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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이매진] "인간의 욕망은 무엇일까"

송고시간2017-05-14 08:01

철학자 김석 교수가 내놓는 현답(賢答)

김석 건국대 융합인재학부 교수 [사진=전수영 기자]

김석 건국대 융합인재학부 교수 [사진=전수영 기자]

(서울=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사람은 평생 돈, 명예, 권력, 사랑, 행복을 좇으며 욕망에 매달린다. 하지만 욕망은 절대로 충족되지 않는다. 하나의 욕망이 충족되면 더 큰 욕망이 우리를 유혹하며, 죽을 때까지 이런 과정이 반복된다. 우리에게 욕망은 무엇일까. 진정한 행복을 위해 우리는 욕망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김석(53) 건국대 융합인재학부 교수는 '욕망' '나르시시즘' '사랑' '자아' '무의식'을 연구하는 철학자다. 개별적인 인간의 심리가 사회적인 현상과 결부돼 어떻게 집단 심리나 사회병리적 현상을 유발하는지 연구한다.

김 교수는 현재 한국 사회를 가치관이 병든 '정신병적인 사회'로 규정한다. 그리고 사회적인 갈등과 폭력, 우울증, 자살 등 사회병리적인 현상을 치유할 방법을 자아성찰과 사회 병리적 구조의 개조에서 찾는다. 김 교수가 진단한 한국 사회의 정신병과 해결 방안에 귀를 기울여봤다.

-- 철학자로서 관심 분야는 무엇입니까.

▲ 욕망과 그것의 반영인 사회병리 현상입니다. 욕망의 중요성, 욕망 때문에 겪는 고통, 폭력과 같은 타자와의 갈등, 이념 대립 같은 집단 심리, 이런 사회심리현상을 정신분석적 관점에서 연구합니다. 사람은 자신의 욕망을 위해 살며,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하며 사는데 욕망이 억압되면 고통을 겪고 다양한 병리적 증상을 표출합니다. 이것을 들여다봐야 하는데 예컨대 폭력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은 타고난 폭력성향이 있다고 하거나 사회 부조리의 희생물이라는 식으로 설명한다면 핵심을 놓칠 수 있지요. 사회적 억압이라는 관점에서 물질만능주의나 경쟁적 풍토가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바라봐야 합니다.

-- 이런 분야에 관심을 갖게된 동기가 있나요.

▲ 198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이라면 대부분이 그랬을 테지만 저도 우리 사회의 수많은 갈등과 부조리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었어요. 이후 철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면서 우리가 미처 모르는 욕망과 동기, 그리고 심리적인 것이 다양한 사회 문제에 결부돼 있다고 판단하게 됐죠. 특히 프랑스에서 정신분석을 주제로 학위 논문을 쓰다가 사회병리에 더 관심을 두게 됐어요. 기존 정신분석학자들은 임상적인 측면에 관심을 많이 가졌는데 저는 철학자로서 사회병리나 집단심리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 '욕망' '나르시시즘' '무의식'은 우리의 삶과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 인간은 사회 속에서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갑니다.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가 욕구를 모두 표출하며 살지 못한다는 것을 뜻하죠. 억압하거나 변형시켜야 할 부분이 반드시 생겨납니다. 그래서 우리는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과 내면이 다를 수 있죠. 이런 차이를 잘 조절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렇지 못하는 사람은 우울증에 걸리거나 폭력적 형태로 표출할 수 있어요. 인간과 사회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욕망, 나르시시즘, 무의식을 잘 이해하고 조절하며, 사회 환경이나 사랑과 미움 같은 타인과의 감정적인 교류를 들여다봐야 하죠.

-- 욕망은 무엇인가요. 욕구와는 어떻게 다릅니까.

