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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의 나르코스> ①'원조 나르코스' 에스코바르의 흔적들

송고시간2016-11-18 09:00

한때 세계 7위 갑부가 직접 지은 감옥과 대농장엔 폐허만 남아

(메데인<콜롬비아>=연합뉴스) 김지헌 특파원 = 미국 넷플릭스가 지난해 8월부터 올해 9월까지 제작·방영한 드라마 '나르코스'(Narcos)는 세계적 인기를 끌었다.

나르코스는 콜롬비아의 전설적인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Pablo Escobar, 1949∼1993)의 일대기를 다뤘다. 일개 밀수업자이던 그가코카인을 취급하기 시작하면서 한때 콜롬비아의 대통령까지 꿈꿀 정도로 큰 부와 권력을 쌓았다가 결국 경찰의 총에 사망하는 과정을 시즌 1, 2에 담았다.

나르코스는 콜롬비아 내에서 논쟁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아프고 부끄러운 과거를 재조명당한 콜롬비아인들은 에스코바르 역의 배우가 매끄럽지 않은 스페인어를 쓰는 브라질 출신이라는 것 등 많은 부분을 지적했다.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사진들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사진들

에스코바르가 나고 자란 콜롬비아 제2 도시 메데인(Medellin)은 그가 설립한 마약 조직 '메데인 카르텔'의 근거지로 에스코바르와 함께 세계에 악명을 떨쳤다. 에스코바르 사망 23년이 지난 지금도 메데인에선 에스코바르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그가 자녀들을 위해 조성한 대농장을 비롯해 정부와 협상 끝에 자신이 투옥될 목적으로 직접 지은 감옥은 이제 폐허만 남아 마약으로 쌓은 부와 힘의 최후를 보여주고 있다.

◇ 에스코바르의 감옥, 빌딩, 묘지, 농장…그의 흔적들

지난 13일(현지시간) 찾은 콜롬비아 중북부의 메데인은 해발 고도 1천500m에 자리 잡아 1년 내내 봄 날씨가 이어진다.

어디를 가나 나무가 우거지고 꽃이 만개한 이 도시에서 에스코바르는 마약 카르텔을 설립하고 온갖 형태의 폭력을 지휘했다.

폐허만 남은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감옥 '라 카테드랄'
폐허만 남은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감옥 '라 카테드랄'

메데인 시내 남쪽의 산 중턱에 있는 감옥 '라 카테드랄'(La Catedral)은 그의 전성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잘 보여준다.

성당이라는 이름의 이 감옥을 정부가 그를 체포해 가둬둔 곳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에스코바르는 오직 자신만을 위한 이 감옥을 직접 짓고 제 발로 들어갔다.

미국과 콜롬비아가 맺은 범죄자 인도 협정에 따라 미국으로 보내지는 것을 가장 두려워했던 에스코바르가 콜롬비아 정부와 협상해 얻어낸 결실이었다.

에스코바르는 1991년 메데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산지에 건물을 지어 각종 편의시설은 물론 당구대와 카지노 등 오락시설을 두고 헬기장과 축구장까지 만들었다.

그와 함께 수감된 사람들은 모두 부하들이었고 감옥 경비원마저 에스코바르가 고른 이들이었다. 이름만 감옥일 뿐 요새 혹은 궁전이나 다름없었던 이곳은 '클럽 메데인', '호텔 에스코바르' 등으로 불렸다.

폐허만 남은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감옥 '라 카테드랄'
폐허만 남은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감옥 '라 카테드랄'

현재 이곳에서 에스코바르가 누린 영화는 찾아보기 어렵다. 건물은 대부분 폐허 상태로 방치되고 있다. 가이드 카를로스 가르시아(44)는 "메데인 시 정부가 분명히 관리하고 있다. 다만 마약으로 번 돈의 결말이 어떤지 보여주려는 의도"라고 말했다.

근처의 개울 옆엔 성모 마리아상이 있었다. 가이드는 "에스코바르는 '감옥'인 이곳에서도 많은 사람을 살해했다. 사람을 죽이고 나면 속죄를 한다며 개울에 와서 몸을 씻고 기도를 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소유했던 '모나코 빌딩'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소유했던 '모나코 빌딩'

메데인 시내에서도 에스코바르의 흔적들을 찾을 수 있었다. 지금은 폐쇄된 6층짜리 건물 '모나코 빌딩'(Edificio Monaco)이 대표적이다.

