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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손끝으로 조선독립을 그리다

송고시간2017-01-11 18:00

(서울=연합뉴스) 한혜원 기자·정현희 작가·이홍재 인턴기자 = 1944년 5월, 조선총독부 체신국 경성보험관리소 1층의 화장실 판자벽에서 연필로 쓴 낙서가 발견됐습니다. 조선의 독립을 외치고, 전시 징병 제도를 비판하는 글이었죠. 낙서의 주인은 덕수공립상업학교 2학년 김용창. 이처럼 일제의 억압 아래에서 치열하게 싸우며 조국 독립의 초석을 닦은 학생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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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으로 조선독립을 그리다 - 낙서 운동과 잊힌 학생 독립운동가들

1944년 5월, 조선총독부 체신국 경성보험관리소 1층의 화장실 판자벽에서 연필로 쓴 낙서가 발견됐습니다.

'반도 2천 6백만 동포여, 자 일어서라! 조선독립의 때는 왔다. 지금 와서 지원병이니 징병이니 하고 있다. 아아! 가련하도다' 조선의 독립을 외치고, 전시 징병 제도를 비판하는 글이었죠.

낙서의 주인은 덕수공립상업학교 2학년 김용창. 3·1 운동의 보복으로 끔찍한 학살이 자행됐던 수원 제암리 출신의 고등학생이었습니다.

고등계 형사에 붙잡힌 이 청년은 보안법 위반과 일본 천황 모독죄로 징역 1년6월을 선고받습니다. 그리고 1945년 4월 3일, 광복을 불과 몇달 앞두고 옥에서 순국하고 말았습니다.

당시 김용창의 나이는 19세. 시대는 달랐지만 유관순 열사(1902~1920)와 비슷한 나이에 그는 조국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쳤습니다.

일본이 대대적인 전시 동원을 벌인 1930~40년대 독립운동의 중심에는 김용창과 같은 학생 운동가들이 있습니다.

낙서와 비밀리에 이뤄진 독립운동 소식 유포는 이 시기를 대표하는 항일운동 방법이었습니다. 1941년에는 낙서 항일운동이 총 239건이나(10월까지) 적발·검거될 정도로 성행했죠.

일제의 조선어 사용 금지 정책에 대한 반발로 수원고등농림학교 학생들이 결성한 '한글 연구회'. 대구 상고 학생들의 독립운동 조직 '태극단'.

일제의 차별과 억압 아래에서 치열하게 싸운 학생들은 조국 독립의 초석을 닦았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노력은 오늘날 크게 조명받지 못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활발히 민족운동을 전개했지만, 여전히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도 많습니다.

일제 치하 35년간 고통의 시간과 싸운 독립운동가들. 몇몇의 이름은 세월 속에 잊혔지만, 그 투쟁의 흔적은 여전히 이 땅에 남아있습니다. (참고자료: '잊혀진 민족운동가의 새로운 부활'·박환)

hye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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