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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안의 '변심'…필리핀 이어 말레이도 中에 밀착, 흔들리는 美

中, '美와 불화' 국가에 경제·군사지원 '당근'…"美의 아시아 중시정책 사실상 실패"

(하노이=연합뉴스) 김문성 특파원 =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의 외교 중심축이 중국 쪽으로 기울고 있다.

필리핀에 이어 말레이시아도 미국을 제치고 중국과 경제·군사적 협력 확대에 나서면서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가 '뜨거운 감자'인 동남아 외교무대에서 미국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아시아 중시정책이 사실상 실패했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나집 라작 말레이시아 총리가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에 이어 지난달 31일 중국을 방문한 것은 남중국해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대립 구도에서 외교적 의미가 큰 것으로 해석된다.

1일 만난 나집 라작 말레이시아 총리(왼쪽)와 리커창 중국 총리[AP=연합뉴스]
1일 만난 나집 라작 말레이시아 총리(왼쪽)와 리커창 중국 총리[AP=연합뉴스]

그동안 아세안 10개 회원국 가운데 캄보디아와 라오스가 친중 국가로 분류됐다. 나머지 회원국은 친미 또는 중립적 성향을 보여왔다.

필리핀은 대표적인 친미 국가였지만 두테르테 대통령 취임과 함께 친중으로 돌아섰다.

말레이시아는 미국과 합동군사훈련을 하는 등 군사적 연대를 맺고 있지만, 화교 자본이 경제를 쥐고 있는 현실을 고려해 중국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

나집 총리는 방중에 앞서 "중국과의 관계가 최고조에 달하고 양국 협력이 새 장에 접어들도록 노력하겠다"며 중국과의 '밀월'을 예고했다.

나집 총리의 중국 방문 기간이 일주일로 긴 데다가 양국이 국방 협력을 강화하고 130억 달러(14조9천억 원) 규모의 경제 협력에 합의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런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9월 라오스에서 열린 아세안 정상회의[AP=연합뉴스 자료사진]
9월 라오스에서 열린 아세안 정상회의[AP=연합뉴스 자료사진]

말레이시아와 필리핀 정상들이 '중국 중시정책'을 선언한 것은 자신들이 처한 국내외 정치적 역풍과 관련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나집 총리는 말레이시아 경제개발을 위해 설립한 '국부펀드' 1MDB의 자금 수십억 달러를 측근들과 함께 횡령했다는 의혹이 작년부터 불거지면서 야권과 시민단체로부터 사퇴 요구를 받는 등 정치 인생이 최대 위기를 맞았다.

현재 미국, 싱가포르, 스위스 사법당국이 자국 금융기관이나 기업들이 관련된 나집 총리의 횡령 의혹을 수사하고 있다. 나집 총리는 의혹을 부인하지만, 미국은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정치 생명에 위협을 느낀 나집 총리와 미국의 관계가 틀어지자 중국이 이 틈을 파고든 것이다.

나집 총리로서는 저유가와 원자재 가격 하락,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 등으로 타격이 우려되는 말레이시아 경기를 살리는데 중국 자본을 유치하고 이를 정치적 위기 탈출의 기회로 삼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과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AP=연합뉴스 자료사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과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AP=연합뉴스 자료사진]

앞서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지난달 20일 중국과의 정상회담에서 "양국 관계는 봄날"이라고 말했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양 국민은 형제"라고 화답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방중 기간에 미국과 경제·군사적 '결별'을 선언했다. 이에 미국이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 대니얼 러셀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를 필리핀에 급파하기도 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필리핀이 국제중재를 제기한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서 중국을 이겼지만, 판결 이행을 압박하기보다 대화를 선택했다.

최근 중국은 두테르테 대통령의 요구를 받아들여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지역인 스카보러 암초(중국명 황옌다오<黃巖島>, 필리핀명 바조데마신록) 주변에서 필리핀 어선들의 조업을 4년 만에 허용하며 양국 화해 분위기를 한층 끌어올렸다.

미 정부가 인권침해 비판을 받는 필리핀의 '마약과의 유혈전쟁'과 관련, 필리핀 경찰에 대한 소총 판매 계획을 중단한 것으로 알려지자 두테르테 대통령이 러시아 등 나라에서 사면 된다는 입장을 밝히는 등 미국과 필리핀의 거리는 멀어지고 있다.

남중국해에서 조업하는 필리핀 어선[AP=연합뉴스 자료사진]
남중국해에서 조업하는 필리핀 어선[AP=연합뉴스 자료사진]

필리핀에 이은 말레이시아의 친중 행보는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경제·군사적 패권 확장을 견제하려는 미국을 더 당혹스럽게 할 것으로 보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 입장에서는 나집 총리의 중국 방문이 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약화하는 또 다른 기회가 됐다고 평가했다.

브릿지 웰시 동남아 정치분석가는 AFP 통신에 "이제 중국이 힘을 발휘하고 미국은 퇴각하고 있다"며 미국의 아시아 중시정책이 성공할 가망이 거의 없다고 진단했다.

kms1234@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6/11/02 10:38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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