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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트라우마' 日경찰 간부, 관동대학살 보복"

송고시간2017-03-01 07:48

한일문화연구소 김문길 소장 주장

(부산=연합뉴스) 차근호 기자 = 조선인 희생자 수가 6천6백61명에 달하는 1923년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사건'은 3.1 독립운동 때 곤욕을 치른 일본 경찰 간부가 꾸민 보복살해라는 주장이 나왔다.

김문길 한일문화연구소 소장은 "관동대지진 때 일본 경찰이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유언비어를 날조해 조선인을 학살한 것은 3.1 독립운동을 겪은 트라우마 때문"이라고 1일 말했다.

1919년 3월 1일 한일병합조약의 무효와 독립을 주장하며 조선 전역에서 비폭력 만세운동이 일어난 지 4년 후인 1923년 9월 1일 일본 관동지역에서 진도 7.9의 대지진이 발생했다.

엄청난 재앙과 혼돈 속 일본인들 사이에는 "조선인이 살인을 저지른다" "우물에 독을 탔다"는 고약한 소문이 일본 경찰청의 사건보고 형식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날조된 유언비어 [김문길 소장 제공 = 연합뉴스]
날조된 유언비어 [김문길 소장 제공 = 연합뉴스]

완전히 날조된 이 소문은 각급 경찰서와 군부대, 언론을 통해 전해지면서 일본에 계엄령이 내려졌고 조선인 노동자와 재일 독립운동가 6천여 명이 누명을 쓰고 학살됐다.

김 소장은 당시 계엄령을 내린 미즈노 렌타로(水野鍊大郞) 내무대신의 개인사에 초점을 맞춰보면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 학살은 보복살해라는 점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 소장은 "미즈노 렌타로는 3.1운동 때 조선총독부 경무총감으로, 조선총독부에 부임한 지 이틀 만에 조선 독립군이 던진 최루탄에 맞아 서울 역장실에서 온몸을 벌벌 떨며 하루를 피신해 있다가 입원 치료까지 받는 등 트라우마가 있다"면서 "그가 관동대지진 발생 직후 조선인들의 입국을 통제하고 3.1운동 가담자들을 색출하고 나섰다"고 주장했다.

일본육군지진 자료에 따르면 당시 일본인들이 학살한 조선인들은 '3.1만세 운동 가담자' '폭동 주동자'들로, 학살과 고문을 당하는 순간에도 독립만세를 외친 것으로 알려진다.

'3.1만세 운동 가담자' 학살 증거 일본육군지진자료
'3.1만세 운동 가담자' 학살 증거 일본육군지진자료

[김문길 소장 제공 = 연합뉴스]

김 소장은 "우물에 독을 타는 것은 일본인들이 3.1운동 이후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을 죽이려고 쓴 방법이라는 일본의 학자 마츠오쇼이치(松尾章一)의 논문이 있다"면서 "일본인들은 뻔뻔하게도 자신들이 조선땅에 쓰던 방식으로 조선인에 누명을 씌우고 죽였다"고 설명했다.

김 소장은 "3.1 독립운동에 대한 폭넓은 연구는 앞으로도 더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일본이 참담한 역사적 사실 앞에 진지한 사죄와 반성의 태도를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read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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