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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조선 고아들의 어버이였던 이들

송고시간2017-05-0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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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고아들의 어버이였던 이들 - 소다 가이치, 우에노 다키

'망리단 길'이라는 별칭에 각종 음식점과 카페가 들어서고 있는 합정역 인근. 부산한 거리를 조금 벗어나면 이 땅을 위해 헌신한 많은 선교사들이 묻힌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이 있습니다.

이곳에 묻힌 수많은 외국인 중 유일한 일본인은 '소다 가이치'와 그의 부인 '우에노 다키'입니다. 이들이 이곳에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1899년 대만 길거리, 젊은 시절 방황하던 소다 가이치는 술에 만취한 채 노상에서 쓰러져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때 무명의 한국인이 그를 업고 여관으로 데려가 치료를 해주고 밥값도 내어 주었습니다.

그로부터 6년 뒤인 1905년, 소다는 은인의 나라인 한국에 은혜를 갚으리라 결심하고 황성기독청년회(현 서울 YMCA) 일본어 선생으로 취직했습니다. 이 무렵 월남 이상재 선생에게 감화를 받아 기독교인이 된 그는 복음을 전파하며 조선의 처참한 현실을 보게 됐죠.

"죄 없는 조선사람을 즉시 석방하라"

그는 일본인임에도 불구하고 105인 사건으로 누명을 쓴 YMCA 동료들의 석방을 위해 사건을 조작한 데라우찌 총독에게 항의하는 등 총독부의 만행을 규탄했습니다.

*105인 사건 : 1911년 일제가 민족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사건을 조작해 105명의 애국지사를 투옥한 사건.

이후 같은 기독교 신자인 우에노 다키와 결혼했죠. 소다가 국내 최초 보육원 가마쿠라 보육원(영락보린원의 전신)의 원장으로 추대되면서 이들 부부는 본격적으로 고아 돌봄 사역을 시작합니다.

다키 부인은 이화학교와 숙명학교 교사도 사임하고 전임 보모로 일했죠. 물론 쉽진 않았습니다. 고아원에서 자란 청년이 항일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소다가 취조를 당하기도 했죠.

"젖 좀 주세요" "아이가 울고 있어요. 젖 좀 물릴 수 있을까요?"

버려진 아기를 안고 이집 저집 젖동냥하다 구박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1921년부터 1945년 동안 천 명이 넘는 아이들을 정성을 다해 돌봤습니다.

1945년 일제의 패망 이후, 일본으로 돌아간 소다는 한 손에는 세계평화라는 표어를, 또 다른 한 손에는 성경책을 들고 다니며 일본의 회개를 외쳤습니다.

한국에 남은 우에노는 끝까지 아이들을 돌보다 1950년 1월 눈을 감았습니다. 1961년 한경직 목사의 초청으로 한국에 돌아온 소다도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다 이듬해 3월 9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죠

그가 세상을 떠난 해 우리 정부는 일본인 최초로 소다 가이치에게 문화훈장을 추서했습니다. 어버이 날인 오늘, 죽는 순간까지 조선의 고아들을 돌봤던 이들의 사랑을 기억하면 어떨까요?

(서울=연합뉴스) 박성은 기자·윤혜인 인턴기자

junepe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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