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이 겨울 어찌 버티나"…철새 'AI 바이러스' 차단 안간힘
송고시간2016-11-22 13:03
"맨땅에 헤딩이라도 해야지요" 무심한 철새떼 방역망 위로 유유히 비행
(함평=연합뉴스) 박철홍 기자 = "이곳이 뚫리면 전남 가금류 농가가 무너집니다. 맨땅에 헤딩이라도 해야지 어쩌겠습니까."

(함평=연합뉴스) 박철홍 기자 = 22일 오전 전남 함평군 대동면 대동저수지 인근에 조류 인플루엔자(AI)를 퍼뜨리는 주범으로 지목된 철새들이 이동하고 있다. 2016.11.22
pch80@yna.co.kr
철새 이동량이 상대적으로 많은 서해안 지역에서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AI)가 급속히 확산해 철새가 AI를 옮기는 '용의자'로 지목되면서 22일 전남의 주요 철새 도래지에는 방역에 비상이 걸렸다.
이른 아침부터 축산농가 차량이 모여드는 함평 우시장을 먼저 소독한 방역 차량들은 쉴 틈 없이 전남 대표적 철새도래지인 대동저수지로 달렸다.
발길이 닿는 길을 따라 돌며 소독약을 꼼꼼히 뿌린 방역대원들은 조류탐방로의 망원경으로 소독약을 피해 저수지 한 가운데로 달아난 가창오리 무리를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관찰했다.
아직 초겨울이라 월동에 나선 철새가 많지는 않았지만 300여마리의 철새들이 이곳 대동저수지에서 목을 축이고 다시 어딘가로 바삐 날아갔다.
함평군은 주변 해남 산란계 농장에서 올 겨울 첫 고병원성 AI가 발병한 데에 이어 인접한 무안군까지 퍼지자 철새도래지인 대동저수지에 방역차단 전선을 만들기 위해 진땀을 흘리고 있다.
하늘을 유유히 나는 철새의 유입을 막을 수가 없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발품 팔아 철새가 머물다 가고, 분변이 떨어져 있을 만한 곳에 소독약을 수차례 뿌리는 수 밖에 없다.
긴장하긴 가금류 사육 농가도 마찬가지다.
육계 8만5천마리를 사육하는 정상훈(47)씨는 본인의 몸부터 소독하고, 방역복을 갖춰 입고 이른 아침부터 농가 곳곳에 소독약을 뿌렸다.
군에서 긴급 제공한 소독약품이 이달 말까지 사용할 분량밖에 없지만, 규정된 주 2회 의무소독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어 정씨는 매일 소독에 나서고 있다.
소독약품도 평소보다 진하게 희석해 사용한다.
닭 사육장에 혹시나 철새가 고개를 들이밀까 봐 개방된 공간은 이미 철조망으로 막아놨고, 온종일 농장 주변을 돌며 철새 분변이 떨어졌을까 봐 관찰한다.
지인들의 방문도 평소와 달리 반갑지 않다. 제아무리 친한 사람이 오더라도 온몸을 소독한 뒤에야 농장에 들인다.
정씨가 올해 AI에 더 긴장하는 것은 닭 AI 발생이 인근의 해남 닭 사육 농가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통상 닭은 밀폐된 공간에서 사육하는 탓에 AI 감염 위험성이 오리보다 낮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올해는 닭과 오리를 가리지 않고 감염시키는 바이러스에 더 바짝 긴장하고 있다.
이제 시작인 겨울이 한참 남은 것도 걱정거리다.
"철새가 AI 바이러스는 옮기는 주범이라면 내년 초까지 철새가 끊임없이 농가 주변을 날아다닐 텐데 이 기나긴 겨울을 어찌 보내야 할지 갑갑하다"고 정씨는 말했다.
한번 AI가 발생하면 살처분한 사육두수는 보상을 해주지만, 6개월여간 추가 입식을 못해 수억원을 피해를 보는 탓에 정씨는 열심히 소독약을 뿌리며 구슬땀을 흘렸다.
그런 정씨의 머리 위로 한무리의 가창오리가 군무를 펼치며 유유히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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