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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축제 탐방> 형형색색 빛물결, 보성차밭 수놓다

송고시간2017-01-06 08:04

이충무공 혼 깃든 '빛의 향연' 1월 31일까지 펼쳐져

(보성=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어둠은 빛의 어머니다. 어둠이 있어 빛은 태어나고, 빛이 있어 어둠은 거룩하다.

'밝은 빛으로 세상을 다스린다'는 뜻인 광명이세(光明理世). 먼 옛날에 고조선이 이를 건국이념 중 하나로 삼았던 이유가 충분하다 싶다. 어둠과 빛, 빛과 어둠은 본디 하나가 아니던가.

부채꼴로 펼쳐진 보성차밭의 빛 물결
부채꼴로 펼쳐진 보성차밭의 빛 물결

(사진/임귀주)

2016보성차밭 빛축제 점등식이 열린 지난달 16일 오후.

전남 보성의 몽중산과 활성산 사이에 있는 한국차문화공원 골짜기에는 써늘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올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씨라는 일기예보마따나 저녁이 가까워질수록 체감온도는 영하권으로 뚝뚝 떨어졌다.

점등식에 앞서 식전공연이 펼쳐진 공원 입구의 빛광장 무대 객석은 날씨만큼이나 썰렁했다. 어두움의 그림자도 서서히 짙어져 갔다.

"제석산 제석봉에 해가 오를 때 벌교 앞바다 숭어가 뛰네 / …(중략)… /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보성아리랑예술단의 '보성아리랑'에 이어 '성주풀이' '진도아리랑'이 흥겹게 울려퍼지고, 바통을 넘겨받은 백제가야금연주단의 '맘마미아' '워털루' 연주는 경쾌한 음률로 신명을 더했다.

야외 객석은 기적처럼 방문객들로 삽시간에 넘쳐나고 이곳저곳에서 추임새와 탄성이 터져나왔다.

"얼씨구!" "조오타(좋다)!"

추위는 그 사이에 꽁지를 뺀 채 저만큼 달아나고 골짜기는 축제 열기로 서서히 채워졌다.

이날 개막식 하이라이트는 바로 '점등'이었다.

보성군수의 환영사와 전남도지사의 축사가 끝나자 사회자와 참가자들은 한목소리로 일제히 점등 카운트 다운에 들어갔다.

천지사방이 아직은 초저녁의 어스름에 묻혀 있는 시간.

"5, 4, 3, 2, 1, 점등~" "와!"

그 순간, 어둠의 세계가 잉태해 낳은 빛의 대향연이 펼쳐졌다고 할까.

어둠이 깔리던 골짜기가 일대 변신을 했고, 여기저기서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탄성이 터져 나왔다.

차밭이 있는 산언덕이 눈 깜짝할 사이에 별천지로 돌변한 장면을 마주한 사람들은 마법과 같은 탄생의 경이로움에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개막공연을 펼치는 보성아리랑예술단
개막공연을 펼치는 보성아리랑예술단

(사진/임귀주)

◇ 녹차와 빛, 그리고 이충무공이 어우러진 '삼중주'

'녹차 수도'로 일컬어지는 전남 보성군은 겨울마다 대규모 빛축제를 개최해 전국에서 관람객들을 불러 모은다. 이번이 14회째다.

1999년 첫선을 보인 뒤 2005년부터는 매년 꼬박꼬박 빛잔치를 벌여왔다.

녹차와 빛을 하나로 연결해온 보성차밭 빛축제는 2015년부터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새로이 '초대'해 의미가 더욱 깊어졌다.

봄철인 5월에 보성다향대축제가 열리고 연말연시에는 차밭 빛축제가 녹차의 고장을 한껏 빛낸다.

지난달 16일 막을 올린 이번 축제는 1월31일까지 47일간 보성읍 녹차로의 한국차문화공원과 회천면 율포리의 율포솔밭해수욕장 등지에서 펼쳐진다.

주제는 'A beam of hope 이순신, 희망의 빛'이다.

무려 200만 개의 LED 조명등으로 연출한 각양각색의 작품이 차밭 언덕과 계곡, 해수욕장을 환상의 세계로 바꿔 놓는다.

차문화공원 일대에는 대규모 차밭빛물결 작품과 은하수터널 등이 다채롭게 전시된다.