1988년 1월 13일 에스코바르와 그의 가족이 이곳에서 자고 있을 때 메데인 카르텔의 경쟁 조직인 칼리 카르텔이 건물 앞에서 다이너마이트 80㎏를 실은 차량 폭탄을 터뜨려 에스코바르의 딸의 한쪽 귀를 먹게 했던 곳이다.

가이드는 "당시 테러로 에스코바르의 피의 복수가 시작됐다"며 "메데인과 콜롬비아 시민에게 과거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상징적 장소"라고 말했다.

원래 이름이 '에스코아르'(Escoar)였던 이 건물은 현재 리모델링을 위해 폐쇄됐으며 공사가 마무리되면 경찰서로 사용될 예정이다.

에스코바르가 1993년 12월 2일 최후를 맞은 메데인 시내 주택가의 옥상 역시 그대로 있다. 지금은 조그만 부동산 업체가 사용하는 1층짜리 건물의 옥상이며, 그 뒤로 에스코바르가 마지막까지 숨어 있다가 경찰의 급습을 맞았던 주택이 있다.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숨진 옥상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숨진 옥상

메데인 출신 전직 경찰로 당시엔 보고타에서 근무 중이었다는 가이드 가르시아는 "지휘관이 '파블로가 죽었다!'고 외쳤고 우리는 모두 열광하며 성대한 파티를 열었다"고 회상했다.

옥상에서 사망한 에스코바르의 시신은 현재 메데인 시내 몬테사크로(Montesacro) 공동묘지에 안치돼 있다.

넓은 잔디밭에 세워진 비석으로 표시된 다른 묘들과 달리 에스코바르의 묘는 형제, 어머니 등 다른 가족들의 묘와 함께 검은 대리석이 둘러쳐진 별도 장소에 자리를 잡았다.

역시 검은 대리석으로 된 묘비의 글자는 계속 내린 빗방울에 가려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물을 닦아내자 '파블로 에밀리오 에스코바르 가비리아'라는 그의 정식 이름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수많은 죽음에 개입한 것으로 추정되는 마약 범죄자의 묘지가 아무 일 없다는 듯, 그것도 더 고급스러운 형태로 있는 것에 대해 시민 에벨린 팔라우(33)는 "누구나 무덤을 가질 수 있고 에스코바르도 마찬가지"라며 "이젠 주로 관광객이 보러오기는 하지만, 에스코바르가 저지른 일과 죽음 모두 우리 역사의 일부"라고 말했다.

콜롬비아 메데인에 있는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비석
콜롬비아 메데인에 있는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비석

메데인에서 동쪽으로 약 175㎞ 떨어진 에스코바르의 '나폴레스 농장'(Hacienda Napoles)은 에스코바르의 독특한 취향, 자식 사랑, 재산 규모를 한눈에 보여주는 곳이다.

에스코바르는 아들 후안 파블로 에스코바르를 위해 미국 디즈니랜드와 비슷한 곳을 만들 생각에 1978년 2천995 헥타르(약 2천995만㎡)에 달하는 부지를 사들였다.

공룡을 좋아했다는 아들을 위해 그는 하마, 사자, 호랑이, 가젤 등 콜롬비아에서 볼 수 없는 세계 각지의 동물을 밀수해 와 이곳에 풀어놓고 동물들이 서로 영역을 침범하지 않도록 호수 23개를 만들어 구역을 나눴다.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소유했던 '나폴레스 농장' 입구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소유했던 '나폴레스 농장' 입구

에스코바르 사후 민간 기업이 농장을 매입해 리조트, 캠핑장, 워터파크, 동물원 등을 운영하고 있다. 에스코바르가 저지른 폭탄 테러 등의 사진을 전시한 박물관도 마련했다.

이곳에서도 에스코바르가 거주하던 호화 주택, 다양한 자동차를 보관했던 주차장, 비행기 활주로 등은 폐허로만 남은 상태를 볼 수 있다. 특히 에스코바르의 주택은 이제 바닥의 주춧돌만 남아 형태를 짐작하기 불가능한 수준이다.

