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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역사 2cm] 영국에 맞선 인도인들도 '김정은식 대포 처형'

(서울=연합뉴스) 황대일 기자 = 북한에서 공포통치가 확산하고 있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집권한 이후 공개 처형이 해마다 급증했다.

유일 체제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하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제거한다.

고위 측근 간부는 물론, 김 위원장 친인척도 예외가 아니다.

고모부인 장성택에 이어 이복형인 김정남마저 살해됐다.

처형 수법이 워낙 잔인해 북한 내부는 물론, 국제사회조차 경악한다.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은 재판도 없이 대공화기로 공개 처형했다.

중기관총을 묶어 만든 대공화기는 저공 비행체 격추용 무기다.

대공화기를 맞으면 몸은 산산조각이 난다.

현영철 이후 대공화기 처형이 잦아졌다.

올해도 국가안전보위성 간부 5명 이상이 총탄세례를 받았다.

[숨은 역사 2cm] 영국에 맞선 인도인들도 '김정은식 대포 처형' - 1

잔혹한 사형제는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대부분 국가에서 사라졌다.

죄인의 고통을 최대한 줄이는 식으로 바뀐 것이다.

사형제를 아예 폐지하는 국가도 많아졌다. 인권존중 문화가 확산한 덕분이다.

인도주의 흐름에서 북한만 역주행하는 모양새다.

조선 왕조에서도 사형제는 북한보다 양호했다.

목을 줄로 조르거나 칼로 베는 방식이 주류였다.

다만, 인도와 아프가니스탄 등 일부 국가는 북한과 흡사했다.

반란죄 처벌 때 '대포 처형'을 활용했다.

죄수를 묶어 세워놓고 바로 앞에서 대포를 쏘는 방식이다.

대포로 처형되는 세포이 반군.
대포로 처형되는 세포이 반군.

대포를 맞은 사형수는 곧바로 머리가 부서져 죽는다.

대포 처형이 국제사회에 악명을 날린 것은 1857~1858년 무렵이다.

영국 동인도 회사의 인도인 용병(세포이)이 일으킨 무장봉기 때문이다.

영국군 대응은 무자비했다.

공포와 불안 심리를 퍼트려 저항 의지를 꺾기 위해서다.

이때 야만적 사형제가 등장한다.

용병들을 붙잡아 닥치는 대로 대포를 발사했다.

상당수 포로가 이렇게 죽었다.

대포 사형제를 운영한 나라는 아프가니스탄이 마지막이다.

1930년 정치범 11명을 처형하는 데 활용하고서 폐지했다.

[숨은 역사 2cm] 영국에 맞선 인도인들도 '김정은식 대포 처형' - 3

대포 처형은 85년 만에 북한에서 변종으로 부활했다.

이것만으로도 김정은 위원장을 폭군으로 부를만하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공포에 의존한 집권자의 말로는 비참했다.

프랑스 구체제 혁파를 외치며 무수한 인명을 앗아간 로베스피에르도 그랬다.

군중으로 둘러싸인 파리 단두대에서 생을 마감했다.

폭정의 칼은 부메랑이 되어 본인에게 되돌아온 것이다.

hadi@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7/04/09 09:0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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