바로 인근의 봇재다원에서는 초대형 트리를 만나는 감동을 누리게 되고, 남쪽의 율포해수욕장에 이르면 2017년 정유년(丁酉年)을 상징하는 닭 조형물 등 다양한 작품들을 파도소리와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점등시간은 평일 저녁 6시부터 10시까지. 금요일과 토요일 그리고 공휴일에는 자정까지 불을 밝힌다.

축제의 중심장소인 차문화공원에서 만나는 주요 작품은 차밭 산언덕을 드넓게 수놓는 차밭 빛물결과 판옥선, 그리고 빛광장과 북루를 연결하는 은하수터널이다.

차밭 빛물결은 가로 120m, 세로 60m의 초대형 작품이다. 오색 불빛이 폈다 접었다 하는 쥘부채 모양을 연출해 생성과 확산, 소멸과 재생의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길이 200m, 높이 2.5m의 은하수터널을 걷노라면 신비의 세계를 여행하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별처럼 점점이 박혀 빛나는 조명 사이로 갖가지 소망지들이 나붙어 읽는 맛도 함께 즐길 수 있다.

'운수대통, 항상 좋은 일들만 가득하길' '더욱 건강하게 정유년을 보내자' 같은 진지한 내용은 물론이고 '운동해서 살 빼자! 아자!' '로또 당첨되게 해주세요' 같은 익살스러운 문구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차문화공원에는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끌었던 판옥선도 거대한 작품이 되어 산언덕을 빛낸다. 공룡과 용, 사슴 등 각종 조형물도 희망의 빛동산에서 만날 수 있다. 말 그대로 환상적 빛의 향연장에서 그 신비와 아름다움을 맘껏 즐길 수 있다.

충북 청주에서 가족여행을 왔다는 박상진(25) 씨는 "차밭 빛축제는 처음"이라며 "익히 소문으로 듣긴 했지만 이렇게 두 눈으로 직접 보니 기분이 정말 황홀해진다"고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엄마, 아빠와 대전에서 온 정서율(7) 양은 두 살 위의 언니 손을 꼭 잡은 채 "와, 좋다!" "멋지다!"를 연발했다.

광주 거주자인 이정자(48) 씨는 "계곡물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감상하노라니 문득 꿈인가, 생시인가 싶어진다"며 뭉클한 감동을 미소로 드러냈다.

외국인 방문객도 종종 눈에 띄었다. 미국 콜로라도에서 친구와 같이 왔다는 조던 영(26) 씨는 "녹차밭이 빛으로 이렇게 깜짝 변신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며 "뷰티풀! 원더풀! 판타스틱!"을 외쳤다.


은하수 터널을 거닐고 있는 연인들
은하수 터널을 거닐고 있는 연인들

(사진/임귀주)

◇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보성, 명량대첩의 출발지

보성빛축제는 2015년 축제부터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형상화해 더욱 눈길을 끈다.

보성과 이충무공의 각별한 인연은 빛축제에 다양한 작품으로 녹아들었다. 이번에 선보인 대표적 작품은 봇재다원에 있는 대형트리다. 가로 150m, 세로 120m에 이르는 이 트리 작품은 승전을 향해 힘차게 진격하는 이충무공의 위용을 감동적으로 형상화했다.

보성군청 문화관광과 소성만 주무관은 "정유년인 올해 2017년은 이충무공이 정유재란에서 승전한 지 420주년이 되는 해여서 더욱 의미가 깊다"면서 "이번 축제의 주제인 '이순신, 희망의 빛'이 말해주듯이 '새 희망으로 보성에서 다시 시작한다'는 의미를 담아 전시했다"고 말했다.

보성과 이충무공의 인연을 잠시 더듬어보자.

이순신 장군에게 보성은 재기와 승전의 발판이었다. 조정신하들의 모함에 휘말려 백의종군하던 이충무공이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받았으나 부하는 고작 10여 명에 불과했다.

1597년 8월 9일 보성으로 들어온 이충무공은 이곳 조성면 조성리의 조양창에 곡식 600가마가 있음을 확인하고 재기의 희망 속에 크게 안도한다. 하지만 '패전한 수군으로는 전투를 할 수 없으니 수군을 없애고 육군에 의지해 싸우라'는 선조의 유지가 하달된다.

