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검색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배너
배너

[실시간뉴스]

최종업데이트YYYY-mm-dd hh:mm:ss
검색

[숨은 역사 2cm] 조선군 치욕 '쌍령전투'…4만명이 330명에게 궤멸

(서울=연합뉴스) 황대일 기자 = 일본군이 태평양전쟁에서 패배한 과정을 분석한 책이 인기를 끈다.

수치스러운 전쟁을 기억함으로써 과오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일본인 각오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일본군은 국민 보호라는 기본 사명을 망각한 채 무모한 전투를 벌여 수많은 장병을 사지로 몰아넣었다.

미성숙한 국가에서 탄생한 군은 근거 없는 독선 탓에 군 체질을 개선하지 않았고, 결국 국가를 파국으로 이끌었다.

인도 임팔전투 당시 모습
인도 임팔전투 당시 모습

임팔전투는 일본군에 내포된 근본결함을 가장 잘 보여준다.

일본군이 인도를 차지하려고 임팔로 진격했다가 궤멸한 전투다.

일본군은 1941년 미얀마를 점령한 뒤 국경을 맞댄 인도에 군침을 흘린다.

인도를 장악하면 교착상태에 빠진 중국 전선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미얀마와 맞닿은 인도 동북부 임팔은 지형이 워낙 험난해 공격은 쉽지 않았다.

해발 2천m를 넘는 고지대인 데다 빽빽한 정글로 덮여 탱크나 대포가 지나갈 수 없었다.

험준한 산악지대를 70㎞ 이상 통과하는 데 필요한 식량도 없었다.

전력은 연합군에 비해 크게 뒤졌다.

병력은 절반 수준이었고 무기와 탄약도 많이 부족했다.

연합군 항공 전력은 2천 대로 100대에 불과한 일본군을 압도했다.

일본 화가가 그린 임진왜란 당시 해상 전투도
일본 화가가 그린 임진왜란 당시 해상 전투도

무다구치 렌야 18사단장은 이런 현실을 고려해 한때 인도 침공 불가론을 주장했다.

15군 사령관으로 진급한 1943년에는 돌변한다.

1942년 미드웨이 해전에서 대패하고 육군도 1943년 과달카날 전투에서 크게 져 일본 본토마저 위태로워진 현실을 고려한 결정이었다.

전세를 뒤집지 못하면 불리한 조건으로 종전을 맞는다는 강박증이 군부에 팽배했다.

문제는 모든 작전이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무다구치 사령관이 내놓은 식량난 해법은 코미디 수준이다.

일본인은 초식 민족이어서 정글에 널린 풀과 나뭇잎을 먹을 수 있다며 식량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정글 지대는 트럭 대신 말과 소 힘을 빌려 통과한다는 수송작전도 제시했다.

짐 나르는 가축을 비상식량으로 활용하면 일석이조라는 자화자찬까지 늘어놨다. 부족한 무기와 탄약은 영국군을 습격해 조달하기로 했다.

병사는 물론, 지휘관조차 납득하지 못할 정도로 한심한 작전이었다.

마침내 1944년 3월 일본군 6만5천 명은 미얀마 북부 친드윈 강 쪽으로 진군한다.

소 3만 마리, 말과 노새 1만2000마리가 그 뒤를 따른다.

가축이 실은 보급품은 3주 분량이었다.

연합군 물자를 강탈하지 못하면 고산 정글에서 굶어 죽을 판이었다.

재앙은 폭 1km 찬드라 강을 건널 때 시작됐다.

전투식량 등을 실은 가축이 수천 마리나 익사하거나 떠내려갔다.

연합군 전투기가 포격했을 때는 가축 떼가 놀라 정글 속으로 달아났다.

이 때문에 군수 장비와 식량을 대부분 잃어버린다.

전투에서도 연합군에 밀렸다.

연합군은 정글 기습에 능한 일본군을 개활지로 유인해 우세한 화력을 퍼부어 승리했다.

세계에서 강우량이 가장 많은 임팔이 우기로 접어들자 풍토병과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병사가 속출했다.

설상가상으로 하극상까지 벌어진다.

참상을 견디다 못한 31사단장이 작전 중지를 건의했다가 무산되자 사령관 허락 없이 부대를 후퇴시켰다.

다른 지휘관도 공격 명령에 잇따라 반기를 들었다.

일본군은 2개월간 정글에서 소모전만 펴다 퇴각한다.

살아서 돌아온 장병은 1만5천 명에 그쳤다. 5만 명이 굶주림과 질병 등으로 죽은 것이다.

무다구치는 종전 후 도쿄 전범재판에 넘겨졌으나 무죄로 석방된다.

일본군 5만 명을 잃음으로써 사실상 연합군을 도운 공로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라는 후문이 있다.

임팔전투 못지않게 치욕스러운 패전이 우리나라에도 있었다.

1637년 1월 2일 경기도 광주시 쌍령에서 일어난 전투다.

청 태종이 형제 대신 군신 관계로 대우해달라고 요구했다가 거부되자 12만 명을 이끌고 조선을 침공한 지 한 달쯤 지났을 때다.

인조는 강화도로 피신하려다 길목을 차단당하자 남한산성으로 들어간 상태였다.

