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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갈리아 이후' 페미니즘 이론을 정교화하라

신간 '여성혐오, 그 후'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여성혐오 발언을 남성에게 그대로 반사한다는 뜻의 '미러링' 전략에 대한 가장 빈번한 반론은 폭력적 배제라는 방식이 여혐과 다를 바 없다는 논리다. 남녀의 자리만 바뀌었을 뿐 주체와 대상의 위계적 이분법, 거기서 비롯되는 차별과 지배의 원리는 비판의 타깃인 남성 주체 중심의 인식체계와 꼭 닮았다는 것이다.

메갈리안을 비롯한 미러링 전사들의 고군분투로 사회 곳곳에 페미니즘의 목소리가 스며들수록 '역공'의 우려도 커지는 게 사실이다. 미러링으로 닻을 내린 뒤 정당 창당 운동까지 전선을 넓히는 오늘날 페미니즘은 좀 더 정치한 이론으로 스스로 가다듬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신간 '여성혐오, 그 후'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저자인 이현재 서울시립대 교수는 '꼰대'임을 인정하고 이왕 나선 김에 '제대로' 꼰대질을 하기로 마음먹는다. 동시대 한국 페미니즘의 이론적 정교화가 책의 목표다.

저자가 페미니즘과 여성혐오 담론을 분석하는 데 끌어오는 핵심 개념은 '비체'(卑/非體·abject)다. 한자나 영어 단어 모두 '대상이 아닌' 어떤 것을 가리키는데, 콧물처럼 흐르고 경계를 넘나들며 고체화하지 않는 존재다. "동일성이나 체계와 질서를 교란시키는 것"이라는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설명처럼 비체는 안정을 추구하는 쪽에서 보면 혐오의 대상이다.

2012년 '슬럿 워크'(slut walk) 시위 [연합뉴스 자료사진]
2012년 '슬럿 워크'(slut walk) 시위 [연합뉴스 자료사진]

보통 남성의 입장에서 보면 비체를 이해하기 쉽다. 수동적이고 재생산이 가능하며 타자로서 남아있는, 즉 자신과 뚜렷이 구분되는 여성은 좀처럼 혐오하지 않는다. 반대는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며 자신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여성이다. 헤겔이 여성을 가리켜 '극단적이고, 불투명하며 거부될 수 없는 개별성의 담지자'라고 말한 데서 보듯 비체 혐오의 역사는 뿌리가 깊다.

저자는 여성혐오의 구조에 구멍을 내기 위해 '비체 되기'를 제안한다. 미러링 같은 '젠더 패러디', 남성의 판타지를 역이용해 여성성을 가장하는 '가면 쓰기', 성녀와 창녀의 구분을 극복하는 '잡년 되기' 등의 전략이 여성혐오를 뒤흔들 수 있다. 페미니즘의 역사를 '비체 되기'의 역사로 본다면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분산된 페미니스트들의 연대가 가능해진다. 여성혐오를 비판하면서 동시에 빠질 수 있는 타자화·대상화의 위험에서 벗어나는 전략이기도 하다.

'미러링'이 함정에 빠지지 않고 패러디로서 효과를 발휘하려면 여성혐오 발화에 대한 동일시가 '잠정적'임을, 모방하면서도 그 논리를 벗어난 '이중적'인 것임을 보여줘야 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만약 이들이 남성과의 완전한 동일시 속에서 이중적 위치를 갖는 비체의 경계 넘기를 더는 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중략) 나 역시 이들의 놀이를 비체들의 비판 행위로 정당화해줘야 할 이유가 없다."

들녘. 152쪽. 1만2천원.

'메갈리아 이후' 페미니즘 이론을 정교화하라 - 2

dada@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6/11/10 07:0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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