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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판 최순실 부패'엔 고위 내부고발자들 있었다

송고시간2016-11-04 17:12

보고서 낸 국민권익보호원장,고위층 고발자 상당수는 여성…"살아있는 밝은 빛줄기"

재무부 실무관리들도 외압에 저항…대법원장에 대한 기대 커

(서울=연합뉴스) 윤동영 기자 = 제이컵 주마 남아공 대통령의 중도 퇴진을 가져오리라는 예상을 낳을 만큼 남아공에 핵폭풍을 일으키고 있는 비선 실세 부패를 고발하는 남아공 국민권익보호원(Public Protector Office)의 보고서 제목 'STATE OF CAPTURE'는 '포로가 된 국가' '포획된 국가' 등으로 옮길 수 있다.

툴리 마돈셀라 전 남아공 국민권익보호원장. [EPA=연합뉴스〕
툴리 마돈셀라 전 남아공 국민권익보호원장. [EPA=연합뉴스〕

이 제목은 지난 2000년 세계은행이 발간한 반부패 정책보고서에서 기존의 일반적인 부패 개념으로부터 분리해 새로 제시한 개념인 '국가 포로(State Capture)'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포로가 된 국가이든, 국가 포로이든 공익을 위해 존재하고 작동해야 하는 국가기관과 체제를 정치인, 관리, 기업인, 단체, 개인 등이 자신들의 `포로'로 잡고 사익을 추구하는 데 이용하는 포괄적 부패를 일컫는다.

세계은행은 보고서에서 국가 포로라는 용어를 "경제학 문헌들에선 이미 확립된 개념인 `규제 포로' 개념에서 따왔다"고 설명했다. 국가의 규제관련 기관들이 공공의 이익에 반해 규제 대상 업체나 업계의 사적인 이익에 도움이 되도록 각종 규제를 고치거나 없앨 때 그 국가기관들이 이들 업체나 업계에 "포획됐다(captuerd)"고, 즉 포로가 됐다고 경제학적으로 표현된다.

`국가 포로' 개념은 규제관련 기관들 뿐 아니라 행정, 입법, 사법부를 포함한 모든 국가기관들에 의한 법령과 판결을 포괄한다는 점에서 '규제 포로' 개념보다 넓은 것이다.

동시에 '국가 포로' 개념은 불법, 부당, 불투명한 형태의 영향력 행사만 가리킨다는 점에선 '규제 포로' 개념보다 좁은 것이기도 하다.

모든 정치체제에서 사익이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국가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려 하는 것은 정상적인 현상이고, 경제적, 정치적 개혁 추진에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그러나 부패가 의견과 이익 반영을 위한 정상적인 로비와 구별되는 것은, 비공식적이고 불투명하며 매우 특혜적인 경로를 통한 접근과 이익의 교환이 이뤄지는 데 있다고 세계은행은 설명했다.

남아공의 '포로가 된 국가' 보고서가 밝혀낸 부패 혐의들은 남아공의 재벌 굽타 가문이 주마 대통령의 비호 아래 자신들의 사업 이익을 위해 장관 등 고위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주거나 심지어 해외사업 계약 체결을 돕도록 장관을 외국에 출장 보내고 장·차관 인사를 주무른 것들이어서 '국가 포로' 개념에 적확하게 들어 맞는다.

한국에서 남아공판 '최순실' 사건으로 불리기도 하는 남아공 부패 사건은 그러나 몇 가지 점에서 한국과 다른 점이 눈에 띈다.

무엇보다 한국의 국민권익위원회와 같은 기능을 하는 '국민권익보호원'이 주마 대통령의 방해 공작을 뚫고 355 페이지의 방대한 분량의 조사 보고서를 통해 의혹 전모를 국민 앞에 공개했으며, 굽타 가문으로부터 거액의 돈과 재무장관 자리를 제안받은 재무차관 등 일부 정부 고위관계자들이 이를 거부하고 내부고발자로 나섬으로써 국민권익보호원의 조사가 개시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음세비시 요나스 재무차관은 굽타 가문의 유혹은 자신들의 요구에 고분고분하지 않는 재무관리들을 물갈이 해달라는 조건이 붙은 것으로 민주주의를 "능멸하는" 것이었다며 즉각 거부했다고 언론에 밝혔다.

공기업 장관은 국영항공사와 국영철도회사, 국영전력회사 등의 이사진 인선에 대한 외압을 거부했다가 자신의 일자리를 잃었고, 그 후임으로 공기업 장관 제안을 굽타 가문으로부터 받은 한 의원은 이를 사양하고 대신 내부고발자로 나섰다. 정부 산하 한 통신기관장은 "도와주라"는 대통령의 말에도 굽타 가문의 신문 광고를 거부했다가 역시 쫓겨났다.

이들 외에도 국영기업관련 거래에 대한 승인권을 가진 국고청 관리들도 굽타 가문의 업체와 국영기업간 거래에 대해 법규에 어긋난다며 승인을 거부하다가 실패하자 결국 계약 연장읕 막는 데는 성공했다. 이것이 재무장관의 경질로 이어졌다. 국민권익보호원의 보고서 내용엔 재무 관리들이 굽타 가문의 계획을 여러 차례 좌절시킨 대목들이 들어있다.

'암흑의 남아공'에 살아 있는 소수의 '밝은 불빛'들엔 '국가검찰청(National Prosecuting Authority)'도 있다고 미국 외교·안보 전문매체 포린 폴리시는 3일(현지시간) 지적했다. 굽타 가문의 눈밖에 나 쫓겨났다가 시장 반응 때문에 나흘 만에 복귀한 재무장관에 대한 조작된 고발 건을 각하했다는 것이다.

처벌권이 없는 국민권익보호원은 보고서에서 드러난 혐의를 검찰과 경찰의 수사에 넘겼다. 이에 대해 외신들은 검·경의 철저한 수사 의지에 대한 우려도 있으나 남아공 국민은 과거 주마 대통령의 권한 남용을 공개적으로 강력 비판했던 대법원장에게 희망을 걸고 있다고 전했다. 국민권익보호원은 대법원장이 임명하는 판사로 독립된 조사위원회를 구성할 것도 권고했다.

툴리 마돈셀라 전 국민권익보호원장(Public Protector)은 영어 직책명을 문자 그대로 번역한 '호민관'으로서 7년간 반부패 투쟁을 한 끝에 이 보고서 작성을 끝으로 물러났다. 그는 "나는"이라는 1인칭 시점으로 보고서를 작성했으며, 주마 대통령의 개입 혐의에 대해 "매우 우려스럽다"는 표현을 여러 곳에 담았다.

마돈셀라 전 원장과 쫓겨난 공기업 장관, 내부고발자로 나선 의원 등은 여성들이다.

yd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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