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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역사 2cm] '우주식량' 감자 200년 전 프랑스에선 악마 농산물

송고시간2017-05-02 09:00

(서울=연합뉴스) 황대일 기자 = 세계 '빅3' 경제 대국 일본이 감자 파동을 겪고 있다.

흉작으로 국민 간식으로 불리는 감자 칩 생산을 중단한 것이다.

농민단체가 수입을 반대해 감자 부족 사태는 당분간 지속할 전망이다.

벼·밀·옥수수 다음으로 많이 생산하는 감자는 미국과 유럽에서 주식으로 이용된다.

기후와 토질이 나빠도 잘 자라고 다양한 영양소와 필수 아미노산을 함유하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지구온난화 등 기상이변에 대비한 '안보 식량'으로 재배된다.

유엔은 2008년 '국제 감자해'로 지정했다. 개발도상국에 식량으로서 감자 중요성을 일깨워 주자는 취지에서다.

영화 <마션>에서 화성에 혼자 생존하게 된 맷 데이먼이 감자 농사를 짓는 장면

영화 <마션>에서 화성에 혼자 생존하게 된 맷 데이먼이 감자 농사를 짓는 장면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감자를 우주식량으로 개발한 상태다.

감자는 원산지 페루에서 1565년 유럽에 처음 소개됐을 때는 애물단지였다.

먹으면 지옥으로 떨어지고 난치병에 걸린다는 유언비어 때문이었다.

유럽에서 잦은 흉년으로 굶어 죽는 사람이 속출해도 기피 대상이었다.

러시아와 독일, 프랑스는 황제까지 나서 재배를 권장했으나 성과가 미미했다.

감자 보급에 가장 앞장선 인물은 독일 프리드리히 2세(1712~1786년)다.

독일은 농지가 부족하고 악천후가 잦아 식량난이 거의 매년 되풀이됐다.

흉년에는 허기진 배를 채우려고 이웃 마을을 약탈하는 사례가 잦았다.

독일 작센 왕조 오토 1세가 962년 신성로마제국을 세우고 머잖아 혼란에 빠진 것도 식량난 탓이다.

'감자 대왕' 이란 별명이 붙었던 프리드리히 2세

'감자 대왕' 이란 별명이 붙었던 프리드리히 2세

프리드리히 2세는 감자가 배고픔을 해결할 것으로 확신하고 힘으로 밀어붙인다.

감자를 저주하는 농민 정서를 고려한 조처다.

1744년 농민들이 군인 감시 속에서 감자를 심도록 강요한다.

운반과 재배, 보급 등은 군대가 맡았다.

이후 감자는 왕위 계승권을 놓고 오스트리아와 벌인 전쟁에서 승리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감자를 전투식량으로 삼아 7년간 장기전을 펼쳐 이긴 것이다.

이때 프리드리히 2세에게 '감자 대왕'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가 살던 궁전에는 지금도 관광객이 감자를 올려놓고 참배한다.

러시아 농촌에서도 감자 저항이 심각했다.

끼닛거리가 없어 굶어 죽을지언정 감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숨은 역사 2cm] '우주식량' 감자 200년 전 프랑스에선 악마 농산물 - 3

아담과 이브가 낙원에서 먹은 금단 열매가 사과가 아니라 감자라는 괴소문 때문이다.

누구라도 먹고 나면 신성 모독으로 지옥에 떨어진다는 미신도 생겼다.

타락한 악마 딸 무덤에서 감자가 처음 생겼다는 이야기도 나돌았다.

가짜뉴스를 퍼트린 장본인은 구교도 지도자들이었다.

러시아 제국을 세운 표트르(1682~1725년) 대제의 근대화 정책에 반대해 허위사실을 유포했다.

표트르는 서구 문명을 견학하려고 유럽을 순방했을 때 감자를 들여왔다.

그러나 감자 보급 노력은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다.

종교 지도자들이 퍼트린 유언비어를 대다수 농민이 철석같이 믿은 탓이다.

설득이 어렵다고 판단한 표트르는 극약 처방까지 쓴다.

농민 목에 칼을 들이대 죽이겠다고 위협해 감자를 억지로 먹게 한 것이다.

그런데도 성과가 미미하자 예카테리나 2세는 당근과 채찍을 병행한다.

1840년 전국에 포고령을 내려 모든 공유지에 감자 종자 전용 농지를 만들게 했다.

감자 저장과 요리 방법을 적은 전단도 배포했다.

감자를 길러 풍작을 거둔 농민은 포상한다고 약속했다.

뼛속까지 뿌리내린 미신 탓에 백약이 무효였다.

우랄이나 볼가 강 일대에서는 농민 폭동까지 일어났다.

