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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돌' 롯데…신격호가 빌린 5만엔이 매출 92조원으로 성장

송고시간2017-04-03 13:34


'50돌' 롯데…신격호가 빌린 5만엔이 매출 92조원으로 성장

'롯데그룹 창립 50주년 기념식'
'롯데그룹 창립 50주년 기념식'

(서울=연합뉴스) 3일 서울 송파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롯데그룹 창립 50주년 기념식'에서 신동빈 회장(가운데)이 관계자들과 비전 퍼포먼스 후 기념촬영하고 있다. [롯데 제공=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신호경 기자 = 재계 순위 5위, 지난해 매출 규모 92조원의 롯데그룹이 3일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2차 세계대전 직후 빌린 돈 5만 엔으로 일본에서 사업을 일으킨 신격호(辛格浩) 총괄회장(95)이 1967년 4월 3일 롯데제과를 세워 한국 사업을 시작한 지 반세기가 지난 것이다.

롯데제과 공장 시찰하는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왼쪽·촬영년도 미상·롯데그룹 제공)
롯데제과 공장 시찰하는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왼쪽·촬영년도 미상·롯데그룹 제공)

◇ 日서 빌린 5만 엔으로 비누·껌 팔아 사업 일으켜

롯데 50년 역사의 상당 부분은 신 총괄회장 개인의 '창업·경영 신화'와 겹친다.

신 총괄회장은 1922년 10월 4일 경남 울산 삼남면(三南面) 둔기리(芚其里) 한 농가에서 부친 신진수, 모친 김필순 씨의 5남 5녀 가운데 맏이로 태어났다.

가족과 자신을 위해 '큰일'을 하고 싶었던 스무 살의 청년 신격호는 1941년 일본행 관부 연락선에 몸을 실었고, 도쿄에서 낮에 우유·신문을 배달하고 밤에 상급학교 진학을 준비하는 고단한 고학 생활을 시작했다.

그의 역량과 성실성을 알아본 일본인 하나미쯔(花光)로부터 5만 엔을 투자받아 선반(절삭공구)용 기름 제조에 나섰으나, 두 차례나 공장이 미군의 공습을 받는 좌절을 겪었다.

1946년 3월 와세다 고등공업 이공학부를 졸업한 그는 다시 도쿄 시내에 직접 붓으로 쓴 '히까리(光) 특수화학연구소' 간판을 내걸고, 선반용 기름으로 비누·포마드·크림 같은 유지 제품을 만들었다. 패전 후 극심한 생필품난에 허덕이던 일본에서 신 총괄회장의 수제 비누는 생산하기 무섭게 동이 났고, 1년도 되지 않아 5만 엔의 빚을 모두 갚을 만큼 돈을 벌었다.

1947년 4월 마침내 신 총괄회장은 롯데의 상징이자 뿌리인 껌을 다음 사업 아이템으로 주목했다. 점령군 미군 군수품을 흉내 낸 조악한 품질의 초산비닐 수지 껌이 넘쳐날 때, 그는 남미산 천연수지로 당시 최고 수준의 껌을 만들어 큰 히트를 쳤다.

이 성공의 토대 위에 1948년 6월 마침내 자본금 100만엔, 종업원 10명의 주식회사 '롯데'가 설립됐다.

상호 롯데는 신 총괄회장이 고학생 시절 밤새워 읽었던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여주인공 이름에서 따왔다. 이 여인처럼 모든 제품이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라는 의미였다.

훗날 신 총괄회장은 스스로 "롯데라는 신선한 이미지를 바로 상호와 상품명으로 택한 내 결정은 내 일생일대의 최대 수확이자, 걸작 아이디어"라고 회고할 만큼 자신의 '작명'에 만족했다.

롯데쇼핑센터 개장식(1979.12.17·롯데그룹 제공)
롯데쇼핑센터 개장식(1979.12.17·롯데그룹 제공)

◇ 유통·호텔·화학 등 공격적 확장…50년 사이 매출 8억→94조

[그래픽] 롯데그룹 현황
[그래픽] 롯데그룹 현황

일본에서 사업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 신 총괄회장은 고국으로 눈을 돌렸다.

