. 원나라 승려 석옥 청공의 시에 다산과 초의가 차운(次韻, 다른 사람의 시운을 써서 지은 시)한 시를 나란히 쓴 글이다. 그림은 신헌이 그렸다. [정민 교수 제공]
'제초의순소장석옥시첩'의 일부. 원나라 승려 석옥 청공의 시에 다산과 초의가 차운(次韻, 다른 사람의 시운을 써서 지은 시)한 시를 나란히 쓴 글이다. 그림은 신헌이 그렸다. [정민 교수 제공]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법훈(法訓)은 모름지기 깨달음의 관문에 투철해야 한다."(訓也須超透悟關) 이를 듣고 법훈이 "어찌해야 깨달음의 관문을 터득합니까"라고 묻자 스승은 "새 그림자 찬 방죽을 건너가누나"(鳥影渡寒塘)라고 답했다.

순천 송광사 승려 보정(1861∼1930)이 펴낸 책 '백열록'(栢悅錄)에 실린 이 글에서 스승과 법훈은 누구일까. 스승은 바로 전남 강진에 유배를 왔던 다산(茶山) 정약용(1762∼1836)이고, 법훈(?∼1813)은 강진 다산초당에서 멀지 않은 백련사(옛 만덕사) 주지 혜장(惠藏, 1772∼1811)의 제자 승려였다. 즉 유학자인 다산이 스님에게 득도하는 방법을 조언한 것이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새 그림자 찬 방죽을 건너가누나'라는 다산의 뜬금없는 대답이다. 정약용은 선문답을 통해 새가 휙 지나가는 풍경을 언급하면서 사물의 형상에 집착하지 말고, 툭 터진 마음을 지니라고 가르쳤다.

다산이 강진 유배 시절, 이처럼 승려들과 폭넓게 교유했음을 보여주는 글이 다수 발굴됐다. 정민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백열록'을 비롯해 '만덕사지'(萬德寺志), '대둔사지'(大芚寺志) 등에서 다산의 문집인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에 실리지 않은 불교 관련 글 98편을 추가로 찾아냈다고 3일 밝혔다.

정 교수가 지금까지 확인한 다산의 불교 관련 글은 백열록 11제(편) 35수, 동사열전 6편, 만덕사지 8편, 대둔사지 4편, 훗날 다성(茶聖)으로 일컬어진 초의(草衣, 1786∼1866)를 비롯해 여러 승려에게 당부와 훈계의 내용을 기록해 보낸 증언첩(贈言帖) 17편, 승려 12명에게 쓴 편지 52편이다.

그는 지난 3월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열린 학술대회에서 '다산의 불교 관련 일문(佚文·사라진 글) 자료의 종합적 정리'라는 제목으로 98편을 모두 소개했다. 이 가운데 일부는 논문 등을 통해 소개한 바 있으나, 전체를 공개한 적은 없다고 정 교수는 말했다.

'다산유산양세묵보'. 다산이 승려 기어 자굉을 위해 써준 훈계의 글이다. [정민 교수 제공]
'다산유산양세묵보'. 다산이 승려 기어 자굉을 위해 써준 훈계의 글이다. [정민 교수 제공]

정 교수는 "다산의 문집에 불교와 관련된 글은 산문 15편과 시 91수가 있는데, 문집에 실리지 않은 글은 이보다 훨씬 많다"며 "다산이 남긴 불교 관련 자료는 규모가 상당하고, 깊이도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산은 1801년부터 18년간 강진에 머물면서 백련사, 대둔사 승려들과 친밀하게 지냈다. 그는 승려들을 지휘해 사찰의 역사를 정리한 책을 펴냈고, 여러 승려의 비문과 탑명(塔銘·탑에 새긴 글), 건물 중수기 등을 지었다. 하지만 다산의 문집에는 이 같은 글이 대부분 누락됐다.

이에 대해 정 교수는 "유배에서 풀려나기를 기대했던 다산은 승려들과 어울려 지낸다는 공연한 구설을 만들기 원하지 않았다"면서 "문집에 실린 불교 관련 글 중에는 다산이 처음 썼던 글과 내용이 다소 다른 것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산은 자신이 써넣고도 다른 사람의 이름을 빌려 발표하거나 아예 처음부터 대작하는 방식으로 글을 지었다"고 덧붙였다.

'제초의순소장석옥시첩'의 전체 모습. [정민 교수 제공]
'제초의순소장석옥시첩'의 전체 모습. [정민 교수 제공]

특히 다산이 쓴 증언첩과 서간문은 그가 개별적으로 승려에게 내렸던 지침과 그가 생각한 이상적 승려의 모습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정 교수는 "다산이 비문이나 탑명을 써준 승려만 해도 6명이 있고, 별호를 지어준 승려도 6명이나 됐다"며 "정약용은 제자들의 성향과 자질, 그들이 처한 상황에 따라 명심해야 할 가르침을 눈높이에 맞춰 제시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산의 불교 자료는 그의 저작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데도 잊힌 채 방치됐다"며 "다산학의 지평을 넓혀주는 불교 자료는 앞으로도 지속해서 발굴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psh59@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7/05/03 08:0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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