프랑스는 고도 심리전으로 감자를 보급한다.

감자는 18세기까지 돼지 먹이로 쓰였다.

한센병이나 성병을 일으킨다는 소문 때문이다.

의회는 감자를 심으면 벌금을 물리도록 포고령을 내렸다.

이런 악조건에서 감자 보급에 몸 던진 사람은 농학자 파르망티에와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였다.

먼저 감자요리를 20가지 이상 만들어 왕실 연회장에 내놓는다.

굶어 죽어도 감자는 외면하는 국민 의식을 바꿔보려는 시도였다.

앙투아네트는 감자 꽃으로 머리를 장식해 무도회에 참석하기도 한다.

왕비 옷이나 장식품은 귀족 부인을 경유해 금방 유행이 된다는 계산에서다.

궁궐 정원에 감자를 심어 경비병을 세우기도 했다.

귀중한 식량이라는 인상을 주려는 조처다.

심리전은 주효했다.

일부 농민이 정원에 잠입해 감자를 훔쳐 키우고 감자 거부 심리가 크게 개선됐다.

파르망티에는 오늘날 다양한 프랑스 감자요리 이름에 붙어 있다.

감자 전도사로서 공로를 인정받은 결과다.

[숨은 역사 2cm] '우주식량' 감자 200년 전 프랑스에선 악마 농산물 - 4

감자를 좀 더 일찍 보급했다면 프랑스 혁명을 막을 수 있었다는 견해도 있다.

배고픔에 분노한 시민이 폭동을 일으킬 당시 감자 빵이 충분했는데도 먹지 않았다.

감자를 보급하려는 노력이 일찍 빛을 보지 못한 탓에 앙투아네트는 단두대에서 처형됐다.

이후 불과 수년 만에 감자는 전국으로 퍼져나가면서 고질적인 빈곤 문제가 해결됐다.

지금은 프랑스인이 미국인보다 감자를 두 배 이상 소비한다.

영국에서도 감자는 장기간 푸대접을 받았다.

기피 사유는 유럽 대륙과 달랐다.

감자는 음식재료 가운데 가장 천한 것으로 간주했다.

하늘을 나는 조류가 최고, 걸어 다니는 동물은 중간, 땅속 식물은 최하로 차별한 탓이다.

영국은 아일랜드인을 겨냥해 "돼지 식량 감자나 먹는 국민이다"고 비하하기도 했다.

공장주들이 감자를 노동자 음식으로 쓰려다가 역풍을 맞기도 했다.

프랑스와 영국이 전쟁을 치르면서 상황은 돌변한다.

곡물 가격이 치솟자 영양분 많고 저렴한 감자를 찾는 사람이 늘어난 것이다.

유럽에서 가장 먼저 식용작물로 받아들인 나라는 아일랜드다.

황무지에서도 쉽게 자란 덕에 빈곤을 해결한 국민 주식이 됐다.

1845년에는 재앙을 부른다. 6년간 마름병이 번져 아사자가 대거 생겼다.

800만 명가량이던 인구는 약 200만 명 줄어든다.

100만 명은 굶어 죽고 100만 명은 미국 등지로 이주했다.

미국 최연소 정상에 오른 케네디 대통령 조상도 이때 신대륙으로 건너갔다.

감자 번식에 성공한 유럽 국가는 예외 없이 인구가 늘고 시장이 활기를 띠었다.

무수한 목숨을 앗아간 괴혈병도 사라졌다.

괴혈병을 일으키는 비타민C 결핍 증세가 감자로 해소된 덕분이다.

1260년 유럽 십자군이 우수한 전투력을 앞세우고도 패한 데는 괴혈병 영향이 크다.

수많은 군인이 잇몸 악취와 출혈성 피부 반점, 다리 부종 등으로 전선에서 이탈했다.

18세기 영국 해군도 괴혈병으로 10만 명 이상 숨졌다.

'봄 감자' 심는 농촌들녘. 강원도 춘천시 서면 신매리.

'봄 감자' 심는 농촌들녘. 강원도 춘천시 서면 신매리.

유럽 감자 보급사는 많은 시사점을 준다.

지도층이 정치 목적으로 생산하는 가짜뉴스가 약자를 죽인다는 게 첫째다.

국민이 반대하는 일을 시키려면 지도자가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게 두 번째 교훈이다.

셋째는 서민 생계난을 제때 해결하지 못하면 권력은 위험해진다는 것이다.

맹자는 약 2,300년 전에 경제 중요성을 깨닫고 '무항산 무항심'을 설파했다.

먹고 사는 문제가 안정되지 않으면 곧은 마음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현란한 경제공약을 내걸고 지지를 호소하는 19대 대선 후보들도 새겨들어야 할 금언이다.

had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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