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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그때] 반기문 불출마, 취재 뒷이야기

'신세계'로 떠난 반기문의 '신(Scene) 세 개'
같은 생각?
같은 생각?

(서울=연합뉴스) 배재만 기자 = 세상에는 놀랄 일이 많습니다. 친구나 지인의 소식에 놀라기도 하고 연예인의 스캔들에 놀라기도 하고 어이없는 사건·사고 소식에도 놀라곤 합니다.

제 기억에는 가장 놀랐던 일이 2001년의 '9.11테러'였던 듯합니다. 하지만 그 일은 먼 다른 나라의 일이었고, 기자였지만 그저 지켜만 볼 수밖에 없는 사건이었기에 '저게 영화인가 현실인가?' 하는 황당함에 젖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불출마선언은 제 코앞에서 벌어진 일이었고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었는 데다가 다른 누구도 아닌 제가 해야만 하는 업무에 속한 일이었기에 그 놀라움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그 날 그때 그랬습니다.

#Scene 1-세 정당

세 정당 대표 찾은 반기문
세 정당 대표 찾은 반기문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반가운 얼굴로 새누리당사로 들어섰습니다. 소위 '3지대 빅텐트론'으로 다양한 정치세력과 연대하는 대선 전략을 펼치며 국회 정당 대표들을 만나기 위한 첫걸음이었습니다.

반 전 총장은 새누리당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나 '개헌협의체' 구상을 설파했지만, 분위기는 냉랭했습니다. 설 연휴 이후 반 전 총장의 지지율이 하락세를 벗어나지 못하지만,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의 지지율이 상승세를 보이면서 분위기는 '황교안 러브콜'의 기류가 감지됐기 때문입니다.

인 위원장은 "나이가 들어 미끄러져 낙상하면 큰일입니다. 특히 겨울엔 미끄러워서 여기저기 다니면 낙상하기 쉬워 집에 가만히 있는 게 좋습니다"는 농담을 던졌습니다. 반 전 총장은 "허허" 웃기만 했습니다. 헛웃음에 가까웠습니다.

반 전 총장은 바로 이어 바른정당을 찾아 정병국 대표와 주호영 원내대표 등 지도부를 만났습니다. 새누리당에 들어설 때처럼 반 총장은 반가운 표정을 지어 보였습니다.

반 전 총장은 유승민 의원과도 인사도 하고 기념촬영도 했습니다. 유 의원이 나간 뒤 열린 지도부와의 간담회에서 반 전 총장은 "국민을 대통합시키는 좋은 계기를 마련하는 데 여러분이 앞장서주기 바랍니다"고 말하며 "제가 국민의 대통합과 화해, 이런 걸 도모해야겠습니다"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반 전 총장은 오후에 정의당 심상정 대표도 만났습니다. 그 도중에 보좌진에게 기자회견 준비를 시켰습니다. 이런 사실을 모른 심 대표는 반 전 총장에게 "정치적 선택은 자유지만 아마 국민도 저처럼 안타까움을 갖고 있을 것"이라며 "저는 아직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습니다.

심 대표는 추후 페이스북을 통해, 반 전 총장에게 '꽃가마 대령하겠다는 사람 절대 믿지 마시라. 총장님을 위한 꽃방석은 마련돼 있지 않다'고 조언했다는 내용의 비공개 회담 발언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Scene 2-국회 정론관

아수라장 속의 반기문
아수라장 속의 반기문

여야가 4당 체제가 된 이후 기자실은 하루하루 숨 쉴 틈 없이 바빠졌습니다. 이날도 반 전 총장의 '정당투어'를 쫓아다니느라 연이은 취재와 마감에 시달렸습니다. 이른 오후가 되면서 다들 이미 '파김치'가 된 기분이 들 정도였습니다.

후배 기자에게 맡긴 반 전 총장의 정의당 방문은 마감이 밀려서 여태 마감하지 못했다는 말을 듣고 조금 짜증이 나기도 했습니다. '유력 대선주자인데 빨리 마감하라'고 재촉한 뒤 국회 정론관으로 고정된 TV를 켰습니다.

반 전 총장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아, 3당 회동한 내용을 브리핑 하려고 하는구나'생각하며 저 또한 반 전 총장의 발언을 건성으로 들으며 오전부터 조금씩 밀려 있던 마감을 하려고 노트북을 응시했습니다.