가이드는 "생전 에스코바르는 이곳에서 은제 식기를 훔친 하인을 묶은 채 호수에 빠뜨려 죽였는데, 에스코바르가 죽은 후 온갖 도둑들이 이곳에 몰려들어 돈이 될 만한 것은 모조리 가져갔다"며 "지금 남은 폐허의 모습이야말로 그가 가졌던 힘의 실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폐허만 남은 나폴레스 농장의 주택 터
폐허만 남은 나폴레스 농장의 주택 터

◇ 에스코바르는 누구…한때 미국행 코카인 80% 유통한 '원조 마약왕'

에스코바르는 1949년 12월 1일 메데인 인근 리오네그로(Rionegro)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가족을 돌보지 않았고 어머니 에르밀다 가비리아가 일곱 자녀를 챙겼다고 한다.

학창 시절 신발이 없어서 맨발로 학교에 갔던 에스코바르가 망신을 당하고 돌아오자 어머니는 가게에서 신발을 훔쳐서 아들에게 줬고, 에스코바르는 "내가 자라면 모든 것을 다 드리겠다"고 말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뼈대만 남은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자동차들
뼈대만 남은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자동차들

훔친 자동차 되팔기와 밀수업을 하던 에스코바르는 26살 때 칠레 출신 코카인 제조업자를 만나 마리화나(대마초) 잎이 주를 이루던 당시 세계 마약 시장에 코카인 분말을 소개했으며 처음으로 미국행 코카인 밀수 루트를 개발했다.

냉전이 한창이던 당시 미국은 콜롬비아의 좌파 게릴라 콜롬비아민족해방군(FARC)을 비롯해 중남미의 좌파 세력을 척결하는 데 신경을 쏟느라 마약 문제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고 이는 에스코바르의 사업에 큰 도움이 됐다.

한때 미국 시장으로 들어가는 코카인의 80%를 유통해 '코카인의 제왕'으로 불렸으며 코카인으로 벌어들인 돈이 넘쳐난 나머지 땅에 묻어뒀다가 나중에 찾아보니 썩거나 쥐가 파먹어서 못 쓰게 된 것도 많았다고 한다.

1989년에는 250억 달러(약 29조 원)를 보유, 미국 포브스지 선정 세계 7위 부자였고 지폐를 묶는 고무줄을 사는 데만 매달 2천500 달러(약 300만 원)를 써야 했다고 한다. 한 번은 도주 중 어린 딸이 춥다고 하자 200만 달러(약 23억 원)어치 지폐를 태워 불을 피우기도 했다.

1980년대 콜롬비아 당국이 압수한 에스코바르의 재산은 비행기 142대, 헬기 20기, 요트 32척, 잠수함 2척, 주택과 사무실 141곳 등에 달했다. 에스코바르는 미국으로의 송환을 가장 두려워해 콜롬비아 정부에 강제 송환 법률을 폐기하는 대가로 국가채무 100억 달러(약 11조7천억 원)를 대신 상환해주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라 카테드랄'에서 내려다본 메데인 시내
'라 카테드랄'에서 내려다본 메데인 시내

빈곤층을 위해 상하수도, 주택, 축구장, 동물원 등을 지어 의적의 상징 '로빈 후드'라는 별명을 얻고 '메데인의 성자'로 추앙받기도 했지만, 미국 마약단속국(DEA)은 에스코바르가 약 1만 명 이상의 사망에 관여했다고 본다.

특히 1989년 미국과의 범죄자 강제 송환 협정에 찬성하던 당시 대통령 후보 세사르 가비리아 한 명을 암살할 목적으로 가비리아가 탑승할 예정이던 아비앙카 항공 203편을 폭파해 승객과 승무원 등 107명을 전원 죽게 한 것은 에스코바르 최악의 테러로 여겨진다.

정작 가비리아 후보는 당시 비행기에 타지 않았고 이후 콜롬비아의 제28대 대통령이 돼 1994년까지 재직하며 '마약과의 전쟁'을 이끌었고 에스코바르의 죽음을 대통령궁에서 지켜봤다.

콜롬비아 제3 도시 칼리(Cali)에 근거지를 둔 경쟁 조직 칼리 카르텔과 극우파 민병대의 공격에 당국의 수사망이 좁혀오면서 세가 약해진 에스코바르는 44번째 생일 다음 날인 1993년 12월 2일 메데인 내 은신처에서 경찰의 급습을 받아 총격전 끝에 사망했다.

당시 하늘에 DEA의 헬기가 떠 있는 것을 보고 미국으로 송환되는 것을 피하고자 직접 자신의 머리에 총을 쐈다는 추측도 있다.

j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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