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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해외봉사상 수상 김월림 씨 "봉사는 결국 나를 위한 것"

'써빙프렌즈' 아이티지부장으로 6년여 동안 난민 지원

(성남=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내가 가진 빵의 절반을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면 손에는 절반의 빵이 남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아이티에서 난민과 소외된 여성들과 함께 살아가는 동안 절반의 빵을 나눠주자 그들의 삶이 더 풍요로워지는 것을 보며 제 손의 남은 빵이 더 커져 보이는 것을 느꼈습니다."

25일 오전 성남시 수정구에 있는 정부 무상원조 전담기관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 대강당에서는 '2016 해외봉사상' 시상식이 열렸다.

민간 부문 국무총리상을 받은 김월림(46) 씨는 "빵의 사례는 아이티에서 배운 새로운 개념의 경제학"이라며 "결국 봉사는 나를 위해 하는 일"이라고 소감을 밝혀 KOICA 직원들의 박수를 받았다.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KCOC) 소속 NGO '써빙프랜즈인터내셔널'의 아이티지부장인 김 씨는 6년 8개월 동안 현지에서 긴급 구호와 의료 지원, 난민촌 어린이 교육과 학교 설립 등 난민 지원 사업을 펼친 공로로 이날 해외봉사상을 받았다.

시상식이 끝난 뒤 연합뉴스 기자와 만난 김 씨는 "주제넘은 수상 소감을 얘기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고 쑥스러워하면서도 '봉사를 떠나려는 사람에게 조언 한마디 해 달라'고 하자 "무엇보다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 사람을 귀히 여기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마음이 있어야 그 사회에 따뜻한 마음을 줄 수 있고, 그 사람들을 가난에서, 절망에서 일으켜 세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2016 해외봉사상 국무총리상 수상자 김월림 씨.
2016 해외봉사상 국무총리상 수상자 김월림 씨.

김 지부장의 평범하지 않은 수상 소감과 봉사에 대한 남다른 견해는 과연 어떻게 생겨났을까.

강원도 춘천 출신인 그는 서울신학대를 졸업하고 늦은 나이에 프랑스에 유학을 갔다가 돌아왔다. 2001∼2005년 한 종교단체의 봉사자로 아프리카 카메룬에 나가 활동했고, 이 경력을 인정받아 2005년 써빙프렌즈에 들어갔다.

카메룬 오지에서 의료 봉사에 나섰다가 폐에 기생충이 들어가 절반을 갉아먹는 풍토병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2010년 1월 12일, 30만 명이 넘는 목숨을 앗아간 아이티 대지진은 그의 인생관을 바꿔놓았다. 그는 지진이 발생하고 며칠 뒤 가장 먼저 써빙프렌즈 긴급구호팀의 일원으로 현장에 달려갔다.

"지진은 고작 35초 동안 발생했지만 모든 것이 다 파괴됐어요. 학교와 공공기관, 아무것도 남은 게 없었죠. 곳곳에 시신이 뒹굴고 여진은 계속됐어요. '대재앙 앞에서 인간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구나'라고 생각하며 멍하니 지켜볼 수밖에 없었어요. 생지옥이 따로 없었습니다. 그러나 땅이 위아래로 출렁거리는 그 순간에도 무너진 건물 틈을 뛰어다니며 깔깔거리는 아이들을 보면서 무언가 시작할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열흘 동안 아이티에 갔다 온 그는 이후 유엔 업무조정국(OCHA) 일에 참여하면서 10여 차례 더 왕래했다. 당시 그는 '어떻게 하면 지진으로 모든 것을 잃은 이들을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을지', '난민들에 대한 의료 및 식량 지원과 어린이들의 교육은 어떻게 하는 것이 효과적인지' 등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신속하게 대응하는 봉사자들의 눈빛에서 사람을 향한 따스함을 발견했다고 한다.

