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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년간 한 팀 지휘한 이재영 핸드볼 감독…연말 정년퇴임

1988년부터 대구시청 감독 맡아 30여 차례 우승한 '한국의 퍼거슨'
"즐기면서 해야 능률 더 오른다. 그래야 세계 정상권 유지 가능"
이재영 감독.
이재영 감독.

(서울=연합뉴스) 김동찬 기자 = 알렉스 퍼거슨(75) 감독은 잉글랜드 프로축구 명문 구단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27년간 지휘한 명 지도자였다.

1986년부터 2013년까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만 감독 생활을 한 퍼거슨 감독에 대해서는 그의 리더십을 연구한 서적만 여러 권 나왔을 정도다.

국내 스포츠에도 한 팀을 이렇게 오래 지도한 감독이 있다. 바로 여자 실업핸드볼 대구시청의 이재영(60) 감독이다.

1988년에 대구시청 지휘봉을 잡은 이재영 감독은 올해 말로 정년을 맞아 28년간 정들었던 핸드볼 벤치를 떠나게 됐다.

국내 단체 구기 종목 가운데 한 팀에서 이렇게 오래 감독 생활을 한 예는 찾아보기 어렵다.

대표적인 '장수 감독'으로 자주 거론되는 김응용 전 프로야구 한화 감독이 해태 시절 1982년부터 2000년까지 18년간 재임했고, 배구 신치용 감독은 1995년부터 2015년까지 20년간 삼성화재를 이끌었다.

농구는 실업의 경우 삼성전자 김인건 감독이 1977부터 1996년까지 19년을 사령탑으로 일했고, 대학 무대까지 범위를 넓히면 박한 고려대 감독이 1975년부터 1997년까지 22년을 한 팀 사령탑을 계속 맡았다. 축구는 정진혁 전주대 감독이 1991년부터 지금까지 25년째 재임 중이다.

28년간 대구시청 벤치를 지킨 이재영 감독은 "대학교 3학년 올라가면서 은퇴했는데 지금까지 핸드볼과 인연을 맺으며 살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고 특유의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2009년 세계선수구너대회 당시 이재영 감독.
2009년 세계선수구너대회 당시 이재영 감독.

부산 동아고를 나와 경북대에 진학한 이재영 감독은 "대구 남산국민학교에 다닐 때 핸드볼팀이 생겨서 덩치가 크다고 뽑혔다"고 돌아보며 "중간에 그만뒀다가 중2 때 다시 핸드볼을 시작했는데 당시에는 실업팀이 없던 시절이라 대학 재학 도중에 일찍 선수 생활을 접었다"고 말했다.

선수 생활을 한 것은 기껏해야 6∼7년 정도밖에 안 되는 셈이다. 혹시 국가대표 경력이 있느냐고 물으니 "그런 거 없다"고 답했다.

은퇴 후 일반병으로 병역 의무를 마친 이 감독은 "원래 전역하고 나서 다른 일을 하려고 했는데 운동을 했던 경력이 있다 보니 주위에서 '운동을 좀 봐달라'는 부탁을 받고 잠깐씩 인근 학교 코치를 한 것이 인연이 돼서 지금까지 감독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군 복무를 한 인근 지역인 충북 증평중학교에서 임시 코치 역할을 하면서 처음 지도자 생활을 한 이 감독은 이후 경주여고 코치를 거쳐 1988년 대구시청 감독 제안을 받고 28년간 몸담게 됐다.

1984년 창단한 대구시청에서 이 감독은 제3대 사령탑으로 지금까지 지내왔다.

감독으로 '장수 비결'을 묻자 그는 "그런 게 뭐 있겠느냐"며 "시에서 관심을 갖고 끌어 왔으니까 저도 계속 있는 것"이라고 몸을 낮췄다.

이 감독은 "광주시청도 오래된 팀이었지만 중간에 해체됐다가 다시 생긴 경우"라며 "대구시청도 시에서 관심이 없었다면 인기가 없는 종목이라고 없앴을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말했다.

33살 때 대구시청 감독이 된 그는 올해까지 각종 대회에서 30여 차례 우승을 차지했다.

이 감독이 가장 기뻤던 순간으로 꼽은 핸드볼 큰잔치 원년(1989년)과 그다음 시즌 연속 우승도 30여 차례 우승에 포함된다.

대구시청을 국내 명문 팀으로 조련한 이 감독은 대표팀 사령탑도 여러 차례 역임했다.

1997년 세계선수권을 시작으로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 대표팀을 이끌었고 2009년 세계선수권,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때도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다.

이 감독이 28년 감독 생활 가운데 가장 아쉬운 장면으로 지목한 것은 역시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이었다.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에서 처음 정식 종목이 된 여자 핸드볼에서 한국이 금메달을 따내지 못한 유일한 대회였다. 당시 우리나라는 준결승에서 일본에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다.

이 감독은 "가장 가슴 아픈 경기"라고 아쉬워했다.

2004년 핸드볼큰잔치 우승 당시 이재영 감독.
2004년 핸드볼큰잔치 우승 당시 이재영 감독.

가장 기억에 남는 제자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이호연(46)을 꼽았다.

이 감독은 "지금 대구 용산중학교 코치인데 인천여고 출신 선수를 내가 직접 스카우트해와서 대구에서 결혼하고 가정까지 이룬 제자"라며 "운동 잘했고, 인성도 좋아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칭찬했다.

이호연은 핸드볼큰잔치 최초로 500골을 돌파했고, 득점왕 두 차례, 어시스트상 두 차례에 1995년 큰잔치 때 최우수선수로 선정된 스타 플레이어 출신이다.

요즘 선수들에게는 예전 1980년대 선수들의 정신력을 배울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감독은 "요즘 선수들은 대우는 좋아졌지만, 정신력은 예전만 못하다"며 "실업에 들어와서 1, 2년 안에 운동 그만하겠다고 하는 선수들이 많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예전 선수들은 단체 훈련이 끝나고 개인 운동을 알아서 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뭐든지 자기 자신이 스스로 하려는 의지가 있을 때 기량 발전도 가장 잘 되기 때문에 선수들이 즐기면서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젊었을 때는 이 감독도 대표적인 '다혈질 지도자'였다.

그는 "5년 전인가 삼척 대회에서 경기 도중에 갑자기 아무것도 안 보이고 하늘이 노래지더라"며 "경기 지휘를 코치에게 넘기고 앉아만 있다가 나온 적이 있다"고 회상했다.

이 감독은 "이후로 체중도 10㎏ 감량하고 성격도 죽이면서 살고 있다"며 "지도하는 일은 이제 끝이지만 다른 방법으로 핸드볼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기꺼이 할 생각"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emailid@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6/11/21 09:13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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