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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성지 '절두산 순교기념관' 50주년…'인 모멘텀' 특별전

송고시간2017-03-18 11:55

1967년 10월 22일 열린 절두산 순교성지 순교기념관 축성식 모습.[천주교 서울대교구 제공]

1967년 10월 22일 열린 절두산 순교성지 순교기념관 축성식 모습.[천주교 서울대교구 제공]

(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천주교 순교자들의 피와 눈물의 역사를 되새겨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절두산 순교성지(주임 원종현 신부)는 25일부터 순교기념관 축성·봉헌 50주년을 맞아 특별전 '인 모멘텀'(IN MOMENTUM)을 연다고 18일 밝혔다.

서울 마포구 합정동 한강변에 있는 절두산은 한국 천주교의 순교 사적지다.

누에의 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잠두봉이라 불리던 이곳의 명칭이 절두산으로 바뀐 것은 1866년 병인박해(丙寅迫害)부터다.

그해 일어난 병인양요 때 프랑스 함대가 양화진까지 진출했다가 물러나자 프랑스 함대와 천주교 신자들이 내통했다고 생각한 흥선대원군은 전국 각지에 척화비(斥和碑)를 세우고 천주교 신자들을 처형했다.

박해가 시작된 1866년부터 1871년까지 천주교 신자 8천여 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양화진 인근 절두산 치명터에서는 200여 명이 참수를 당했다.

1967년 완공된 절두산 순교성지 순교기념관. [가톨릭신문사 제공]

1967년 완공된 절두산 순교성지 순교기념관. [가톨릭신문사 제공]

절두산에서 가장 먼저 순교한 사람은 이의송(1821∼1866)으로, 1866년 9월 16일에 아내, 아들과 함께 처형됐다. 이의송의 가족을 비롯해 비교적 기록이 명확히 남은 순교자 13명은 현재 시복(諡福)이 추진되고 있다.

1956년 절두산 순교지를 매입한 한국 천주교회는 1966년 순교기념관 건립에 착수했으며 1967년 완공 뒤 축성식을 열었다. 기념공원으로 꾸민 앞마당에는 한국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1821∼1846) 신부의 동상을 세웠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한국 교회사 연구의 선구자로 불리는 파리외방전교회 레옹 피숑(한국명 송세흥·1893∼1945) 신부와 한국천주교순교자현양회가 수집한 유물들이 공개된다.

또 박해 시대 교우촌인 여사울, 계촌리, 삽티리 발굴 과정에서 수습된 순교자들의 유물과 사료를 바탕으로 제작한 '103위 성인 표준 영정' 등을 선보인다.

아울러 김대건 신부의 서한, 김수환 추기경을 포함한 역대 서울대교구장의 유품과 사제들의 기증품도 만나볼 수 있다.

전시는 오는 10월 21일까지다.

kihun@yna.co.kr

절두산 순교성지 순교기념관 '인 모멘텀'전 포스터.[천주교서울대교구 제공]

절두산 순교성지 순교기념관 '인 모멘텀'전 포스터.[천주교서울대교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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