▲ 욕망은 한 마디로 인간의 본질입니다. 인간은 욕망하기 때문에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자연을 정복하고 문명을 꽃피우면서 삶을 개선할 수 있었죠. 욕망은 인간에게 발전과 풍요를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런데 욕구와 욕망을 구분해야 합니다. 욕구는 먹고 마시고 잠자는 것과 같은 생물학적이고 본능적으로 필요한 것에 대한 바람이에요. 즉 이것은 자신의 내부에서 생성되죠. 하지만 욕망은 욕구와 달리 타자와의 관계를 전제로 해요. 다른 사람에게서 인정과 평가를 받는 것이 욕망에서 중요하죠.

예를 들어 한 남자가 아름다운 여자를 애인으로 삼고 싶어 한다고 가정해보죠. 이 남자의 심리를 분석해보면, 그 남자는 그 여자 자체를 좋아할 수도 있지만 사실 자신이 예쁜 여자와 함께한다는 것을 남이 인정해주길 바라는 욕망이 있는 거예요. 즉 욕망은 내부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만들어지죠. 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자기 욕망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어요.

성공해도 행복감이 오래 지속하지 않는 것도 성공에 대한 욕망이 자기 내부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하나의 욕망이 충족되면 또다시 새로운 욕망이 생기기 때문에 인간은 결국 영원한 불만의 상태로 남게 되죠. 욕망은 타자의 욕망에서 시작되고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비로소 의미가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은 타인을 많이 의식해요. 남에게 어떻게 보일까, 나의 직업이나 재력이 어떻게 판단될까를 중요하게 생각하죠. 타자의 욕망에 너무 매달리다 보니 우리는 자기 삶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있어요. 사회가 부여하는 욕망에 과도하게 집착하면 자신을 잃어버리고 자기소외에 빠질 수 있습니다.

-- 욕망은 두 가지 얼굴을 가진 것 같습니다. 잘못된 욕망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 맞습니다. 욕망은 실현되려고 하는 속성을 가집니다. 하지만 욕망의 억압이나 잘못된 욕망이 문제입니다. 정신분석에서는 이것을 증상으로 설명합니다. 내부의 갈등은 억압하고 감춘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내부에 갈등이 있으면 신경증이나 불안증으로 나타나죠. 어떤 형태로든 드러나게 마련이에요. 인문학자는 증상을 통해 표출되는 욕망을 제대로 들여다보게 하고, 사회에서 길을 잃지 않고 자기 욕망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입니다.

-- 욕망의 사회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 자기를 잘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는 나만의 것을 찾기보다 사회가 부여한 기준을 좇아가는 경향이 커요. 예를 들어 자기가 요리에 소질이 있으면 요리사가 되면 되는데 그러지 못하고 대학을 가서 법학이나 경영학 등 전혀 다른 공부를 하는 경우가 허다하죠. 자기에게 맞지 않는 옷을 걸치고 다니는 거죠.

결국 나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찾는 것이 중요한데 이것은 저절로 주어지지 않고 공부를 해야 합니다. 정체성을 찾고 살아가는 방법을 스스로 알기 위해 자기성찰을 해야 하죠.

-- 자기를 성찰하는 법을 어떻게 배울 수 있습니까.

▲ 공자는 논어에서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아니하면 위태롭다"(子曰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고 했어요. 배우면서 계속 생각하는 것이 중요한데 오늘날 생각한다는 것은 성찰과 소통을 뜻한다고 할 수 있죠. 이것은 제대로 된 배움과 훈련을 필요로 합니다. 나의 지식이 잘못돼 있다면 독(毒)이 될 수 있잖아요. 자기성찰과 소통의 방법을 배우는 곳이 바로 대학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대학은 사회에서 필요한 사람을 육성하기 위해 스펙을 쌓는 곳이 돼버려 아쉽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자기를 돌아볼 수 있게 각종 강연을 하는 등 노력하고 있지만 인문학자 한 명의 힘으로는 안 되죠. 또 한 가지 우려하는 점은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인문학을 교양처럼 생각한다는 거예요. 인문학의 주된 목적은 교양을 쌓는 것이 아니라 지적인 자극을 주고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데 있습니다.