이런 '따스함'을 자신도 아이티에 전하겠다고 마음먹고 그는 2011년 1월 아내와 딸을 설득해 아이티에 들어갔다. 그는 "늦었지만, 당시 거절 한 번 없이 웃음으로 화답해준 아내가 고맙다는 말을 꼭 인터뷰에 실어 달라"고 부탁하며 아이티에서의 활동을 자세하게 소개했다.

"살기로 하고 아이티에 갔을 때 정말 많이 울었어요. '지구상에 이런 나라가 존재하고 있구나'란 탄식이 절로 나왔죠. 할리우드 전쟁 영화를 보는 느낌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살면서 지금까지는 전혀 느끼지 못하던 잔잔한 행복, 즉 더불어 살아가는 행복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김월림 지부장이 난민 봉사를 지원해준 현지 군인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김월림 지부장이 난민 봉사를 지원해준 현지 군인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그는 먼저 아이티 레오간 시정부와 함께 난민촌 개발 사업에 나섰다. 부지 약 5만3천㎡(약 1만6천 평)를 장기 임대해 사탕수수밭에 있는 난민을 옮긴 것이다.

난민촌을 먼저 건설하고는 곧바로 학교를 지었다. 현재 유치원 3개 반, 초등학교 6개 반, 중학교 3개 반에서 512명이 공부한다. 학교 운영을 맡은 그는 한국의 독지가와 기업인들의 기부를 받아 아이들에게 무료 급식도 하고 있다.

난민촌 주택 건설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국제이주기구(IOM)와 공동으로 134채의 주택을 짓고 '코리아 빌리지'라는 이름을 붙였다. 당시 이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주둔하던 한국의 '단비부대'가 지원하기도 했다. 난민들의 마음이 따뜻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주택 벽에는 아름다운 그림을 그렸다.

스스로 일어날 수 있도록 자활 사업도 병행하고 있다. 코코넛 줄기로 바구니를 만들어 미국에 공정무역 형태로 파는 것이다.

주민들과 함께 일하는 과정에서 이들이 글을 못 쓰고, 읽지도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문맹 퇴치 사업도 전개했다. 유네스코와 공동으로 3개월 과정의 학교를 5차례 운영해 말과 글을 깨칠 수 있게 했다.

"사업 종료식 때 30대 중반 여자분이 감사의 편지를 읽는 시간이 있었어요. '학교에서 아들이 가정통신문을 가져오면 무슨 말인지 몰랐고, 병원에서 약을 받아오면 먹는 약인지 바르는 약인지도 몰랐는데, 글을 알고는 이해할 수 있었다'고 울먹였죠. 저도 속으로 울었답니다."

그러나 자활 사업은 그리 만만치 않았다. 주민들의 사고방식은 1950년대인데 지금은 2016년인 것이다. 이 틈을 메우는 일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고 고백한다. 그만큼 사람들의 의식을 바꾸는 일은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

"주민들에게 설명했어요. '여러분이 만든 물건은 미국의 대기업이 운영하는 마트에서 전시 판매되고 있다. 그것은 단순한 바구니가 아니라 여러분의 자존심이다. 여러분의 다음 세대는 잘살 수 있다는 희망을 품어야 한다. 그러니 자신감을 느끼고 바구니를 잘 만들어 달라'고 호소했죠. 그랬더니 잘 따라오더라고요. 처음 바구니 만드는 일은 여자들만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남편과 아이들이 참여했고, 지금은 가족이 함께 일을 하고 돈을 버는 사업으로 발전했죠. 그러면서 가족 공동체가 살아나는 것을 봤습니다."

김 지부장은 아예 아이티에 눌러앉을 계획이다. 아내 역시 그런 마음을 읽었는지 웃음만 짓는다고 한다. '왜 그런 결정을 했느냐'고 묻자 그는 "결국 나를 위한 일이고, 내가 가장 기뻐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ghwang@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6/11/25 16:54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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