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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끝 약자들> 과천 비닐하우스촌 '꿀벌마을'의 겨울나기

송고시간2016-12-31 07:00

서울 잠원 등서 떠밀려온 사람들…가난·장애·병마 3중고

개발 추진에 투기 움직임…"영구임대주택이라도 지어줬으면"

(과천=연합뉴스) 강진욱 기자 = 해마다 겨울철이면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작은 지게에 연탄 몇장씩 지어 나르며 평소의 이기심을 덜어내고 스스로 위안을 삼는 곳이 있다. 전철 4호선 과천경마장역 앞에 있는 '꿀벌마을'이 그곳이다.

1980년대 서울 강남권 개발로 삶의 터전을 잃고 떠밀려 온 사람들이 움막을 짓고 살기 시작했고, 일부는 화훼농사를 짓기 위해 정착했다.

현재 200가구 정도가 사는 것으로 추산되지만 정확한 통계는 사실상 없다.

최근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 해제 소식이 들리며 일부는 투기 목적으로 들어와 살고 있다는 소문도 돈다.

처음에는 남의 땅을 무단 점유하는 데 따른 도지세를 냈으나 개발 바람이 분 뒤부터는 토지주들이 세를 받지 않는다.

하우스를 짓고 사는 사람들을 쫓아낼 명분을 쌓기 위해서란다.

올겨울 추위가 본격 시작된 29일 오후 황모(56)씨네 하우스를 찾았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바로 부엌이고 한 걸음 더 가면 화장실. 그 옆에 약 10㎡(약 3평) 남짓한 방이 한 칸 있다.

부엌살림이라야 그을음이 나는 가스레인지와 싱크대 한 칸, 밥솥, 그릇 몇 개가 고작이다.

구석에는 낡아빠진 소형 세탁기가 있고, 현관문 옆에는 한 달에 두 번 한 통에 5천원을 주고 사오는 생수통이 거꾸로 서 있다. 가스도 거의 1년에 한 번 정도 20㎏들이 한통씩 주문해 쓴다.

과천 꿀벌마을 황씨
과천 꿀벌마을 황씨

과천 비닐하우스촌에 사는 황모씨. 손님이 왔다며 일회용 커피를 종이컵에 붓고 있다.

그는 잠원동 판자촌에 살다가 1988년 이곳으로 왔다.

자신은 포장마차에서 일하고 남편은 보일러 기사여서 초등학교 2학년 딸과 함께 그런대로 오순도순 재미나게 하우스 생활을 시작했다.

없던 화장실도 들이고 방도 크게 넓히며 '형편이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포기하지않았다.

그러나 힘든 노동 탓에 내외 모두 일찍부터 병마에 시달려야 했고 형편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남편은 중풍 등을 앓다가 지난해 세상을 떴다.

황씨 자신은 2007년 장애인이 됐다.

당뇨 합병증을 앓고 있다. 얼마 전 한쪽 눈을 수술해 아직 퉁퉁 부어 있고, 이가 빠진 탓에 50대 중반을 갓 넘은 나이지만 훨씬 더 늙어 보였다.

2009년부터 일손을 놓은 터라 수입도 없다. 정부에서 주는 생활보호대상자 지원금 80만원과 딸이 복지관에서 벌어오는 수입으로 생활하고 있다.

황씨는 하루 연탄 4장으로 추위를 견딘다.

그래서 가끔 연탄을 보내주는 이들이 너무 고맙단다. 이날도 하남고등학교 학생들이 연탄 몇십 장을 쌓아놓고 갔다.

처지가 어렵다 보니 친인척과 연락도 끊기다시피 했다.

그나마 복지관에서 크리스마스에 사과, 대추, 김 등을 보내줘 외로움을 덜 수 있었다.

황씨 일과는 삼시 세 때 챙겨 먹는 일과 강아지들을 돌보는 일이다. 딸이 데려온 강아지 순이가 몇 주 전 새끼를 다섯 마리나 낳아 돌보는 데 힘에 부쳐 몇은 분양하려 한다.

바깥 나들이는 매주 월·수·금요일 안양에 있는 병원으로 투석하러 갈 때뿐이다. 갈 때는 콜택시를 부르고 올 때는 전철을 이용한다.

한 번 투석하는 데 드는 비용 12만원은 정부가 대신 내주지만 택시비가 부담스럽다. 원래는 1만원이지만 고정적으로 이용하다 보니 택시운전사가 2천원 깎아준다.

황씨는 "올여름 하우스 창틀에 모기를 막는 망사를 달아준 고마운 사람"이라고 택시운전사를 소개했다.

황씨네 비닐하우스
황씨네 비닐하우스

황씨네는 1988년 초등학교 2학년 딸과 함께 이곳에 와 28번째 겨울을 나고 있다.

황씨는 딸이 영 안쓰럽다.

얼마 전까지는 시집가라고 자주 닦달했지만 그때마다 화를 내는 통에 더는 입에 올리지 못한다.

과천에서 초·중·고를 나온 딸은 대학 진학을 포기했고 지금은 한식조리사 자격증을 따려 공부하고 있다.

황씨는 딸이 자신을 얼마나 살갑게 대하는지, 얼마나 재미있게 얘기를 잘하는지 한참이나 설명했다.

딸은 생전에 자신을 끔찍이 사랑해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에 한 달에 한 두 번씩 수원에 있는 납골당을 찾아 꽃 한 송이를 바치고 온다고 한다. "올 때는 늘 눈이 부어 있다"고 황씨는 전했다.

소원을 물으니 말을 아끼다가 "누가 때 되면 이불이나 좀 빨아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작은 세탁기로는 옷가지를 빠는 것이 전부여서 이불 빨래를 못하기 때문이다. 집 안에 큰 세탁기를 들여놓을 공간조차 없다.

과천 꿀벌마을에도 개발의 바람이
과천 꿀벌마을에도 개발의 바람이

과천시는 꿀벌마을이 속한 땅에 복합문화관광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시는 내년 1·4분기 중 국토부 중앙도시계획심의위원회에 그린벨트 해제를 신청할 계획이다.

하지만 황씨에겐 큰 걱정과 바람이 있다.

걱정거리는 이곳에 오랫동안 정을 붙이고 살아온 이들이 또 어디론가 쫓겨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다.

이곳 개발이 추진되고 있고 투기 바람 소리까지 들리기 때문이다.

황씨는 "곁살이 하는 마당에 그냥 내쫓기지 않을까, 나가면 어디로 가나" 하는 게 주민들의 공통적인 걱정이라고 귀띔했다.

원주민들이 꿀벌마을이라고 부르는 하우스촌은 인근 화훼단지를 포함한 약 18만5천㎡(약 6만5천평)로 그린벨트에 속해 있다. 2차선 도로 건너편이 과천경마장으로 주말이면 사람들로 넘쳐난다.

과천시는 꿀벌마을이 있는 땅에 복합문화관광단지를 조성하려고 늦어도 내년 1/4분기 중 국토부 중앙도시계획심의위원회에 그린벨트 해제를 신청할 계획이다.

지난해부터 이런 개발 정보가 돌며 외지인들이 투기 목적으로 들어온다는 말이 심심찮게 들린다.

실제로 그렇게 들어온 이들이 있고, 이들과 원주민들 사이에 사소한 다툼도 간혹 일어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황씨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오랫동안 도지세를 낸 사정을 고려해 과천시가 영구임대주택에 입주할 수 있도록 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며 이곳 주민들의 희망 섞인 바람을 전했다.

kjw@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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