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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천500만명 죽음으로 몰고간 마오쩌둥의 '대약진 운동'

신간 '마오의 대기근'
4천500만명 죽음으로 몰고간 마오쩌둥의 '대약진 운동' - 1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1957년 소련의 지도자 니키타 흐루쇼프는 모스크바에서 외국 당 대표단을 앞에 두고 15년 안에 소련이 미국 중요 생산품의 현재 산출량을 능가하게 될 것이라고 연설했다.

연설을 들은 중국의 마오쩌둥(毛澤東)은 "흐루쇼프 동지는 소련이 15년 안에 미국을 따라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15년 안으로 우리(중국) 또한 영국을 추월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스탈린 사후 공산주의 사회의 지도자가 되길 원했던 마오쩌둥의 선언은 이후 5년간 중국을 엄청난 파국으로 몰아넣은 비극 '대약진 운동'의 시작이었다.

네덜란드 태생의 역사학자 프랑크 디쾨터는 '마오의 대약진'(열린책들 펴냄)에서 1958∼1962년 '대약진 운동'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마오쩌둥은 15년 안에 영국을 따라잡기 위한 원동력으로 거대한 중국의 인구를 이용했다.

곡물생산량을 늘리기 위한 대규모 관개사업에 농촌 인력 수천만명을 동원했다. 간쑤(甘肅)성에서만 노동력의 70%에 가까운 340만명의 농민이 보와 저수지를 건설하는데 배치됐다.

대약진운동 기간 윗선의 눈에 들려는 지방 지도자들의 경쟁 속에 곡물 생산량은 물론, 철강생산량, 시골에 판 우물 숫자에 이르기까지 목표치가 부풀려졌다. 한 지역에서는 1958년 2월 헥타르(ha)당 4천200kg였던 밀 수확 목표가 그해 말에는 37.5t으로 급증하기도 했다.

도저히 맞출 수 없는 목표량이었지만 윗선에는 목표량 달성으로 식량이 남는다는 허위 보고가 올라갔다. 중국 전역에서 면화나 쌀, 밀, 땅콩 수확 신기록이 경신됐다는 보고에 마오쩌둥은 잉여 식량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고 인민들에게 하루 다섯 끼를 먹으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여기에 중국은 동시에 산업대국이 되기 위해 공업장비와 기술을 수입하고 농산물로 대금을 치렀다. 또 중국이 소련보다 앞선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소련보다 싼 가격에 각종 상품을 수출했다. 자연히 물자가 부족해졌다.

철광석 없이 농촌에서 철강을 만들어 내느라 온갖 금속 집기와 농기구는 물론, 문고리까지 동원됐다. 고로에 불을 피우기 위한 땔감을 위해 숲은 벌목됐다. 그렇게 만들어 낸 철은 대부분 쓸모없는 무쇠덩어리였다.

보고서에 숫자가 부풀려지는 동안 현실에서는 농민들이 관개사업에 동원되며 경작을 할 수 없게 됐고 농사를 지을 농기구도 없었다. 기근이 발생하기 시작했고 이는 대규모 아사로 이어졌다. 시키는대로 고분고분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무자비한 폭력이 가해졌다. 질병, 강간, 학대 등이 만연하면서 이는 또 다른 죽음으로 이어졌다.

결과는 참혹했다. 중국 정부가 민감한 자료들을 공개하지 않는 상황에서 디쾨터는 여러 연구와 자료를 종합해 대체로 4천300만∼4천600만명이 5년 동안 사망한 것으로 추정한다. 총성 한 번 없었는데도 제2차 세계대전의 전체 희생자 수와 맞먹는 사람이 죽어갔다.

살아남기 위해 인민들은 또 다른 가해자가 됐다. 옳고 그름을 말하기 이전에 지옥과 같은 현실에서 거짓말, 절도, 뇌물 등은 살아남기 위한 능력이 됐고 인간성은 파괴됐다.

디쾨터가 중국 현대사를 되짚는 '인민 3부작'의 두 번째 책이다. 1945년부터 1957년까지 중국 공산당이 국공 내전 끝에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하고 사회주의 혁명을 수행하는 과정을 짚은 '해방의 비극' 이후 두 번째 책이다. '해방의 비극'은 지난해 8월 출간됐고 마지막 '문화 대혁명'도 번역·출간될 예정이다. 600쪽. 2만5천원.

zitrone@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7/04/12 11:15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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