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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정신과 실성의 경계, 시대에 따라 달랐다

송고시간2017-04-25 10:57

의학사학자 앤드루 스컬 '광기와 문명'

제정신과 실성의 경계, 시대에 따라 달랐다 - 1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우울감'을 뜻하는 영어 단어 멜랑콜리(melancholy)는 검은색을 가리키는 그리스어 낱말 '멜란'(melan)과 담즙을 뜻하는 단어 '콜레'(chole)에서 유래했다. 고대 그리스·로마 의사들은 우울증과 같은 광기(狂氣)가 '검은 담즙'처럼 체액의 불균형에서 온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지금으로써는 우스운 이야기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광기가 신의 초자연적인 힘 때문이라고 믿었던 시절, 광기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제공했다.

40여 년간 광기 연구를 해온 영국 출신 의학사학자 앤드루 스컬은 신간 '광기와 문명'(뿌리와이파리 펴냄)에서 역사 속 광기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탐구한다. 책은 고대부터 21세기까지 3천년간 의학사를 중심으로 소설, 연극, 영화, 그림 등 문화사까지 문명 속 광기의 역사를 추적한다.

광기에 대한 인식은 시대에 따라 변화해왔다.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민족의 초대왕 사울의 광기가 하느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아 저주를 받은 것으로 믿었다. 그리스·로마 시대에도 정신질환에 종교적 원인을 결부시키는 경향은 이어졌다.

그러나 그리스 의사들이 정신장애에 대해 자연주의적 설명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신의 초자연적 힘이 아닌, 몸 안에서 정신장애가 생겨났다는 관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의사와 사제들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광기의 원인을 설명하는 태도는 동양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종교의학이 민간의학의 곁에서 악령이나 귀신의 소행으로 많은 질환을 설명하려 했다.

종교의 힘이 절대적이었던 중세에는 정신질환과 신체질환 구분 없이 모든 형태의 질환의 원인을 종교적으로 해석하는 사고방식이 유행한다.

광기에 대한 인식이 변해가면서 대처 방식도 변화한다.

네덜란드에서는 15세기부터 광인을 격리해 수용하는 '광인의 집'이 등장한다. 처음에는 방에 환자를 10명 미만으로 수용하는 소규모 사업이었지만 점차 가족들과 지역 사회에서 '위협이 되는 미친 사람들'을 처분할 방법으로 널리 확대되기 시작한다. 그러다 19세기 유럽과 북아메리카 대륙 전역을 거쳐 제국주의를 통해 다른 국가와 대륙에까지 감호소에 광인들을 가두는 '대감금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린다.

이후 정신의학은 정신병원 같은 보호시설 위주로 정신병 환자의 대부분을 보살피며 신체의 문제로 광인에 접근한다.

미국과 영국에서 정신병원의 인구가 내림세로 돌아선 것은 1950년대 중반이다. 이때는 마침 정신질환에 관한 프로이트의 이론이 인기를 얻기 시작한 때이기도 하다. 전 세계적으로 정신병원에 수감된 환자들이 인간성을 빼앗기는 경향에 대한 비판 등으로 '탈(脫) 시설화' 경향을 보인다.

책은 이처럼 시대에 따라 달라진 광기에 대한 인식이 현재에도 명확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현대에 와서는 정신질환의 진단 기준이 세밀해지며 정신질환자로 규정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저자는 정신질환의 세밀한 분류가 정상적 인간의 삶에 존재하는 일상적 특징들까지 병으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며 여기에는 제약회사 등 상업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것은 아닌가 의문을 제기한다.

저자는 "이성과 비이성 사이의 경계는 여전히 불확실하다"면서 "광기의 증상, 의미, 결과, 제정신과 실성 사이의 경계를 어디에 그리느냐는 비이성을 드러내고 받아들이는 사회적 맥락에 깊이 영향을 받는 문제이며 광인을 제정신인 사람과 분류시키는 경계 자체가 논쟁거리"라고 말한다. 김미선 옮김. 708쪽. 3만8천원.

zitron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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