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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게임] IMF가 파놓은 한국 스키점프의 '깊은 골짜기'

세대교체 실패한 스키점프, 최근에야 선수 육성 한창
22일 14년 만의 동계아시안게임 개인전 메달 도전
최서우의 궤적
최서우의 궤적(평창=연합뉴스) 이진욱 기자 = 14일 오후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올림픽 스키점프센터에서 열린 2017 FIS 스키점프 월드컵 남자 예선에서 최서우가 설원을 향해 점프하고 있다. 2017.2.14
cityboy@yna.co.kr

(삿포로=연합뉴스) 이대호 기자 = 한국 스키점프가 세계 무대에서 처음 이름을 알린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최흥철(36), 최서우(35), 김현기(34·이상 하이원)는 대표팀의 전부나 다름없다.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에서 처음 올림픽 무대에 얼굴을 내민 이들 '스키점프 삼총사'는 2017년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에도 참가한다.

30대 중반의 나이에도 기량을 유지하는 그들의 초인적인 노력은 박수받을 만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뒤를 이을 선수가 아직도 나타나지 않는 건 한국 스키점프가 풀지 못한 숙제다.

이번에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 대표로 출전한 선수는 이들 3명에 이주찬(21·한라대)과 조성우(17·상지대관령고)까지 5명이다.

개인전과 단체전 모두 국가당 4명씩 출전 가능해 최흥철과 최서우, 김현기, 이주찬까지만 경기에 출전한다.

그리고 '국가대표 삼총사' 가운데 막내인 김현기와 이주찬의 나이 차는 13살이다.

이번 대회 한국 스키점프 국가대표팀에는 운동선수로 한창 전성기를 맞아야 할 20대 초반부터 30대 초반까지 선수가 전무하다.

말 그대로 한국 스키점프의 '깊은 골짜기'인 셈이다.

경기 때마다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 스키점프는 생활체육으로 자리 잡기 힘든 종목이다.

당연히 저변이 넓고, 쉽게 스키점프를 접할 수 있는 국가에서 좋은 선수가 많이 나온다.

일본만 하더라도 삿포로와 아오모리 등 북부 지방에는 쉽게 스키점프대를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의 스키점프대는 평창과 무주 단 두 군데뿐이다.

그나마도 무주는 관리 부실로 시설이 노후화돼 현재는 무용지물이라 사실상 알펜시아 한 군데서만 스키점프를 할 수 있다.

최흥철은 "스키점프는 정말 인생을 걸고 하는 종목이다. 최소 4~5년은 해야 선수에게 적성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는 무조건 강원도에 와야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체 누가 쉽게 스키점프를 시작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사실 한국 스키점프는 크게 도약할 기회가 있었다.

1990년대 견실한 중견 기업이었던 쌍방울은 전라북도 무주군과 손잡고 동계올림픽 유치전에 뛰어들었는데, 생소한 동계종목을 육성해 차별화를 꾀했다.

그때 쌍방울은 스키점프에 주목했고, 유망주를 선발해 본격적으로 육성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스키점프 경기가 열리지 않는 무주 경기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지금은 스키점프 경기가 열리지 않는 무주 경기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최서우는 당시를 회상하며 "1991년으로 기억하는데, (최흥철과 김현기까지) 우리 셋 모두 같이 시작했다. 당시 쌍방울은 무주리조트에 올림픽을 유치하겠다고 스키점프와 루지, 에어리얼 등 신생 종목에 투자했다. 우리는 쌍방울의 수혜자"라고 말했다.

이어 "1990년대 중반에는 쌍방울에서 개인 코치까지 고용해 우리한테 붙여 줬다. 그때 우리가 초등학생이었는데 1인당 1억 가까이 투자했다고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때 한국을 찾은 인물이 '한국 스키점프의 아버지'라 불리는 요헨 단네베르크(64)다.

이들은 모두 단네베르크 코치의 지도를 받았고, 국내 지도자도 그에게 배워 선수들을 가르쳤다.

하지만 1997년 모든 걸 집어삼켰던 IMF가 한국 스키점프까지 덮쳤다.

당시 쌍방울도 IMF를 버티지 못하고 부도 처리됐고, 스키점프에 대한 지원도 뚝 끊겼다.

최흥철은 "IMF 때문에 우리도 큰 영향을 받았다. 지원이 끊겼고, 새로 시작하는 선수도 줄었다"고 설명했다.

그 뒤에도 최흥철과 최서우, 김현기에 지금은 선수 생활을 마감한 강칠구까지 4명은 꿋꿋하게 스키점프를 지켰다.

하지만 새로운 선수의 유입은 끊겼고, 2009년 영화 '국가대표'의 성공도 짧은 관심만을 받는 데 그쳤다.

최근에야 스키점프에 도전하는 선수가 늘어가고 있지만, 아직 이들과의 기량 차이는 크다.

김현기는 "'애들 못 올라오게 버티고 있다'라는 얘기도 듣는다. 하지만 지금도 우리 체력이 20대 젊은 후배들보다 좋다. 그리고 후배들도 누군가를 보면서 점프를 해야 한다. 우리가 빠져버리면, 후배들은 성장할 기회조차 무너진다"며 스키점프의 현실을 짚었다.

등에 하나씩 무거운 짐을 짊어진 스키점프 대표팀은 22일 노멀힐 개인전에서 메달 사냥에 나선다.

한국 스키점프는 역대 동계아시안게임에서 2003년 아오모리 대회 단체전 금메달·개인전 동메달(최흥철), 2011년 이스타나-알마티 대회 단체전 동메달 등 3개의 메달을 수확했다.

4bun@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7/02/22 05:0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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