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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역사 2cm] 아낙네들 금 모으기로 파리 점령 독일군 내쫓았다

(서울=연합뉴스) 황대일 기자 = 몽골 국민이 외채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려고 발 벗고 나섰다고 한다.

나랏빚 약 7천억 원을 갚으려고 현금과 금은보석은 물론, 유목민에게 가장 소중한 말까지 내놓았다.

몽골인은 땔감을 사기 위해 끼니를 줄여야 할 형편인데도 국난 극복에 기꺼이 동참한 것이다.

한국이 외환위기를 겪은 1997년 전국 금 모으기 운동을 떠올린다.

몽골 경제는 활황을 보이다가 4년 전부터 원자재 가격 약세로 침체했다.

지난해 강풍과 가뭄이 겹쳐 가축이 떼죽음을 당한 것도 경제난을 부추겼다.

금 모으기 원조 국가는 프랑스다.

[숨은 역사 2cm] 아낙네들 금 모으기로 파리 점령 독일군 내쫓았다 - 2

프랑스는 1871년 독일 전신인 프로이센과 치른 전쟁에서 완패했다.

국왕 나폴레옹 3세가 경솔하게 선전포고했다는 점에서 패전은 예고된 참사였다.

치밀하게 전쟁을 준비한 프로이센 재상 비스마르크와 대조적이다.

비스마르크는 러시아·이탈리아를 우군으로 삼고 영국은 중립으로 묶는 식으로 프랑스를 고립시킨다.

군대 훈련과 참모 기능에서도 프랑스군을 능가했다.

프랑스는 인도차이나 원정과 멕시코 내전 개입 탓에 전투력을 많이 상실했다.

그런데도 전쟁을 강행했다가 연패 끝에 국왕이 프로이센군에 붙잡히게 된다.

나폴레옹 3세가 항복하고서 풀려났지만 대가는 혹독했다.

1871년 1월 파리 교외 베르사유 궁전 거울 방에서 프로이센 국왕 빌헬름 1세가 독일제국 탄생을 선포했다.

빌헬름 1세는 이곳에서 초대 독일제국 황제로 추대된다.

프랑스 왕족 결혼식이나 외국 대사 접견 장소로 쓰인 거울 방이 국치 현장으로 전락한 것이다.

독일군은 전쟁 승리를 자축하려고 파리 시내에서 행진을 벌였다.

[숨은 역사 2cm] 아낙네들 금 모으기로 파리 점령 독일군 내쫓았다 - 3

외국 점령군이 수도 시가지를 누비는 장면을 본 파리 시민은 치를 떨었다.

급기야 노동자들이 중심이 돼 사회주의 자치 정부인 파리코뮌을 세워 항전을 이어간다.

그러나 파리코뮌은 약 70일 만에 해체된다.

독일 등 외국 지원을 받은 정부군이 무자비하게 학살하고 투옥했기 때문이다.

이때 최소 1만 명이 숨지고 4만여 명이 군사재판에 넘겨졌다.

파리코뮌 소탕전이 끝날 무렵 베르사유 궁전에서는 치욕적인 프랑크푸르트 조약이 체결된다.

50억 프랑 배상, 알자스·로렌 할양, 배상금 완납 때까지 프로이센군 파리 주둔 등이 조약에 담겼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프랑스인은 울분을 삼키며 배상금 모금에 나선다.

현금은 물론이고 금, 은, 구리 등 돈 되는 물건은 앞다퉈 내놓았다.

아낙네들은 손에 끼던 금가락지까지 빼내 기증했다.

1907년 대한제국 국채보상운동 당시 여성들이 비녀와 가락지를 내놓던 광경과 닮았다.

국채보상운동이 일본 방해 등으로 중단된 데 반해 프랑스의 배상금 모금은 대성공이었다.

불과 석 달 만에 50억 프랑을 모두 갚아버린 것이다.

비스마르크는 이 소식을 듣고 "평생 씻을 수 없는 실수를 했다. 배상금을 두세 배로 올렸어야 했는데"라며 후회했다고 한다.

배상금 상환이 어렵다고 보고 군대를 장기 주둔시켜 파리를 영토로 삼으려던 계획이 차질을 빚은 탓이다.

독일군은 마지못해 철수한다.

이후 프랑스는 절치부심하며 파리 몽마르트르 언덕에 사크레쾨르 대성당을 짓는다.

로마네스크·비잔틴 양식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지만, 건축 동기는 숭고하다.

신의 힘으로 국민통합을 이뤄 패전 치욕을 되풀이하지 말자는 취지에서 건축한 것이다.

성당 앞에는 이런 결의를 반영해 루이 9세와 잔 다르크 청동상을 세운다.

루이 9세는 두 차례 십자군 원정을 지휘하다 1270년 숨져 성인 반열에 오른 왕이다.

투철한 신앙심으로 무장한 왕이 희생한 덕에 국가가 번영한다고 프랑스 국민은 믿었다.

잔 다르크(1412~1431년)는 애국을 상징하는 프랑스 영웅이다.

영국과 치른 백년전쟁에서 연패하던 프랑스군을 승리로 이끈 공적 때문이다.

잔 다르크 고향은 군인들이 순례하며 충성을 맹세했다.

독일을 통일해 독일 제국을 건설한 프로이센의 외교관이자 정치인, 오토 폰 비스마르크
독일을 통일해 독일 제국을 건설한 프로이센의 외교관이자 정치인, 오토 폰 비스마르크

프랑스 와신상담은 반세기 만에 결실을 본다.

1차대전 승전국 프랑스는 베르사유 궁전 거울 방으로 패전한 독일 대표단을 불러들인다.

독일 대표단은 여기서 항복하면서 천문학적 액수의 전쟁배상금을 물어주는 조약에 서명한다.

프랑스는 47년 전 거울 궁에서 당한 수모를 확실하게 앙갚음한 것이다.

독일이 전범국 멍에를 쓴 것은 3대 황제인 빌헬름 2세의 독선 때문이다.

그는 제국주의 정책을 반대하는 명재상 비스마르크를 해임하고서 식민지 쟁탈전에 뛰어들었다가 완패했다.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은 온 국민이 합심하면 어떠한 국난도 극복할 수 있다는 금언을 입증한 사례다.

반대로 전쟁 승리에 도취해 오만과 아집에 빠져 약소국을 짓밟으면 반드시 망한다는 경고 의미도 있다.

hadi@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7/05/05 09:0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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