김석 교수가 인간의 욕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석 교수가 인간의 욕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욕망을 좇다 보면 정신적으로 궁핍해진다"고 했습니다. 왜 그런가요.

▲ 자기를 실현하려면 욕망이 있어야 하죠. 물질적인 것도 필요하고 남들로부터 인정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욕망은 사회적인 관계 속에서 비롯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나를 돌아보기 전에 무턱대고 사회가 이상화하는 욕망을 좇다 보면 잘못된 욕망을 추구할 수 있고, 소외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욕망이 완전히 채워질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모른 채 욕망을 채우려고 하죠. 돈, 권력, 사회적인 성공, 남들의 인정과 사랑으로는 결코 근원적으로 결여된 공간을 채울 수 없습니다. 욕망은 결국 자기 존재를 찾고자 하는 몸부림인데 그것을 모른 채 자꾸 다른 것으로 채우면 아무리 쌓아도 만족할 수 없는 거죠. 그러면 정신적으로 황폐해지겠죠.

-- 지금 우리나라에는 절망하고 우울해 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 개인에게 우울증이나 불안장애가 있듯이 사회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상당히 정신병적인 사회입니다. 정신병적인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정신병적인 구조에 빠지기 쉽죠.

예를 들어 길거리에서 일어나는 '묻지마' 폭행이나 살인은 타인에 대한 존중이 없기 때문이에요. 임상적으로 보면 정신병이 이런 구조죠. 정신병은 자아 내부에서 분열이 없어서 갈등도 없고 자신의 망상으로 외부 현실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심리 구조입니다. 정신병적인 사회는 자기중심성이 너무 커지고 나를 중심으로 타인을 함부로 대하는 심리가 일상화된 사회를 말합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누구나 범죄를 쉽게 저지르고, 사회병리적인 현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 인간에 대한 가치가 사회적으로 합의되지 않는 탓이죠. 효율, 성과, 생산력을 중요하게 여기고 사람이 다치거나 죽거나 소외되는 문제는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고 있죠. 세월호 사건도 이런 경우죠. 이런 사회에서는 자살률이 높고 범죄가 증가하고 우울증 같은 병리 현상도 증가하죠. 당연히 행복지수와 만족도도 낮죠. 성장을 위해 달리기 전에 먼저 경제 성장이 왜 필요하고,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인간에 대한 가치를 회복해야 해요.

-- 정신병적인 한국 사회, 치료될 수 있을까요.

▲ 당장 해결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1980~1990년대 오로지 성장 위주로 달려오며 성찰할 기회가 없었죠.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많은 사회적 부조리와 병폐는 성장주의가 낳은 폐단이자 후유증이기도 하죠. 그런데 지금 이런 문제들이 불거지는 것은 우리가 돌아볼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요즘 인문학 강연이나 책을 통해 인간의 가치를 생각해보는 기회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아직 성숙하지는 않았지만 고무적인 현상이죠.

또 하나 깨달아야 할 것은 우리가 선진국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경제 규모나 부의 측면에서는 선진국을 따라가고 있지만 정신적으로는 많이 지체돼 있죠. 덩치는 커졌는데 정신이나 내면은 성장하지 않은 비정상적인 모습이죠. 자기 물음을 시작할 때가 된 거죠.

-- 나르시시즘은 무엇이고,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칩니까.

▲ 우리에게는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과 내면이란 것이 있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에는 남들이 어떻게 볼까 상상하는 부분이 있다는 거죠. 남을 너무 의식하다 보면 마치 남들이 좋아할 만한 모습으로 내 모습이 과잉되게 부풀어지면서 여기에 온통 집착할 수 있어요. 이게 바로 나르시시즘이에요. 나르시시즘이 있으니까 자신에 대한 애착도 생기고 자기실현의 욕망도 생기는데 이것이 지나치면 문제가 되죠.

