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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무형유산 해녀, 고된 삶 자체가 제주의 역사

송고시간2017-04-25 13:24

고통스러운 천대의 대상에서 해녀협회 창립까지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거친 파도와 싸우며 생계를 이어온 해녀의 고된 삶은 그대로 제주를 상징한다.

소라 채취하는 해녀
소라 채취하는 해녀

(서귀포=연합뉴스) 박지호 기자 = 지난 25일 오전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하례리 어촌계 해녀가 쇠소깍 앞바다에서 소라 등을 채취하고 있다. 2016.11.30
jihopark@yna.co.kr

기계에 의존하지 않고 사람의 숨만으로 물질을 하며 서로를 배려하는 공동체 문화를 지켜온 해녀.

이들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비롯해 9천500명을 회원으로 한 해녀협회를 창립하기까지 과정은 고생 끝에 일군 제주 여성의 승리다.

토양과 기후 등 농사짓기에 적합하지 않은 척박한 자연환경 탓에 제주 사람들은 바다를 가까이할 수밖에 없었다.

일고여덟 때 얕은 바다에서 헤엄과 잠수를 익혀 열다섯 무렵 '애기해녀'로 성장하는 제주 여성들의 필연적 운명은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화산섬 제주에서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어떤 잠수장비 없이 그저 맨몸으로 바닷속에 들어가 해산물을 캐야 했기 때문에 다치거나 죽는 일이 많았다.

조선 시대 해녀는 가장 고통스러웠던 여섯 가지 천역(賤役)인 6고역(六苦役) 중 하나(잠녀역·潛女役)였고, 조선 인조 7년에는 관리들의 수탈을 견디다 못해 많은 전복잡이 포작인(鮑作人)들이 제주에서 도망치자 결국 남자들의 몫이었던 포작역(鮑作役)까지 떠안아야 했다.

해녀들은 이처럼 오랫동안 천대를 받았음에도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며 제주에서 고된 삶을 이어왔다.

수확물 옮기는 해녀들
수확물 옮기는 해녀들

(제주=연합뉴스) 박지호 기자 = 해녀들이 소라 등 수확물을 옮기고 있다. 2016.11.30 [제주특별자치도 해녀박물관 제공=연합뉴스]
jihopark@yna.co.kr

17세기 말 800명에 이르던 해녀의 수는 18세기 초 900여 명으로, 20세기 초인 1913년 8천391명에 이를 정도로 급격히 늘어났다.

제주 해녀는 19세기 말부터 국내는 물론 일본, 중국, 러시아 등 국외로 나가 조업(바깥물질 또는 출가물질)을 하기도 했다.

뒤늦게 붙여진 명칭이지만 이들 해녀를 출가해녀(出嫁海女)라 했다.

제주 해녀들이 고향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 나가 물질을 하게 된 데는 국내·외 정치·경제적으로 어려운 시절 보다 많은 돈을 벌기 위함이기도 했으나, 근본적으로는 일본 어민들이 잠수기선과 아마(일본 해녀)들을 동원해 제주 수역에 대한 침탈이 끊임없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타지역으로 대거 진출한 제주 해녀는 뛰어난 잠수기술을 선보이며 식민지 시대 우리나라까지 활동 영역을 넓혔던 일본 아마들을 완전히 축출했다.

해녀들은 슬픈 역사를 떨쳐내고 일제의 식민지 수탈 정책에 거세게 저항해 민족적 자존감을 드높이기도 했다.

해녀항일운동은 1931∼1932년 2년여 동안 현 제주시 구좌읍과 우도면, 서귀포시 성산읍 지역 해녀들이 일제의 식민지 경제수탈정책에 항거하기 위해 벌인 국내 최대 여성 항일운동으로 연인원 1만7천여 명이 참가해 총 238회의 시위를 벌였다.

해녀들의 '대한독립 만세'
해녀들의 '대한독립 만세'

(제주=연합뉴스) 박지호 기자 = 12일 오전 제주시 구좌읍 동녘도서관에서 열린 제23회 제주해녀항일운동 기념식에서 해녀들이 무대에 올라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고 있다. 2017.1.12
jihopark@yna.co.kr

해방 후 고향 바다에서 마음껏 조업할 수 있게 된 해녀는 1932년 8천662명이던 수가 1960년 1만9천319명, 1965년 2만3천81명까지 늘어나며 최고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이후 1970년 1만4천143명, 1975년 8천402명으로 다시 감소하면서 일제 강점기 초기 해녀 수와 비슷한 수치로 줄어들었다.

해녀 인구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줄어들어 1980년 7천804명, 1990년 6천827명, 2000년 5천789명, 2010년 4천995명, 2015년 4천337명으로 꾸준히 감소했다.

제주 도정과 도내 100여개 어촌계, 해녀, 연구가 등이 사라져 가는 해녀문화와 해녀 보존을 위해 많은 노력을 이어갔고, 결국 지난해 12월 1일 제주해녀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생태적으로 바람직한 제주 해녀의 잠수(물질) 기술과 책임감이 선배에서 후배 해녀로 전해지며 전통을 유지해 온 해녀의 삶 그 자체가 세계적으로 보존해야 할 가치 있는 유산이 됐다.

이어 다섯 달 뒤 제주 전·현직 해녀 9천500명을 회원으로 한 사단법인 제주특별자치도 해녀협회가 창립했다.

강애심 초대 해녀협회장의 창립 기념사는 해녀의 과거와 미래를 그대로 대변한다.

"물질 전 불턱에 모여 앉아 서로의 온기로 거친 파도를 이겨낼 준비를 하듯 우린 오늘 제주특별자치도 해녀협회란 큰 불턱을 만들어냈다. 제주 해녀협회라는 큰 불턱은 해녀들이 서로 만나 의논하면서 뜻을 하나로 모아가는 소통의 장이 될 것이다. 세계가 인정하는 자랑스러운 제주해녀문화를 보존하고 우리 제주해녀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모두의 기둥이 될 것이다."

제주도 해녀협회 창립
제주도 해녀협회 창립

(제주=연합뉴스) 박지호 기자 = 25일 오전 제주시 탑동 오리엔탈호텔에서 열린 제주도 해녀협회 창립기념식에서 해녀협회 임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17.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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