남한산성에 고립된 인조를 구원하려고 경상 좌병사 허완과 우병사 민영이 군사 약 4만 명을 이끌고 출전한다.

허완과 민영 부대는 쌍령 양쪽에 진을 치고 나무 울타리를 세워놓고 청병 공격에 대비했다.

전투는 왼쪽 저지대를 맡은 허완 부대에서 먼저 시작한다.

청군은 곤지암 일대를 점령하고서 조선군 동태를 살피려고 기마병 33명을 보냈다가 충돌한 것이다.

화승총으로 무장한 조선군은 청군이 사정권에 진입했을 때 사격을 했으면 완전히 소탕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문관 출신 지휘관이 겁에 질린 듯 갑자기 공격 명령을 내려 자중지란을 겪는다.

소총수들이 난사하면서 준비해온 탄약이 순식간에 떨어졌다.

조선군은 탄약을 받으려고 허둥지둥했고, 멀찍이 떨어진 청군은 이를 눈치채고 곧바로 반격했다.

조선군은 전투 의지를 완전히 상실한 채 앞다퉈 달아나느라 서로 밟고 밟혀 죽어 시체가 산을 이뤘다.

심리적 공황이 극심한 탓에 일등포수조차 총 한 발 쏘지 못해 방어선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우측 능선에 주둔한 민영 부대도 대참사를 당한다.

조총 불꽃이 화약통에 떨어져 폭발하면서 수십 명이 죽은 게 화근이었다.

폭음에 놀란 조선군이 우왕좌왕할 때 팔기군 300여 명이 급습해왔다.

조선군은 총과 칼, 활을 모두 버리고 도망치려다 줄줄이 압사하거나 절벽에 떨어져 죽는다.

사방에서 추적해온 청군의 칼에 맞아 목숨을 잃는 병사도 부지기수였다.

[숨은 역사 2cm] 조선군 치욕 '쌍령전투'…4만명이 330명에게 궤멸 - 2

쌍령전투에서 조선군 약 1만 명이 사망하고 8천여 명이 중경상을 입은 것으로 추정된다.

경기도 여주 인근에 대기하던 경상감사 심연은 쌍령 패전 소식을 듣고 조령으로 후퇴한다.

인조는 최대 병력을 보유한 경상도 근왕군이 맥없이 무너지고 왕자들이 피신한 강화도가 함락했다는 소식에 결국 투항한다.

남한산성에 들어간 지 47일 만에 성 밖으로 나와 삼전도에서 청 태종에게 큰절하는 치욕을 겪은 것이다.

쌍령전투 청군이 300명이라는 숫자를 놓고 논란이 있다.

부대 편제 등을 보면 3천~7천500명이라는 반론도 있다.

이 숫자를 인정하더라도 쌍령전투는 치욕스러운 패전이다.

지휘관 무능과 병사 훈련 부족 등이 복합 패인이다.

인조반정과 이괄 난 등 지배층 권력투쟁에 실망한 백성의 전투 의지 상실도 큰 요인이다.

누가 왕이 되든지 무슨 상관이냐고 자조하던 상황에서 병사들이 목숨을 아끼는 것은 당연지사다.

[숨은 역사 2cm] 조선군 치욕 '쌍령전투'…4만명이 330명에게 궤멸 - 3

임진왜란 칠전량전투와 한국전쟁 현리전투도 어처구니없는 패전이다.

원균이 지휘한 조선 수군은 칠천량해전에서 완패해 거북선 3척과 판옥선 90여 척을 잃었다.

그나마 부하 배설이 판옥선 12척을 갖고 도주한 덕에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현리전투에서는 국군 3군단이 중공군과 북한군에 포위돼 전멸했다.

당시 군단장과 사단장급 지휘관이 도망치고 장병 1만9천 명이 전사하고 군 장비 70%를 잃어버렸다.

일본 못지않게 중국도 치욕스러운 패전 역사를 잘 기억한다.

중국 산둥성 웨이하이에 건립된 갑오전쟁박물관이 그런 곳이다.

청나라 해군이 1894년 기습 공격한 일본군에 1천200명 죽고 이듬해에는 주력 함대마저 침몰한 사건을 알리려고 건립됐다.

박물관 화단에는 "나라 잃은 치욕을 잊지 말고 해양강국을 이루자"는 큰 글씨가 쓰여있다.

[숨은 역사 2cm] 조선군 치욕 '쌍령전투'…4만명이 330명에게 궤멸 - 5

한반도를 침략한 중국과 일본이 패전을 곱씹으며 군사 대국화 길로 나가는데 정작 피해국인 한국은 패전을 감추는 데 급급하다.

중고교 역사교과서에 을지문덕, 강감찬, 이순신 등 전쟁 영웅은 자세히 소개하지만, 쌍령전투는 싣지 않았다.

한반도 주변에 포진한 강대국 생리를 인식하고서 평화를 지키려면 부끄러운 역사를 지금이라도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되기 때문이다.

hadi@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7/05/03 09:00 송고

광고
댓글쓰기
배너
광고
AD(광고)
광고
많이 본 뉴스
많이 본 뉴스
종합
정치
산업/경제
사회
전국
스포츠
연예ㆍ문화
세계
더보기
AD(광고)
광고
AD(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