'연기성 성격장애'라는 것이 있어요. 자기를 영화나 연극의 주인공처럼 생각하면서 오로지 남들이 어떻게 볼까만 마음을 쓰는 사람이죠. 남들이 관심을 두지 않으면 행동하지 않고 때로는 관심을 끌기 위해 자기감정이나 욕망을 숨기면서까지 과잉되게 행동하기도 하죠.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릿이 이런 경우입니다. 요즘 아이돌이 되고 싶어 하는 청소년이 많습니다. 연예인이 되는 것에 소질이 있으면 모르지만 대부분은 연예인에 대한 동경 의식이 부풀려진 자아를 만들어서 그런 거죠. 이건 잘못된 나르시시즘이 만들어내는 병폐죠. 이런 결과는 욕망을 상품화하고 대량 유포하는 매스미디어의 영향이 상당합니다.

하지만 욕망이나 나르시시즘이 없다면 인간은 살 수가 없습니다. 물론 너무 지나쳐도 안 되죠. 욕망이나 나르시시즘을 적절히 조절하는 훈련이 필요해요. 그리스 사회에서는 철학, 예술, 체육을 통해 시민들을 교육했습니다. 우리도 그릇된 욕망이나 과잉된 나르시시즘이 사회를 지배하지 않도록 이런 훈련이 필요합니다.

-- 라캉이 "우리가 사랑하는 대상이 실은 우리 자신의 자아"라고 했듯이 사랑도 일종의 나르시시즘인가요.

▲ 사랑 자체가 나르시시즘은 아니지만 그 중심에는 나르시시즘이 내재해 있습니다. 사랑할 때 우리는 자신의 모습을 타인에게 투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죠. 즉 사랑하는 사람을 자신이 원하는 모습대로 만들려고 합니다. 부모가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자식을 키우려고 한다거나, 사랑하는 연인이 생각이나 기호, 행동이 서로 같아야 한다고 여기는 것이 그것이죠.

동서양을 막론하고 차이를 극복하고 둘이 하나가 되는 것을 사랑의 본질처럼 생각하지만 실은 자신과 타자의 발견이 사랑의 진정한 기능입니다. 사랑할수록 나르시시즘으로 빠지라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인정하고 상대의 존재를 더 소중하게 여기라는 거죠. 사랑하면 차이를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차이를 극복하려는 순간 폭력이나 억압이 되기 쉽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타자를 인정할 때 가능합니다.

-- 행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 제가 가장 관심이 높은 주제가 자아실현이에요. 그리고 자아실현을 통한 행복입니다. 자아실현은 자기계발과는 전혀 다른데 우리 사회에서는 동일시되고 있는 것 같아요. 자아실현을 자신의 장점을 발견하고 계발해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죠. 자아실현은 자기를 돌아보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그리스인들은 시민교육을 할 때 자기 자신을 스스로 돌보는 자기 배려를 강조했어요. 몸매를 가꾸거나 건강을 챙기는 것이 아니라 영혼, 즉 내면을 돌보고 가꾸는 것이죠. 자기를 비판적으로 보고, 타인의 입장에서 바라보기도 하고, 타인과 소통하면서 점검을 하라는 거죠. 결국 나 혼자만을 위한 배려가 아니라 사회적인 배려를 하라는 겁니다. 자기 배려와 소통을 통해 행복에 도달할 수 있어요.

지금 우리는 공동체적인 관계가 무너지고, 각자도생하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공동체적 관계가 무너졌기 때문에 개인이나 가족의 불행을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인 거죠. 남이 아픈 것을 보고 나도 아플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모두가 행복한 사회가 가능하겠죠.

이런 사회를 위한 출발점은 우리 스스로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는 거예요. 지금 모습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문제를 제기해야 하죠. 질문을 던지지 않고서는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연합이매진] "인간의 욕망은 무엇일까" - 3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5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dkl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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