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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배우화가 김현정 '내가 나를 만나 행복을 얻다'

송고시간2016-11-17 07:30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나는 과연 누구일까? 나는 나를 만났는가? 여기서 ‘나’는 존재로서의 자신을 뜻한다. 내가 나를 모르면 까닭 모를 불안감에 시달리기 쉽다. 내가 나를 만나지 못해도 끝없는 허무함에 젖어들기 마련이다. 삶은 ‘외면의 나’와 ‘내면의 나’가 손잡고 하나가 될 때 비로소 안정감 속에 건강해진다. 진정한 행복은 그 합일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배우화가 김현정(37) 씨. 인기배우로 청춘의 문을 활짝 열었던 김 씨는 연예계 특유의 화려한 조명에도 불구하고 한때 존재의 불안으로 허우적거리는 자신을 발견했다. 정신적 방황과 고뇌의 연속. 그러던 어느 날, 어린 시절에 잃어버렸던 내면의 자아를 새로이 발견하고 비로소 삶의 안정감을 얻는다. 미술은 그 요긴한 열쇠이자 통로가 돼 줬다.

“요즘에는 일상의 모든 이미지가 새롭습니다. 세상의 소소한 것들이 낯설고 즐겁게 다가오는 거지요. 이는 그동안 ‘내면아이’(inner-child)의 존재를 찾고, 내면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바라보면서 얻은 특별한 선물이에요. 이번 전시작 중 하나인 ‘무지개 여행’에서처럼, 내가 살던 곳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여행을 떠나게 된 것이라고 할까요. 삶의 여행은 자신을 단순히 소비하는 시간이 아니라 새로운 경험을 축적하는 시간입니다.”

작품 '내면아이와 나'. 사진/임귀주 기자
작품 '내면아이와 나'. 사진/임귀주 기자

◇‘내면아이’ 찾아 배우에서 화가의 길로

배우에서 화가로 거듭난 김 씨가 두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지난 9월 28일부터 10월 4일까지 서울 명동성당의 갤러리1898에서 열린 ‘선물’ 전이 바로 그것. 명동성당에서 소장화가의 초대전이 열리는 건 다소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번 전시회에는 작가의 분신이자 내면의 자아인 랄라를 소재로 한 작품 등 20점이 출품됐다. ‘무지개 여행’, ‘랄라와 순이’ 등 신작은 물론 ‘내면아이와 나’, ‘종이 비행기’ 등 기존 작품도 나란히 선보였다. 지난 9월 초 가톨릭 성인으로 추대된 마더 테레사 수녀를 그린 작품 또한 만나볼 수 있었다.

“가톨릭 신자로서 명동성당에서 전시하는 게 꿈이었어요. 서울대교구의 후원으로 초대전을 열어주시니 저로선 크나큰 영광이지요. 내면아이 랄라는 제게 선물과 같은 존재이고, 그 선물을 세상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전시 제목을 ‘선물’이라고 한 이유예요.”

김 씨는 자신이 현재 향유하는 삶의 기쁨이 이곳 명동에서 비롯했다고 들려준다. 성당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꼭 열고 싶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전시작 ‘무지개 여행’과 ‘무지개 꿈’에 담았듯이 일상에서 만나는 하늘의 기쁨인 무지개처럼 모든 이들이 자신의 그림을 무지개처럼 산뜻하게 만나길 바랐다”고 말한다.

대학에서 전통의상을 전공한 김 씨는 스무 살 때인 1999년 모델을 시작으로 배우의 길을 걷게 된다. 그리고 KBS 드라마 ‘광끼’를 시작으로 방송드라마와 영화, 연극에 잇달아 출연했다. 특히 MBC 미니시리즈 ‘내 이름은 김삼순’은 시청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아 김 씨가 연예계의 탄탄대로를 걸을 수 있는 디딤돌이었고, 4년여 동안 공연된 연극 ‘나비’는 역사의 아픈 상처를 안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로 그에게 사회의식을 깊게 심어준 계기였다.

하지만 2009년부터 이전과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한다. 그해 3월 종영된 일일드라마를 계기로 배우로서의 삶에 스스로 브레이크를 건 것. 2004년에 천주교 신자가 된 김 씨는 가톨릭상담봉사자과정에서 심리상담을 받으며 심리와 미술을 동시에 만났다. 그리고 인형치료법을 통해 자신의 내면아이인 랄라를 발견해 화가로 본격 활동한다. 2014년 첫 개인전을 열고 관련서 ‘랄라의 외출’을 출간하는 등 종전과 사뭇 다른 길을 걷게 됐다. 그렇다면 김 씨가 배우의 길을 접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 배우는 몸으로 표현하는 직업입니다. 대중의 사랑을 받을 때면 짜릿해지곤 하지요.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연예인으로 살아가는 게 항상 불안하고 허전했어요. 일종의 강박이랄까요? 나이를 먹어가는 만큼 자신에게 중요한 존재로 여겨져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거든요. 일상에선 사람들과 흥겹게 놀았지만 돌아서면 남모를 고독에 시달렸습니다.”

