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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창경궁 관천대'는 천문대 아냐…표준시간 계측대"

송고시간2017-01-30 09:45

보물 제851호 '창경궁 관천대'. [문화재청 제공]

보물 제851호 '창경궁 관천대'. [문화재청 제공]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서울에는 '관천대'(觀天臺)라는 명칭이 붙은 문화재 두 개가 있다. 창경궁에 있는 '창경궁 관천대'(보물 제851호)와 종로구 안국역 인근 현대 사옥 옆에 있는 '서울 관상감 관천대'(보물 제1740호)다.

관천대는 조선 세종 때 발명된 천체 관측기구인 '소간의'(小簡儀)를 놓는 석대로, 별을 보는 장소라는 의미의 '첨성대'(瞻星臺)라고도 불렸다.

그러나 두 관천대의 형태를 비교하면 차이점이 눈에 띈다. 특히 누대 위에 솟아 있는 돌기둥의 모양이 다르다.

창경궁 관천대(왼쪽)와 서울 관상감 관천대의 돌기둥. [문화재청 제공]

창경궁 관천대(왼쪽)와 서울 관상감 관천대의 돌기둥. [문화재청 제공]

이와 관련해 창경궁 관천대는 천문대가 아니라는 주장이 나왔다. 과학사를 전공한 남문현 건국대 명예교수는 국립고궁박물관이 최근 발간한 학술지 '고궁문화'에 게재한 논문에서 창경궁 관천대는 표준시간 계측기구인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를 놓는 받침대라고 밝혔다.

물시계 '자격루'가 설치된 보루각 앞에 있었던 일성정시의는 북극성의 위치와 한낮의 그림자를 살펴 정확한 자정과 정오 시각을 계측하는 도구였다. 조선은 물시계의 오차를 바로잡기 위해 일성정시의를 활용했다.

남 명예교수는 일성정시의에 대해 "자격루의 가치를 제고했고, 조선이 독자적으로 표준시간을 파악하게 해준 근본 원인"이라며 "당시 세계에서 태양과 별로 시각을 결정해 물시계를 운영한 사례는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창경궁 관천대를 일성정시의의 받침대로 보는 근거로 조선 후기 저술가인 황윤석(1729∼1791)이 '이재전서'(이<(臣+頁>齋全書)에 남긴 기록을 제시했다.

황윤석은 이 책에서 "마침 동궁이 비어서 일영대에 올라가 측경기(測景器)를 살펴보았다. 의기의 다리받침은 청석으로 만들었는데, 모가 지고 길쭉하였다"고 했다.

이에 대해 남 명예교수는 "일영대가 현존하는 창경궁 관천대이고, 측경기는 일성정시의의 일종으로 짐작된다"고 주장했다.

창경궁 관천대. [문화재청 제공]

창경궁 관천대. [문화재청 제공]

이어 그는 '창경궁 관천대'가 보물로 지정된 1985년 직전에 간행된 '한국의 과학문화재 조사보고 1980-1985'에도 관천대를 일성정시의대로 보는 견해가 있었음을 지적했다.

남 명예교수는 "보고서에서 일부 집필자는 창경궁 석대를 정시의의 네 발을 올려놓는 받침돌로 본 반면, 다른 집필자는 소간의를 설치한 관천대로 간주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일성정시의대는 언제부터 관천대라는 오해를 받았을까. 남 명예교수는 일본의 기상학자 와다 유지(和田雄治)가 1917년 발표한 보고서에서 잘못된 추론을 한 뒤부터 '창경궁 관천대'설이 굳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창경궁 관천대로 명명된 대한민국 보물 제851호는 창경궁 보루각 일성정시의대가 분명하다"며 "역사적 사실과 용도를 도외시하고 이것을 관천대로 명명한 것은 잘못이므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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