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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포격에 K-9 자주포 고장났지만 복수심에 물러설수 없었죠"

연평도 포격도발 대응사격한 김영복 해병 중사 인터뷰

(서울=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 "북한 쪽으로 복수의 포탄을 날리려고 급히 K-9 자주포를 점검했는데 구동제어기에 '불량' 코드가 들어왔습니다. 북한군의 포격으로 장비가 파손돼 자동사격을 할 수 없게 된 것이죠. 그러나 응징을 포기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반자동사격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2010년 11월 23일 북한의 연평도 포격도발 당시 빗발치는 적의 포탄에 맞서 대응사격을 한 해병대 연평부대 예하 포 7중대원이었던 김영복(29) 중사는 20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북한군의 첫 포격 직후 긴박했던 순간을 이렇게 회고했다.

김영복 중사
김영복 중사북한의 연평도 포격도발 당시 대응사격을 한 김영복 중사가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해병대 제공]

김 중사는 당시 포 7중대 3포반장으로, 5명의 부하 병사들과 함께 K-9 자주포 1대를 맡고 있었다. 포 7중대는 모두 4대의 K-9 자주포로 북한을 향해 대응사격을 했다.

이들 가운데 김 중사의 K-9 자주포는 가장 열악한 조건에서 포탄을 쏴야 했다. 북한군의 선제공격으로 포신이 파손됐던 것이다.

북한군의 포탄 1발은 김 중사의 K-9 자주포 뒷쪽 1∼2m 지점에 떨어졌고 수많은 파편들이 포신을 쳤다. 당시 북한군의 포격은 연평부대 포 진지에 집중됐다.

정례적인 사격훈련을 마치고 K-9 자주포 정비작업을 하던 중 불의의 공격을 당한 김 중사는 급히 자주포를 안전한 포상(포를 배치하는 진지)으로 이동시키고 병력과 장비의 상태를 점검했다. 김 중사도 파편에 맞아 귀 부위에서 피가 흘렀지만, 자기 몸을 돌볼 상황이 아니었다.

다행히 부하들은 모두 무사했지만, K-9 자주포는 자동사격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김 중사는 반자동사격은 할 수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 즉각 중대장에게 사격을 하겠다고 보고했다.

자동사격은 레이더가 탐지한 표적 정보에 따라 버튼만 누르면 되지만, 반자동사격 모드에서는 표적 정보를 손으로 입력하는 등 장비를 수동 조작해야 한다.

반자동사격 준비를 모두 마친 김 중사는 중대장에게 '사격준비 끝!'이라고 힘껏 수차례 반복했다. 북한군의 비열한 기습공격을 단 1초라도 빨리 응징하고 싶었던 것이다. 부하 병사들도 복수의 포탄으로 적진을 초토화하겠다는 결의로 불타올랐다.

중대장의 사격 지시를 받은 김 중사와 병사들은 북한군의 포탄이 빗발치는 포상 밖으로 나가 평소 갈고닦은 기술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레이더에 포착된 북한군의 도발 원점인 개머리 진지를 향해 10발의 포탄을 날려보냈다.

포 7중대는 K-9 자주포 4대로 모두 80여발을 대응사격했다. 김 중사의 K-9 자주포는 반자동사격 모드로 준비를 갖추는 데 시간이 걸려 다른 포들보다 적은 포탄을 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김 중사는 상상만 하던 북한군과의 교전을 경험했다. 2006년 임관한 그는 당시 군 복무 5년차의 하사였다.

김 중사는 북한군과의 교전으로 평소 실전적인 훈련을 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일단 교전이 벌어지면 군인은 싸움에 능한 맹수처럼 조건반사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실전과 같은 훈련을 반복함으로서 어떤 상황에도 거침없이 대응할 수 있는 몸과 마음의 상태를 유지하는 게 필수적이다.

김 중사는 지금은 경북 포항에 있는 해병대 1사단 포병연대 포술 담당 부사관으로, 포 사격 기술을 교육하는 임무를 수행 중이다. 훈련을 할 때마다 그는 동료들에게 실전과 같은 마음가짐을 가지라고 끊임없이 독려한다. 적의 도발은 언제 어디에 닥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김 중사에게는 연평도 포격도발의 깊은 상처도 있다. 전우인 서정우 하사와 문광욱 일병을 북한군의 포탄에 잃은 것이다. 북한군의 포격도발이 그친 저녁, 부대 복구작업에 여념이 없던 김 중사는 서 하사와 문 일병의 전사 소식을 듣고 다시 한번 분노에 치를 떨었다.

김 중사는 북한군의 연평도 포격도발 6주기인 오는 23일 대전현충원에서 열리는 추모행사에 참석한다. 그와 생사를 함께했고 지금은 군복을 벗고 사회로 나간 부하 병사들도 한자리에 모인다.

"그때는 빗발치는 포탄 속에서 부하 병사들을 살려야겠다는 마음뿐이었죠. 제가 살아남은 것도 부하 병사들 덕분이구요. 전우들의 얼굴을 다시 볼 생각에 벌써부터 마음이 설렙니다."

ljglory@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6/11/20 09:0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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