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태화 감독 "강동원은 '만찢남'…외모 망가뜨리는데 초점"
송고시간2016-11-08 16:52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순정만화 분위기에요. 강동원 씨를 흔히 '만찢남'(만화를 찢고 나온 남자)이라고 하는데 이 영화와 잘 맞죠. 다만 영화를 찍을 때는 저 미모를 어떻게 하면 망가뜨릴까에 초점을 맞췄어요."
영화 '가려진 시간'의 엄태화 감독은 35살 동갑내기 배우 강동원과 작업이 무척 만족스러운 듯했다.
8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엄 감독은 "강동원은 어른과 소년의 모습을 다 갖춘 배우"라며 "쉽지 않은 캐릭터를 강동원이 훌륭히 소화해냈다"고 치켜세웠다.
오는 16일 개봉하는 '가려진 시간'은 한 섬에서 의문의 실종사건이 일어난 지 며칠 만에 어른이 되어 나타난 성민(강동원)과 유일하게 그를 믿어주는 소녀 수린(신은수), 둘만의 특별한 이야기를 그린 감성 판타지 영화다.
엄 감독이 연출에 직접 시나리오까지 썼다.
엄 감독은 2012년 미장센단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대상작에 선정된 단편 '숲'과 영화아카데미 장편과정을 통해 내놓은 독립 장편 '잉투기'로 '괴물 같은 신인'이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가려진 시간'은 그의 첫 상업 장편영화다.
엄 감독의 친동생은 영화 '밀정'으로 얼굴을 알린 배우 엄태구로, 이번 영화에도 출연했다.
다음은 엄 감독과의 일문일답.
-- 이야기 전개가 흥미롭다.
▲ 시간이 멈추면 어떨까 하는 상상에서 출발했다. 평소에도 현실과 비현실이 부딪히는 소재에 관심이 많았다. 시간이 멈춘다는 설정 아래 관련 이미지를 찾던 중 성인 남자와 어린 여자아이가 큰 파도 앞에 서 있는 이미지를 발견했다. 도대체 저 두 사람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을까 상상해봤다.
-- 전작인 독립 장편 '잉투기'와는 분위기가 정반대다.
▲ 사실 '잉투기'가 제 성향과는 조금 다른 작품이다. 저는 격투기 이런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잉투기'는 웹이라는 가상세계가 더 큰 소재다. 가상세계와 현실이 부딪히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표현하는 방법만 다르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같다.
-- 촬영할 때 어려운 점은.
▲ 영화 속 배경은 여름이었는데, 실제 촬영은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진행됐다. 아역 배우들이 반발, 반바지를 입고 촬영 하다 보니 추위 때문에 고생했다. 특히 양평에서 촬영할 때는 영하 18도까지 내려갔다. 당시 산에 올라와 숨을 몰아쉬는 장면을 찍었는데, 입김이 났다. 그래서 아역 배우들에게 숨을 실제로 쉬지는 말되, 숨이 차서 몰아쉬는 연기를 하라고 주문했는데 실제로 해내더라.
-- 강동원이 캐스팅 1순위였다고 하는데.
▲ 남자 배우가 무엇보다 위화감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자아이와 성인 남자가 함께 있어도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둘 다 성인 같은 모습으로 보이길 원했다. 그런 면에서 강동원은 소년의 모습과 성인의 모습을 다 갖춘 배우다. 특히 이 영화는 순정만화 분위기다. 강동원을 흔히 '만찢남'(만화를 찢고 나온 남자)이라고 하지 않나. 다만 영화를 찍을 때는 강동원의 저 미모를 어떻게 하면 망가뜨릴까에 더 초점을 맞췄다. 그래도 강동원이 머리를 자르는 장면을 나중 편집할 때 보니 정말 '미모'가 돋보이더라.
-- 강동원의 연기에 대해 만족하나.
▲ 오그라드는 느낌 없이 적정선을 잘 지켜 연기한 것 같다. 사실 이번 역할이 굉장히 어려웠다. 참고 할만한 인물이 없는 배역이다. 정지된 시간 속에서 어른이 된 감정이나 정서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전쟁 트라우마 등 어떤 트라우마를 가진 인물들을 참고 인물로 이야기했다. 그리고 촬영할 때도 실제 더 어른처럼, 혹은 좀 더 아이같이, 이렇게 여러 버전으로 찍었고 편집할 때 그때그때 맞는 장면을 찍었다.
-- 아역 배우 신은수의 연기도 놀랍다.
▲ 은수는 JYP엔터테인먼트에서 걸그룹을 1년 정도 준비하던 친구로, 처음 이 영화 오디션을 볼 때는 교과서를 읽는 것처럼 아예 연기를 못했다. 하지만 연기 트레이닝을 시켜보니 흡수하는 수준이 장난 아니더라. 기본적으로 감성을 타고 난 것 같다. 평소에는 쑥스러워하다가 상황을 던져주면 진짜가 튀어나온다.
-- '잉투기'에 이어 동생 엄태구와 작업했는데, 좋은 점은.
▲ 동생이니까 아무래도 편하다. 배우와 작업할 때 그 사람이 본래 가진 성향을 캐릭터에 많이 투영하는 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배우에 대해 많이 알아야 한다. 하지만 동생과는 그럴 필요가 없고 그 시간에 다른 배우와 소통할 수 있다.
-- 동생이 나오는 영화 '밀정'을 봤나.
▲ 봤다. (칭찬했나?) 고생했다는 이야기는 했다. 잘했다는 말은 서로 잘 안 한다. 영화를 하기 전에는 서로 거의 대화를 안 했다. 둘 다 말이 없고 낯을 가리는 편이다. 지금은 영화를 함께 하니까 자연스럽게 영화 이야기는 하지만, 누군가 중간에 없으면 별로 말을 안 한다. (엄태구 주연 영화 만들 계획은) 동생이 아직 주연을 맡을 '급'은 안된다.
-- 엄 감독의 10대 때 모습은 어땠나.
▲ 엄청나게 산만했고 장난꾸러기였다. 지금은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어서 숨기고 있는데, 사실 장난도 많이 친다. 오히려 동생 태구가 더 여자애 같았다. 태구는 어렸을 때 얼굴이 예뻐서 아역 배우 하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래서 동생이 배우가 된 것 같다. 그런데 갑자기 외모도, 목소리도 역변했다.
-- 차기작 구상은.
▲ 그때그때 관심을 두는 것에 대해 쓴다. 평소 꿈을 꾸면 꿈 내용을 적어놓기도 한다. 꿈은 제가 그 당시에 보고 들은 것이 투영돼 하나의 덩어리가 된 것이다. 영화는 그것을 끄집어내는 작업 같다.
fusionjc@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6/11/08 16:52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