이에 이충무공은 보성의 열선루(列仙樓)에서 "신에게는 아직도 12척의 배가 있사오니 나아가 죽기로써 싸운다면 능히 해낼 수 있을 것이옵니다(今臣戰船 尙有十二 出死力 拒戰 則猶可爲也·금신전선 상유십이 출사력 거전 즉유가위야)"라는 장계를 비장한 각오로 임금에게 올린다. 목숨을 건 항명이나 다름없는 결연함이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더이상 대안이 없음을 깨달은 선조는 결국 이 장계를 받아들이게 되고 존폐 위기의 수군은 극적 반전 속에 그 군사 수를 크게 늘려나간다. 그리고 조양창의 군량미를 발판삼아 거침없는 진격에 나선다. 명량대첩의 출발지가 바로 보성이었던 것이다. 열선루는 현재 보성군청 앞마당에 주춧돌로만 남아 있는데 보성군은 복원을 추진 중이다.

보성은 또 이충무공의 부인과도 인연이 깊다. 목민관으로 보성군수를 지낸 방진(方震)이 이충무공의 장인이다.

어린 시절을 이곳에서 보낸 방진의 외동딸은 훗날 21살의 이충무공과 혼인한다. 문과 시험을 공부해오던 이충무공은 상주 방씨 가문의 딸과 백년가약을 맺으면서 무과로 진로를 바꾸게 된다. 지난해 2월 상주 방씨 외동딸이 보성군수인 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곳에 '방진관'(方震館)이 지어져 전시와 교육의 장으로 그 역사를 일러준다.

이충무공이 차밭 빛축제의 한 주인공이 된 데는 역사적 근거와 타당성이 충분한 것이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형상화한 대형 트리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형상화한 대형 트리

(사진/임귀주)

◇ 차밭은 빛 물결…율포해수욕장엔 정유년 닭 조형물

또 하나의 차밭 빛축제 전시장인 율포솔밭해수욕장으로 가보자.

율포해수욕장은 봇재다원에서 승용차로 10분가량 달려 내려가면 나온다. 지난번 축제 때는 거북선 용머리와 장군의 투구 등 이충무공을 테마로 한 작품이 전시됐으나 올해는 이를 차밭문화공원으로 옮기는 대신에 사랑과 희망을 상징하는 작품들로 꾸몄다. 가족과 연인들이 약 100m의 솔밭길인 '사랑의 미로'를 거닐면서 작품을 구경할 수 있도록 했다.

해변 전시장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높이 7m, 가로 10m 크기의 수상조형물인 '희망의 아침'이다.

정유년 닭의 해를 맞아 어미닭 부부와 병아리 3마리를 형상화해 새해 희망을 기원할 수 있도록 했다. 모래사장에 설치된 이 작품은 밤이 되면 은은하면서도 포근한 느낌의 빛을 품어 방문객들의 각별한 사랑을 받는다.

광주에서 전남여성경제인협회 회원들과 함께 온 김금주(63) 씨는 "화합과 풍요의 상징인 닭의 해를 맞아 가정과 국가, 나아가 세계가 평화롭기를 기원했다"며 "새해가 힘찬 닭울음처럼 활짝 열리길 바란다"고 말했다.

여자친구와 같이 솔밭길을 다정하게 거닐던 보성군민 윤모(16) 군은 "멋진 해변에서 멋진 작품을 보며 멋진 친구와 함께 있는 시간이 마냥 좋다"며 "밤 풍경은 낮과는 또다른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준다"고 즐거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올해의 차밭 빛축제는 축제의 핵심장소를 바꾸는 등 새로운 변화를 시도했다.

이전까지는 봇재의 다향각을 중심으로 축제를 진행했으나 이번부터 차문화공원으로 옮겼다.

이 때문에 다향각 주변의 차밭 곡선을 따라 층층이 구불구불 이어지던 종래의 대규모 조명작품은 볼 수 없게 됐다.

대신에 차밭빛물결 작품 등으로 그 형태와 방식에 변화를 주고 문제점으로 지적됐던 교통체증과 주차난을 해소할 수 있게 됐다고 주최 측은 말했다.

이용부 보성군수는 "불은 몸을 따뜻하게 하지만 빛은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면서 "방문객들께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빛의 향연 속에서 따뜻한 마음을 나누며 겨울밤의 추억을 한아름 담아가시기 바란다"고 기원했다.

축제 점등식에서 공연된 '보성아리랑'의 작사가이기도 한 이 군수는 "차밭빛축제가 나라의 빛, 세계의 빛이 되도록 앞으로 더욱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율포해수욕장의 정유년 닭 조형물
율포해수욕장의 정유년 닭 조형물

(사진/임귀주)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7년 1월호에서 옮겨 실은 글입니다.

id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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