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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석의 동행> "그대여, 아무 걱정 하지 말아요"

정부세종청사 국무회의장의 대한민국 상징 로고. 2016.11.22
정부세종청사 국무회의장의 대한민국 상징 로고. 2016.11.22

(서울=연합뉴스) 그는 울분을 토했다. "'VIP 지시사항'을 충실히 따르고 열심히 일한 결과가 이거라니…." 30년 공무원 생활의 끝이 참으로 허무하다고 했다. 당장 옷을 벗고 싶지만 '○○님, 굴욕스럽지만 좀 참고 버텨주십시오. 그래야 저희도 버틸 수 있습니다'는 부하 직원의 말에 견디고 있다고 했다.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이 있는 중앙부처의 공무원 A 씨 얘기다.

그는 지금 공무원 중에는 '부역자'와 '바보'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부역자의 사전적 의미는 '국가에 반역이 되는 일에 동조하거나 가담한 사람'이다. 그런데 부역자는 거의 없을 것이고 대통령 뒤에 최순실이 있다는 것을 몰랐던 바보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언론에서 너무 쉽게 부역자라는 말을 쓴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원망도 빼놓지 않았다. 공무원에 관한 헌법 조항도 거론했다. 헌법 7조는 1항에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2항에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의 뜻을 따르는 것이 국민에 대한 봉사라고 여기고 대통령의 지시를 묵묵히 수행했던 결과가 지금에 와서 보니 너무나 허망할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국무회의 석상에서 "국무위원들은 국민에 대한 책무와 진정으로 대통령을 위한 용기가 없느냐. 황교안 국무총리와 국무위원들은 책임지고 사퇴하라"고 말했다고 한다. 박 시장은 "국민과 대통령 중 누구 편에 설지 결단하라고 요구했다"고 했다. 성정이 박 시장처럼 모질지 못해 A 씨에게 '대통령 지시사항에도 합리적 의심을 하고 잘못된 것은 따르지 말았어야 하지 않느냐'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더욱이 언론에서 녹을 먹고 있는 나도 지금 이 사태에 조금이라도 책임이 없다고 자신할 수 없어서였다.

광화문 광장 촛불집회의 태극기. 2016.11.19
광화문 광장 촛불집회의 태극기. 2016.11.19

지금 최순실 사건으로 좌절하고 괴로워하는 공무원들이 많을 것이다. 그들에게 '명찰'을 떼고 촛불로 가득한 광화문 광장에 한번 나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곳은 대통령 하야와 탄핵만 외치는 곳이 아니다. 서로 위로하고 위로받는 거대한 희망의 광장이다. 울분과 좌절이 나만의 감정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자리다. 다른 사람들의 분노를 보고 자신의 분노에 정당성을 확인할 수 있다. 광장을 메운 사람도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이들이다. 아버지와 아들, 엄마와 딸, 할아버지와 손자, 고교생, 대학생, 젊은 연인이 그들이다. 하이힐을 신고 치마를 입은 여성도 촛불을 들고 거리행진에 나선다.

지난 19일 밤 광화문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촛불을 든 채 전인권 밴드의 노래 '걱정말아요 그대'를 다 함께 따라 불렀다.

"그대여 아무 걱정 하지 말아요. 우리 함께 노래합시다. 그대 아픈 기억들 모두 그대여. 그대 가슴 깊이 묻어 버리고.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떠난 이에게 노래 하세요. 후회 없이 사랑했노라 말해요."

이 노래가 많은 사람에게 이렇게도 큰 위로가 됐던 적이 있었던가. 노래를 부르는 시민들의 표정엔 분노만 있는 게 아니었다. '평안'과 '희망'이 있었다. 전인권은 뒤이어 낮고 거친 목소리로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을 부르기 시작했다. 광장 한쪽에 밀려나 서 있던 나는 갑자기 울려 퍼진 애국가에 순간 울컥했다. 옆에 서 있던 고 3 아들이 볼까 봐 고개를 돌려야 했다. 서너 살 돼 보이는 아이도, 중년의 노신사도 나지막이 한 소절씩 애국가를 부르고 있었다. 그 순간 모두가 한마음이었다.

촛불 들고 거리행진하는 시민들. 2016.11.19
촛불 들고 거리행진하는 시민들. 2016.11.19

A 씨는 힘주어 말했다. "지금 상황을 그냥 정리하고 끝나서는 안 됩니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이참에 바꿔야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습니다. 대통령의 권력을 분산하는 개헌이 반드시 이뤄져야 합니다. 야당이 이해타산을 따지고 개헌을 미뤄서는 안 됩니다. 언론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 주세요."

내 대답은 이랬다. "야당도 각자 다른 잇속이 있을 것이고 더욱이 지금 민주당엔 '추미애 리스크'까지 있어 지금으로선 기대난망인 것 같습니다." <논설위원>

bondong@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6/11/26 07:31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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