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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 하의3도 농지탈환운동 희생자 위령제

(신안=연합뉴스) 박성우 기자 = 제8회 하의3도 농지탈환운동희생자 위령제가 25일 전남 신안군 하의면 하의3도농민운동기념관에서 열렸다.

(사)하의3도농지탈환운동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열린 위령제는 추모사 낭독, 헌화, 분향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370여년에 걸친 하의3도농지탈환운동의 발단은 조선 1623년 인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조는 선조의 딸 정명공주가 풍산홍씨 홍주원과 결혼함에 따라 신안군 하의도, 신의면 상태도와 하태도 등 3개 섬의 땅 20결(8만평)을 무토사패(無土賜牌)했다.

무토사패란 농지소유권을 해당 농민에게 주되 홍주원의 후손(4대까지)에게 세금(소작료)를 받을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러나 홍씨 후손들은 4대 이후에도 세금 징수를 계속하고 징수 범위를 20결 외에 섬 3곳의 전체 토지로 확대하는 횡포를 부렸다.

섬 주민들이 한양까지 올라가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해결되지 않았고 일제강점기를 거쳐 미군정, 정부수립 이후까지 계속됐다.

주민들도 땅 주인까지 수시로 바뀌자 진정·재판·소작료 불납운동 등 저항을 계속했다.

미군정기에는 적산재산 관리기관인 신한공사의 소작료 징수에 반발하기도 했다.

당시 하의3도민 1천여명과 경찰간 무력충돌이 발생해 수백명이 옥고를 치르고 일부는 후유증으로 병사하기도 했다.

1949년 억울한 사연을 제헌국회에 탄원했고 국회가 1950년 2월 소유권 무상반환 결의를 했다.

1956년에야 드디어 주민들이 소유권 이전등기를 할 수 있었다.

하의3도 농민운동기념관은 2009년에 이같은 농민들의 끈질긴 농지탈환운동을 기리기 위해 개관됐다.

3pedcrow@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6/11/25 17:58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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