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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동학농민혁명군 122년 만에 온주아문서 첫 위령제

(아산=연합뉴스) 김용윤 기자 = '낫네 낫서 난리가 낫서 에이 참 잘 되앗지 그냥 이대로 지내서야 백성이 한사람이나 어데 남어잇겟나'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충남 아산 농민군이 아산현과 신창현, 온양군 관아를 혁파하고 예산 내포지역으로 진군한 날을 기념해 4일 오후 아산시 읍내동 온주아문(溫州衙門)에서 동학군의 넋을 위로하는 제1회 위령제가 열렸다.

아산 동학농민혁명군 위령제 [아산시 제공=연합뉴스]
아산 동학농민혁명군 위령제 [아산시 제공=연합뉴스]

보국안민과 척양척왜의 기치를 들고 일어났지만 일제의 월등한 화력에 스러진 지 122년 만의 일이다.

동학농민혁명 아산시기념사업회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이 주최한 이날 위령제에는 시민 100여 명이 모여 당시 동학군의 폐정개혁 12조와 격문, 강령 등을 함께 읽고 동학농민혁명 정신을 되새겼다.

정해곤 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제문에서 "원통한 님들을 위로하는 것은 바로 님들이 원했던 세상을 이루는 길임을 후손들은 잘 알고 있다"며 "남북이 화해하고 외세의 영향력을 줄여나갈 수 있도록 올곧은 집권자를 세워 백성이 편안하게 사는, 그런 세상을 만들 수 있도록 동학농민혁명군 영령들이 함께 해주시길 바란다"고 염원했다.

동학 2대 교주 최시형이 갑오년 9월 총기포령을 내리자 아산 동학농민군은 내포지역 동학의 일원으로 10월 5일(음력)을 기해 떨쳐 일어났으나 홍주성 전투에서 관군과 우수한 화력의 일본군에 패배, 가혹한 탄압으로 엄청난 희생을 치렀다.

비슷한 시기에 전봉준, 손병희가 이끈 주력 동학농민군도 공주 우금치를 넘지 못했다.

기념사업회 관계자는 "122년 만에야 동학농민군의 넋을 달랠 수 있었다"며 "첫술을 떴으니 해마다 기념식이나 위령제를 지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yykim@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6/11/04 16:06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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