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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역사 2cm] 약자 짓밟는 일본…'오쓰 사건'엔 온 국민이 싹싹 빌었다

(서울=연합뉴스) 황대일 기자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중 최고령(99세)이던 이순덕 할머니가 4월 4일 별세했다.

할머니는 그동안 "인정하라, 사죄하라, 보상하라"고 목청껏 외쳤지만 별 성과도 없이 세상을 떠났다.

일본은 위안부 진상 규명과 손해배상에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했다.

아베 신조 총리가 2015년 발표한 전후 70년 담화도 진심 어린 사과는 아니었다.

아베는 한술 더 떠 최근에는 소녀상 철거를 요구했다.

후안무치한 외교 행태는 상당 기간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

약소국을 함부로 대하는 일본은 강대국에는 한없이 비굴하다.

1891년 5월 11일 당시 일본 제국을 방문하고 있었던 러시아 제국의 황태자 니콜라이 2세는 경찰관 쓰다 산조에게 갑작스럽게 칼을 맞는다
1891년 5월 11일 당시 일본 제국을 방문하고 있었던 러시아 제국의 황태자 니콜라이 2세는 경찰관 쓰다 산조에게 갑작스럽게 칼을 맞는다

1891년 오쓰 사건은 일본의 야누스 민낯을 잘 보여준다.

러시아 황태자 니콜라이 2세는 그해 5월 일본에서 칼부림을 당한다.

시가 현 오쓰 시에서 경찰관 쓰다 산조가 휘두른 칼에 머리를 다쳤다.

일본 왕자가 안내하고 철통 같은 경호를 폈는데도 황태자는 속수무책이었다.

느긋하게 관광을 즐기다가 경호 경찰관이 허리에 찬 칼을 갑자기 뽑아 휘둘렀기 때문이다.

황태자는 인력거에서 급히 뛰어내려 골목길로 달아난 덕에 목숨은 건졌다.

러시아 함대를 이끌고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길에 일본에 잠시 들렀다가 변을 당했다.

칼부림이 난 지역 이름을 따 오쓰 사건이라고 부른다.

사건 소식이 전해지자 일본 왕실과 정부는 발칵 뒤집힌다.

강대국 러시아가 무력으로 응징할 것이라는 염려 때문이다.

1904년 발발한 러일전쟁이 앞당겨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당시 일본은 근대화 초기 단계여서 러시아와 전쟁할 힘이 없었다.

거액 배상금이나 영토 할양을 요구할 가능성에도 촉각을 곤두세웠다.

일본은 신속하고 전방위적인 대응에 들어갔다.

민·관이 총동원되고 왕까지 합류해 사태 수습에 나선 것이다.

메이지 일왕은 아들 3명을 데리고 황태자가 묶은 호텔로 서둘러 찾아가 머리를 조아린다.

러시아 제국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는 1891년 일본에서 칼부림을 당한다.
러시아 제국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는 1891년 일본에서 칼부림을 당한다.

모든 국민은 일사불란한 사죄 모양새를 갖췄다.

전국 학교가 일제히 휴교에 들어갔다. 강력한 근신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신사나 사원, 교회는 쾌유를 비는 기도를 이어갔다.

니콜라이에게 보낸 문안 전보만 1만 통을 넘었다.

게이오대학 학생들은 프랑스어로 사과편지를 썼다.

일부 지역에서는 작명 때 쓰다'나 '산조'를 넣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했다.

경찰관 쓰다 산조를 떠올리게 한다는 이유에서다.

한 여성은 '죽음으로 사죄한다'는 유언을 남기고 자살하는 일도 생긴다.

한 사람이 저지른 우발 사건에 온 나라가 호들갑을 떨며 치욕을 자처한 것이다.

한국인 위안부 문제에 오리발을 내미는 것과 전혀 딴판이다.

사건 동기는 단순했다.

왕을 알현하지 않은 채 관광하는 데 화가 나 혼내주려고 했을 뿐 살해 의도는 없었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범인 쓰다를 처형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한반도 침략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가 가장 강경했다.

법률 미비로 사형 선고가 안 되면 계엄령을 내려서러도 처형하라고 압박했다.

쓰다를 납치해 권총으로 암살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러시아도 사형을 강하게 압박했다.

주일 러시아 공사관은 죽이지 않으면 어떤 사태가 날지 모른다고 협박했다.

대법원만 달랐다.

실정법상 살인을 선고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 왕이나 왕족에게 위해를 가한 범죄에만 사형이 가능했다.

계엄령 선포로 재판권을 회수하겠다는 법무부 위협에도 대법원은 잘 버텼다.

결국, 사건 발생 16일 후 살인미수 혐의로 무기징역 판결을 한다.

러시아 반응은 의외로 차분했다.

전쟁은커녕 배상 요구도 하지 않았다.

[숨은 역사 2cm] 약자 짓밟는 일본…'오쓰 사건'엔 온 국민이 싹싹 빌었다 - 3

일본은 13년 뒤 러시아에 배은망덕했다.

1904년 일본이 선전포고도 없이 러시아 극동 함대를 기습 공격해 전쟁에 돌입한 것이다.

쓰다를 검거할 때 도운 인력거꾼은 러일전쟁을 계기로 날벼락을 맞는다.

국민 영웅에서 매국노로 바뀌어 집단 괴롭힘을 당했다.

1937년 중일전쟁 당시 발생한 파나이호 사건에서도 일본의 위선이 드러났다.

일본 항공대가 민간인을 태운 미국 함정 파나이호를 격침했다.

일본은 중국 군함으로 오인해 실수했다고 해명했다.

그런데도 서둘러 사과하고 배상했다.

일본 함대사령관이 현장에서 사죄하고 본국 정부도 사과성명을 발표했다.

당시로써는 거액인 221만여 달러를 배상하고 항공대 사령관은 경질했다.

미국도 15년 후 일본으로부터 등에 칼을 맞는다.

1941년 일본 전투기들이 하와이 진주만 미군기지를 공격한 것이다.

그런 일본이 지금은 돌변했다.

아베 총리가 미국 대선 후 외국 정상 중 처음으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무한 신뢰를 약속했다.

세계 최강대국 미국 앞에서 납작 엎드린 것이다.

강한 것을 두려워하고 약한 것을 업신여긴다는 토강여유(吐剛茹柔)의 전형이다.

[숨은 역사 2cm] 약자 짓밟는 일본…'오쓰 사건'엔 온 국민이 싹싹 빌었다 - 4

식민지 아픔을 딛고 정상관계로 리셋하려는 우리의 노력이 번번이 무산된 데는 이런 악습이 큰 영향을 미쳤다.

차기 정부가 일본의 천민근성을 확실하게 인식하지 않고 외교 전략을 짠다면 실패는 계속 반복될 것이다.

hadi@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7/04/26 09:0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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