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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 대통령 추대? 이승만 박사 욕되게 하는 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지도자들' 출간 한시준 단국대 교수

(서울=연합뉴스) 구정모 기자 = "이승만 박사를 건국 대통령이라고 하는 것은 오히려 이승만 박사를 욕되게 하는 일입니다."

한시준 단국대 사학과 교수는 24일 연합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승만 박사는 1948년 제헌국회에서 대한민국이 임시정부를 계승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이를 관철시킨 사람"이라며 이같이 강조했다.

당시 국회의장이었던 이승만 전 대통령은 1948년 5월 31일 제헌국회 개회사에서 "국회에서 건설되는 정부는 기미년(1919년)에 서울에서 수립된 민국(民國) 임시정부의 계승이니 이날이 29년 만의 민국의 부활일"이라며 "민국연호는 기미년에서 기산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소장, 백범학술원 원장,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공적심사위원 등을 역임한 한 교수는 최근 들어 '건국절' 논란이 일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존재와 독립운동사를 널리 알려야겠다는 취지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지도자들'이라는 책을 냈다.

이 책은 임시정부 기반을 마련한 지도자(홍진, 안창호), 임시정부의 행정 수반을 지낸 지도자(이승만, 박은식, 홍진, 김구), 임시정부의 이론가(조소앙, 신익희), 한국광복군의 지휘관(이청천, 황학수) 등 인물 중심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독립운동의 역사를 기술하고 있다.

한 교수는 "국가나 민족의 발전에 있어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한 점을 이야기하고 싶어서"라며 인물 중심의 서술방식을 채택한 이유를 말했다.

책에 따르면 1919년 3·1 운동 후 대한국민의회(러시아 연해주), 대한민국 임시정부(중국 상해), 한성정부(서울) 등 국내외에서 모두 8개 임시정부가 수립됐다.

이 중 정부 조직과 각원의 명단을 발표한 임시정부는 6곳으로, 이승만은 도산 안창호와 함께 이 6곳 모두에 이름이 올라갔다. 특히 이승만은 국무총리, 부통령, 집정관총재 등 수반급 지도자로 추대·선출돼 민족의 대표적 지도자로서 위상을 갖추게 됐다.

한 교수는 이에 대해 "이승만 박사의 지도력이나 능력보다는 미국과의 연계성을 고려해 여러 임시정부에서 그를 대표자로 내세운 것 같다"며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서구 열강의 지원이 필요했고, 그중 가장 큰 열강인 미국과 연계된 인물은 이승만 박사가 유일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은 이승만이 학위를 받은 미국 프린스턴 대학의 총장을 지냈다.

연해주, 상하이, 서울의 임시정부가 1919년 9월 통합하고, 이승만은 통합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에 오른다.

하지만 그는 곧 반대 여론에 부닥친다. 임시정부의 대통령임에도 미국에만 머물고 상하이로 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상하이로 잠시 부임했지만 상하이에서 활동한 기간은 대통령으로 재직한 5년 6개월 중 6개월에 불과했다.

막상 상하이에 와서는 미국을 배경으로 한 외교독립노선을 주장할 뿐 임시정부의 운영이나 독립운동의 방향에 대한 이러다 할 비전을 제시하지도 못했다.

결국 이승만은 미국 하와이로 돌아갔고, 1925년 3월 임시정부의 국회 격인 임시의정원으로부터 탄핵당한다. 한국 현대사에서 최초이자 유일한 대통령 탄핵이었다.

한 교수는 "이승만 박사는 대통령으로서 권한만 행사하려 하고, 여러 나라에 흩어져 있는 민족을 임시정부로 규합하거나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운동을 총지휘하는 등의 대통령으로서 의무를 수행하지 않은 것이 탄핵당한 핵심적인 이유"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도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 해야 할 일은 안 하고 권리만 행사하려고 하니 나라가 어지러워진 것이 아닌가"라고 덧붙였다.

"건국 대통령 추대? 이승만 박사 욕되게 하는 일" - 1

pseudojm@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6/11/24 16:35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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