신 총괄회장의 한국 경영은 1965년 12월 18일 한일 국교 정상화 조인, 1966년 6월 17일 재일동포 법적 지위 협정 체결·발효 등으로 고국에 대한 투자의 길이 열린 뒤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는 일본에서와 마찬가지로 우선 제과업을 시작으로 고국 투자에 나섰다. 1967년 4월 자본금 3천만 원으로 롯데제과주식회사를 세우고 당시 국내 처음으로 멕시코 천연 치클을 사용한 고품질 껌을 선보여 한국에서도 '껌 왕국'으로서 명성을 쌓았다.

왔다껌, 쥬시후레쉬, 스피아민트, 후레쉬민트 등이 '대박' 행진을 거듭했고, 1972년 이후 빠다쿠키, 코코넛바, 하이호크랙커 등 다양한 비스킷 제품도 쏟아냈다. 신 총괄회장은 1974년과 1977년 칠성한미음료, 삼강산업을 인수해 각각 롯데칠성음료, 롯데삼강을 설립해 국내 최대 식품기업의 면모를 갖췄다.

아울러 그는 식품 외 관광과 유통을 고국에 꼭 필요한 '기반사업'으로 주목하고 과감한 투자에 나섰다.

신 총괄회장은 기회 있을 때마다 "부존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는 기필코 관광입국을 이뤄내야 한다는 게 나의 신념"이라고 강조했다.

그 신념의 첫 결실이 1973년 지하 3층, 지상 38층, 1천여 객실 규모의 당시 국내 최고층 건물, 동양 최대 특급호텔로 문을 연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이었다. 롯데호텔 완공에는 경부고속도로 건설비와 거의 비슷한 수준인 1억5천만 달러의 막대한 돈이 들어갔다.

유통 분야에서도 신 총괄회장의 투자는 선구적이었다. 1979년 개장한 소공동 롯데백화점의 규모(지하 1층~1상 7층)는 기존 백화점의 2~3배에 이르렀고, 영세 백화점이 난립한 당시 유통업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선진국 백화점에 견줄 만큼 질 측면에서도 독보적이었다.

롯데호텔 개장식 참석한 신격호 총괄회장(왼쪽에서 두번째·1979.3·롯데그룹 제공)
롯데호텔 개장식 참석한 신격호 총괄회장(왼쪽에서 두번째·1979.3·롯데그룹 제공)

비슷한 시기 신 총괄회장은 평화건업사 인수(1978년·현 롯데건설), 호남석유화학 인수(1979년·현 롯데케미칼) 등을 통해 건설과 석유화학 산업에도 진출했다.

식품-관광-유통-건설-화학 등에 걸쳐 진용을 갖춘 롯데 그룹은 1980년대 고속 성장기를 맞았고, 기네스북이 인정한 '세계 최대 실내 테마파크' 서울 잠실 롯데월드도 1989년 문을 열었다.

1990년대에도 신 총괄회장은 편의점(코리아세븐), 정보기술(롯데정보통신), 할인점(롯데마트), 영화(롯데시네마), 온라인쇼핑(롯데닷컴), SSM(롯데슈퍼), 카드(동양카드 인수), 홈쇼핑(우리홈쇼핑 인수) 등으로 계속 사업 영역을 넓혀갔다.

신 총괄회장의 차남 신동빈 회장은 2004년 그룹 정책본부장(부회장)에 취임한 이후 본격적으로 '뉴 롯데'를 준비해왔다.

신동빈 회장은 공격적 인수·합병(M&A)를 통해 우리홈쇼핑(2007년), GS리테일 백화점·마트 부문(2010년), 하이마트(2012년), 현대로지스틱스(2014년), KT렌탈(2015년), 뉴욕팰리스 호텔(2015년) 등을 잇달아 그룹에 편입시켰다.

그 결과 현재(2016년 기준) 롯데그룹은 매출 92조원(94개 계열사·해외 매출 11조6천억원), 국내외 임직원 12만5천명에 이르는 재계 5위의 대기업 집단으로 성장했다. 1967년 한국 롯데제과 설립 첫해 매출(8억원)과 비교하면, 50년 사이 무려 11만5천배로 뛴 셈이다.

특히 올해 창립기념일의 경우 신격호 총괄회장과 신동빈 회장이 대를 이어 30년동안 지은 국내 최고층 건물(123층·555m)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의 개장식(그랜드 오픈)까지 겹쳐 50주년의 의미를 더하고 있다.

서울 잠실 123층 롯데월드타워
서울 잠실 123층 롯데월드타워

shk99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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