순간, 귓가를 때리는 평범한 어조의 한 마디. "제가 주도해 정치교체를 이루고 국가 통합을 이루려던 순수한 뜻을 이만 접겠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발언이 들렸습니다. '헉'하는 외마디의 가는 비명이 저절로 입 밖으로 새어 나왔고, 국회 사진기자실 여기저기서 비명, 탄성, 혹은 고함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반기문 둘러싸고...
반기문 둘러싸고...

저마다 카메라를 집어 들고 정론관으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경우, 좀 과장해서 말하면, 순간의 기억을 잃어버립니다. 나중에 그 시간을 되돌아보면, 마구 달린 거리나 날다시피 뛰어 내려갔던 계단을 내려간 내 모습이 도무지 생각나지 않을 정도입니다.

5분도 되지 않는 대선 불출마 선언문을 읽고 난 반 전 총장이 바로 정론관을 나섭니다. 정론관에서 공식 발표를 한 회견자는 바로 앞 복도에서 기자들로부터 일문일답 시간을 갖는 것이 보통입니다. 질문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지만, 기자들은 스스로 충격을 이겨내려는 듯 아우성치며 차가운 복도로 밀려들었습니다. 어느새 복도는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날벼락을 맞은 사람은 기자들만이 아니었습니다. 정신이 멍하기는 수행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도 전혀 예상 못 한 내용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본연의 임무를 얼른 알아차린 수행원들은 반 전 총장을 에워쌌습니다. 일문일답은커녕 기자들과 수행원들은 방향조차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엉켜버렸습니다.

카메라 숲 속의 반기문
카메라 숲 속의 반기문

그때부터는 '전쟁'입니다. 한마디라도 더 들으려는 취재기자와 한 컷이라도 더 담으려는 사진기자 및 방송 카메라 기자에게는 오직 '반기문'이라는 목표물만 보일 뿐입니다. 선후배도 없고 평소의 안면도 무시됩니다. 극심한 몸싸움과 고함이 진동하고, 내 장비와 내 손과 내 귀를 지키기에 바쁩니다.

반 전 총장의 바로 옆과 뒤에는 취재기자들이 내민 녹음용 휴대전화가 서로 자리를 다투고 있고, 어느 정도 초점거리가 필요한 사진기자와 카메라 기자들은 반 전 총장의 표정을 조금이라도 더 잘 포착하기 위해 장비를 계속 들어 올립니다.

10m 남짓한 복도를 지나가는데 족히 3~4분은 걸린 듯합니다. 그 와중에 밖으로 통하는 전자카드 출입문 펜스가 부서지기도 하고, 한 여기자는 균형을 잃고 쓰러지며 신음에 가까운 비명을 질러댑니다.

차량에 겨우 오른 반기문
차량에 겨우 오른 반기문

우여곡절 끝에 승용차에 오른 반 전 총장은 차량 앞과 뒤, 그리고 옆을 에워싼 취재진에 막혀 오도 가도 못합니다. 그 와중에 고성과 고함과 비명은 쉬지 않고 들렸고 마치 억겁의 시간이 지났다 싶을 무렵, 차량은 겨우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Scene 3-사당동 자택 앞

환한 웃음 보이는 반기문
환한 웃음 보이는 반기문

전날 갑작스러운 대선 불출마선언을 한 반 전 총장이 예상보다 이른 아침, 자택을 나섭니다. '잘 주무셨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편안하게 잘 잤습니다. 오랜만에"라고 답하며 그동안 보기 어려웠던 환한 웃음을 지어 보였습니다.

화려한 귀국 후 20여 일의 강행군 속에서 얻은 마음고생을 훌훌 털어낸 듯한 자연스러운 웃음이었습니다. 반 전 총장은 작심한 듯이 여러 설명을 하며 20여 분이나 되는 긴 시간을 기자들과 함께했습니다. 대단한 '서비스'인 셈입니다.

불출마 결정계기를 묻는 말에 "한 3주간 정치인들을 죽 만나보니까 그분들 생각이 전부 다르고 한군데 끌어모아서 대통합 이루겠다는 제 꿈이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라는 요지의 답변을 이어갔습니다.

지난달 12일,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하며 대선 출마의 뜻을 강하게 비추며 손을 들며 보였던 환한 웃음과 이날 무거운 짐을 훌훌 털어버린 듯 자택을 나서며 보였던 웃음은 같은 사람의 것이었지만 성질은 아주 다른 것이 아닐까요? 둘 중 하나가 '물'이라면 다른 하나는 '불'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scoop@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7/02/04 15:0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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