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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잃고 꿈도 잃고…외국인노동자의 부서진 '코리언 드림'

(안양=연합뉴스) 강진욱 기자 = 지난달 25일 경기도 화성외국인보호소에 수용돼 있던 우즈베키스탄 노동자 타히루 오먼(39) 씨가 스스로 목을 맸다.

다행히 다른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빨리 발견돼 목숨을 건졌지만, 그는 지금도 목 주위에 붉은 상흔을 남긴 채로 죽고 싶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다른 이주노동자들처럼 '코리언 드림'을 안고 한국 땅을 밟았을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를 돕고 있는 '아시아의 친구들'과 수원이주민센터 등에 따르면 오먼 씨는 13년 전인 2003년 산업연수생 자격으로 한국에 왔고, 경상북도 대구 인근의 모 업체에서 일자리를 얻었다.

그런데 일을 시작한 지 한 달 반이 지났을 즈음 기숙사를 청소하던 중 눈에 유리가 박히는 사고를 당했다.

기숙사 청소는 매일 당번제로 돌아가면서 해야 하는 일이었고, 정해진 날에 청소를 하지 않으면 해고를 당할 수도 있는 분위기였다.

그에게는 청소도 당연히 업무의 연장이었지만, 당시 그는 산업재해를 신청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회사의 도움으로 두 차례 수술을 받았지만 결국 오른쪽 눈의 시력을 잃었다.

그렇게 한 눈으로 2년을 일하던 그에게 회사는 2005년 금속가공 일을 배정했고, 또 금속 파편이 눈에 들어가 왼쪽 눈마저 잃을까 두려웠던 그는 업무 변경을 요청하다 해고를 당했다.

산업연수생에게 해고보다 더 무서운 일은 없다. 해고되는 순간 '미등록' 상태로 전락하고, 관계 당국이 해고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 불법체류자가 되고 단속 대상에 오르기 때문이다.

안정된 일자리를 찾지 못했던 그는 결국 불법체류자 신세로 건설 현장 등을 전전할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도 구원의 손길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구의 모 단체에서 운영하는 한국어교실을 다니던 2006년 어느 교회 '목사님 부인'의 도움으로 3년 전 한쪽 눈 실명에 대해 산업재해 보상을 신청할 수 있었다.

그러나 행운은 거기까지였다. 근로복지공단은 당시 그가 기숙사 청소 도중 다친 때가 일요일이고, 회사 관리자도 없는 상태에서 직원들끼리 임의로 청소 일을 하다 다친 것으로 업무와의 연관성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충분히 다툼의 여지가 있었고 즉시 이의신청을 했어야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이후 그는 계속 불법체류 상태에서 일자리를 찾아 떠돌았고, 그러다 2008년 1월 단속에 걸려 청주외국인보호소에 구금됐다.

구금된 지 한 달이 지날 즈음 한국실명예방재단에서 의안 수술 캠페인을 벌였고, 그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그는 수술을 받기 위해 그동안 모은 돈으로 보증금 500만원을 내고 일시 보호에서 해제됐다. 보증금을 내고 남은 돈으로 눈 수술을 받으려 했다.

그런데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고향에 계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형이 알려 온 것이다.

아버지는 26살 둘째 아들이 한국에 가자마자 한쪽 눈을 잃고, 그래도 돈 벌겠다며 일을 계속하다 '감옥'에 갔다는 말에 충격을 받아 쓰러졌고, 그가 잠시 보호소를 나올 즈음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오먼 씨는 자기 때문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장례를 위해 눈 수술을 위해 쓰려던 돈을 모두 우즈베키스탄으로 보냈다. 장례식에는 갈 수 없었다.

그는 다시 돈을 벌 욕심에 보호소에 맡겨 놓은 보증금을 포기하기로 했다.

농사를 짓는 형의 처지는 곤궁했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마당에 자신이 동생 넷을 돌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다시 불법체류자 신세가 돼 7년을 버텼지만 결국 지난해 8월 또 붙잡혔고, 화성외국인보호소에 수용됐다.

과거 자신을 도와줬던 목사 부인의 도움을 받아 처음 일했던 회사를 찾아가 장해 보상 관련 도움을 요청하던 중이었다.

이후 1년여 동안 그는 의안 수술과 장해보상 등의 이유로 네 차례나 일시 보호해제를 요청했지만 번번이 묵살됐다. 과거 보증금을 내고도 보호소로 돌아오지 않고 도망친 전례 때문이었다.

그는 죽기를 각오하고 올 4월 단식을 시작했다. 그가 단식을 중단할 기미를 보이지 않자 보호소 측은 만일의 사태를 우려해 법무부 출입국관리소에 그에 대한 일시 보호해제를 요청했지만, 관리소 측이 거절했다는 소식도 들렸다.

지난 7월부터 오먼 씨를 돕고 있는 이주민인권단체 아시아의친구들 관계자는 2일 "오먼 씨는 지금까지 6개월 넘게 단식을 계속하고 있고, 지난달 19일 면회 때는 물도 먹지 않겠다고 말했다"며 "면회 후 엿새 뒤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고, 다음날 찾아갔을 때도 계속 죽겠다는 말만 반복했다"고 말했다.

오먼 씨는 자신이 한국에서 산업재해와 장애에 대해 보상받을 권리와 치료를 받을 권리를 박탈당한 데 대한 억울함과, 장애인으로서 고국에 돌아가 가족들에게 짐이 될 수 없다는 생각에 죽을 기회만 엿보고 있다는 것이다.

출입국관리소는 언제든지 그를 추방할 수도 있지만, 산업연수생으로 온 그가 권리를 침해당했다고 주장하고 있고, 이주민단체들도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어 선뜻 그를 추방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즈벡 이주노동자 타히루 오먼 씨
우즈벡 이주노동자 타히루 오먼 씨이주민지원단체인 '아시아의친구들'의 활동가들이 화성외국인보호소에서 그를 면회할 때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전화로 통화하는 장면을 기억해 그렸다.

kjw@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6/11/02 07:0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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