존재에 대해 회의하던 김 씨에게 미술은 구원의 천사처럼 다가왔다. 그리고 심리상담을 통해 만난 내면아이 랄라는 새로운 삶의 동행자가 돼 줬다. 어려서 미술에 남다른 재능을 갖고 있던 그는 한동안 잊고 지냈던 미술을 다시 찾고 아동기 때 놓아버린 자아를 재발견하게 된 것이다. 김 씨는 “그동안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보다 남에게 보이는 외면의 나에게 더 신경을 쓰고 있었다”고 털어놓는다. 내면아이를 찾고 예술이 세상을 아름답게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서야 비로소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었다는 것. 세상은 본디 아름다운 곳이었으나 이를 미처 몰랐을 뿐이었다.

여기서 김 씨의 내면아이인 랄라가 궁금해진다. 이 아이는 과연 누구일까?

“랄라는 개인상담을 하면서 만난 내면의 ‘작은 현정’이지요. 맏딸로 태어난 저는 어린 시절에 두 살 아래 동생에게 인형을 양보하면서 나만의 인형이 없이 자랐어요. 한동안 그 기억을 까마득히 잊고 살았는데 심리상담 과정에서 공허했던 심리의 내면에는 잃어버렸던 ‘나’가 있음을 깨닫고 많이 울었어요. 상담선생님은 자신을 위해 지금이라도 자신에게 인형을 선물해보라 권하셨고, 그 길로 명동의 선물가게에서 토끼인형을 사게 됐지요. ‘랄라’라는 이름은 기쁨과 흥겨움을 표현하는 ‘룰루랄라’에서 따온 것이고요.”

◇“내면아이 랄라는 둘도 없는 친구”

랄라는 바로 내면의 상징이자 세상에 둘도 없이 진솔한 친구였다. 생명력의 근원으로 자신의 풍부한 감성과 잠재력이 모두 그 안에 숨겨져 있음을 발견했다. 이를 계기로 불안은 안정으로, 공허함은 충만함으로 넘쳐났다. 외면과 내면의 일치를 통해 새로운 자아로 거듭난 것이다. 김 씨는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는 말처럼 랄라와 함께하는 삶을 살면서 지난날 나를 괴롭혔던 불안감도 사라졌다”고 기뻐한다. 이후 김 씨는 전통미술에 기반을 두되 자신만의 독특한 화법을 계발하고, 중국에 유학해 그곳의 화풍도 도입하는 등 독창적 세계를 활짝 열어나간다. 국내 작가들과의 단체전은 물론 중국 미술인들과 교류전에도 참여했다.

“2014년 첫 개인전을 열었을 때 감회가 참 컸어요. 전시를 보시고 칭찬해주시는 분들이 많아 행복했고요. 제 마음도 예전보다 편안해짐을 느꼈습니다. 전통화법에서 이 시대에 맞는 문인화를 구현해보자는 생각으로 그림의 주제는 물론 구도와 색감을 정했지요.”

사실 그림은 김 씨에게 낯선 분야가 아니었다. 내면의 자아인 랄라를 재발견한 것처럼, 한때 타고난 적성을 보였던 재능을 다시 만난 것일 뿐이었다. 어릴 적부터 화가가 꿈이었던 그는 그림 그리기를 무척 좋아했다. 명동성당 갤러리에서 진행된 이번 인터뷰 때 보여준 석굴암 본존불의 펜화는 초등학생이 그렸으리라고는 선뜻 믿어지지 않을 만큼 정교했다.

“초등학교 4학년 무렵이었습니다. 저학년인 사촌동생의 그림 숙제를 대신 해줬는데 동생은 그 숙제로 학교에서 상을 받고 전국대회에 나갔지요. 그림에 서툰 친구들에겐 그리는 법을 직접 가르쳐주기도 했고요. 이제는 엄마가 돼 찾아온 친구들은 ‘배우보다 화가가 더 친구 현정이 같다’고 말하곤 한답니다. 저는 천성적으로 애정이 가는 사물이나 인물을 살아 있게 그려내는 데 기쁨을 느꼈어요.”

그렇다고 김 씨에게 배우와 화가가 별개로 떨어져 있지만은 않았다. 연극 ‘나비(위안부-Comfort Women)’와 그림 ‘랄라와 소녀상’에서 보듯이 둘은 하나로 손잡고 비극적 역사의 아픔을 일깨워주기도 했다.

