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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힘들 땐 온 국민이 나섰다…국채보상운동 110주년

대구서 시작해 전국으로 확산…관련 기록물 세계유산 등재 추진
국채보상운동 의연금 모금 장부[연합뉴스 자료사진]
국채보상운동 의연금 모금 장부[연합뉴스 자료사진]

(대구=연합뉴스) 손대성 기자 = 우리 국민은 나라 경제가 어려울 때 힘을 모으곤 했다.

가까운 사례로 1997년 외환위기 때 전 국민이 벌인 '금 모으기 운동'을 들 수 있다.

정부가 잘못해 닥친 위기를 극복하고자 전 국민이 순수하게 뜻을 모았다.

이렇게 민간이 주도해 경제자주권을 회복하려고 한 사례는 110년 전에도 있었다.

구한말 일본으로부터 경제 독립을 지키고 국권 회복을 위해 벌인 국채보상운동이다.

일제는 1904년 고문정치를 시작한 뒤 우리나라 경제를 파탄에 빠뜨리기 위해 돈을 빌려줬다.

이 대가로 경찰기구를 확장하는 등 침략 발판으로 활용했다.

1907년 나랏빚은 당시 돈으로 1천300만원이었다.

대구시는 현재 돈으로 환산하면 약 3천300억원 상당이라고 밝혔다.

이에 1907년 대구에서 김광제 선생, 서상돈 선생 등이 앞장서 나랏빚을 갚자는 국채보상운동을 펴자고 했다.

이 운동은 순식간에 전국으로 퍼졌다.

남자는 담배를 끊고 그 돈을 내놓고 여자는 패물을 기부하는 등 각계각층이 참여했다.

김광제, 서상돈 선생이 주도한 애국계몽운동단체 대동광문회가 돈을 모으고자 국채보상운동 대구군민대회를 연 날이 1907년 2월 21일이다.

이 운동에 놀란 일제 통감부는 국채보상기성회 총무인 양기탁을 근거도 없이 국채보상의연금 횡령 혐의로 구속했다가 무죄로 석방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국채보상운동은 점차 퇴조했다.

그러나 국채보상운동이 국민 힘으로 나랏빚을 갚으려 한 애국 운동이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대구시는 이 운동을 기념해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국채보상로란 이름을 붙였다.

또 국채보상운동 대구군민대회를 연 2월 21일 즈음에 해마다 국채보상운동기념식을 연다.

대구시와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는 2015년 국채보상운동기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올려달라고 신청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여부는 올해 결정이 난다.

대구시, 국가보훈처 등은 올해도 어김없이 21일 시립중앙도서관에서 국채보상운동 110주년 기념식을 했다.

기관단체장과 시민 150여명이 참석했고 국채보상운동 취지문 낭독, 기념사, 축사 순으로 열렸다.

참석자들은 국채보상운동 의미를 되새기며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기를 기원했다.

이와 함께 시는 26일까지 대구문화예술회관 전시실에서 국채보상운동 관련 자료를 전시한다.

국채보상운동을 주도적으로 보도한 대한매일신보 보도내용, 취지문·영수증 등 당시 국권 회복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엿볼 수 있는 자료다.

시는 국채보상운동과 함께 1960년 2·28 민주운동이 대구에서 일어난 일을 기념해 21일부터 28일까지를 대구시민주간으로 지정해 운영한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국채보상운동 기념일은 대구시민주간을 여는 날이다"며 "자랑스러운 대구시민정신을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에 알리겠다"고 말했다.

sds123@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7/02/21 11:22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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