김 씨는 2005년부터 약 3년간 ‘나비’에 출연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위안부의 통한을 잘 알지 못했으나 우연히 서울 동숭동의 대학로에 갔다가 작품에서 큰 감명을 받은 것. 이후 무대에 직접 올라 과거의 상처를 안은 채 오늘을 힘겹게 살아가는 주인공 할머니의 16살 소녀 시절과 그 할머니의 19살 손녀를 동시에 연기하는 1인 2역을 맡았다. 공연이 없을 때면 매주 열리는 일본대사관 앞 수요집회에 참여하곤 했다. 더불어 화가로서 ‘랄라와 소녀상’ 등 개량한복을 입은 모습의 위안부 할머니 작품을 2점 그렸는데, 이 중 한 점은 서울 마포에 있는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에 기증됐다.

“저서 ‘랄라의 외출’이 나온 2014년만 해도 쉰여섯 분이 생존하셨는데 그 사이에 여러분이 돌아가셔서 지금은 마흔 분 정도가 이 세상에 계십니다. 연극에 출연하고 그림을 남기는 것은 그분들의 아픔과 회한을 조금이나마 함께 나누고자 해서지요. 이는 저의 내면아이 랄라가 내준 애틋한 마음이기도 해요. 그분들이 하루바삐 명예를 되찾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작품 '마더 테레사'. 사진/임귀주 기자
작품 '마더 테레사'. 사진/임귀주 기자

◇ 자기만의 화법으로 ‘마더 테레사’ 등 그려내

이번 개인전에서 유독 눈길을 끈 작품으로는 ‘마더 테레사’를 꼽아야 할 것 같다.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을 돌보는 데 평생을 바친 ‘빈자의 성녀’ 테레사 수녀에 대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시성미사에서 “태어나지 않은 아이와 병자, 버림받은 자의 생명을 지킨 자애로운 성인”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테레사 수녀를 묘사한 김 씨의 작품은 모두 2점. 이 가운데 올해 그린 인물화에는 전작과 달리 머리 부분에 둥근 금빛 후광이 있어 이채롭다. 그는 “전시를 계획했던 지난봄부터 수녀 님의 시성을 암시하는 소식이 들려 평소에 아꼈던 금분을 마음껏 칠해 넣었다”면서 “그리는 내내 가슴에 소망을 품고 기도하는 마음이었는데 이 초상화를 보시는 모든 이에게도 은총이 가득하길 빈다”고 말한다. 김 씨의 세례명 역시 ‘테레사’여서 공교롭다 싶다.

성모 마리아를 그린 작품 ‘기도’에도 유다른 소망이 담겨 있음이 쉽게 느껴진다. 금지에 채색을 한 이 작품은 성모 마리아가 랄라를 두 손으로 보듬은 채 사랑을 가득 안겨주는 모습. 여기에는 종교의 벽을 뛰어넘어 모든 이들이 사랑으로 하나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작가의 열망이 담겼다.

이처럼 김 씨의 작품 대부분에는 두 가지 이미지가 공통으로 들어 있다. 랄라의 이미지와 잠자리의 이미지가 그것. 이들은 화가의 내면아이라는 점에서 서로 같다. 다만 랄라가 작가가 의식으로 만들어낸 내면아이라면, 잠자리는 무의식으로 그린 내면아이라고 하겠다. 둘 다 작가의 자화상이란 성격을 지닌다. 이에 대해 김 씨는 “그림은 마음의 울림이자 반영이다”라고 설명한다.

김 씨는 ‘화주수보’(畵主繡補)와 ‘쌍층’(雙層) 등의 화법으로 독특하게 그려낸다. 화주수보는 말뜻 그대로 그림을 주로 하되 자수를 중요한 부분에 넣는 것이고, 쌍층은 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비단을 붙여 수묵이 배어나오게 한 뒤 그림을 그리는 화법이다. 연극도 번역극보다 창작극이 더 감동적이듯이 그림 또한 전통에 새로운 창작성을 넣었을 때 느낌이 더욱 크다는 것이다. 특히 쌍층 화법은 자기만의 독특한 화법이어서 더 애정이 간다고 한다.

향후의 계획을 물어봤다. 그는 지금처럼 미술과 심리상담을 주축으로 하되 시간이 될 때면 배우 등 방송일도 해볼 생각이라고 말한다. 세 번째 개인전은 내년에 열 예정이다.

“철학자 니체가 그랬다고 하잖아요. ‘너 자신이 돼라’고요. 인생은 내면의 실존적 고민을 통해 자기 자신의 본성을 발견하고 완성하는 여정이라고 봐요. 내면아이 랄라가 물가에서 자신을 비춰보는 그림은 바로 이를 상징해요. 물 안 세상에는 생명이 가득합니다. 사람은 나 자신을 사랑할 때 비로소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있어요. 본성에서 멀어진 자아를 찾아 조화롭게 사랑하고 온전히 성장하고 싶습니다. 아홉 살짜리인 랄라가 그렇듯이요. 이는 그림이 제게 주는 치유와 격려의 힘이기도 합니다.”

사진/임귀주 기자
사진/임귀주 기자

id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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