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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음으로 구현된 회화, 소리로 만들어낸 드라마

발레리 게르기예프와 마린스키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

(성남=연합뉴스) 최은규 객원기자 = 굳이 무대장치가 필요치 않았다. 배우나 무용수들 역시 필요치 않았다. 단지 오케스트라의 다채로운 소리만으로도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은 우리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졌다.

금관악기의 귀를 찢는 불협화음은 원수 가문의 피맺힌 원한을 몸서리치도록 전했고 활로 현을 치는 소리는 우리를 살벌한 칼싸움의 현장으로 인도했다. 그것은 음으로 구현된 회화이자 소리로 만들어낸 드라마였다.

러시아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
러시아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성남아트센터 제공, Marco Borggreve 촬영]

지난달 31일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 무대에서 프로코피예프의 발레음악 <로미오와 줄리엣>을 비롯한 러시아 음악작품들을 선보인 게르기예프와 마린스키 오케스트라는 러시아 음악 특유의 극적인 개성을 유감없이 보여주며 관객을 사로잡았다.

'근육질'이라는 단어가 절로 떠오를 만큼 마린스키 오케스트라의 음색은 힘차고 강렬했기에 그 어떤 곡을 연주하더라도 '마린스키 사운드'로 바꾸어 놓았다.

첫 곡으로 연주된 프로코피예프의 '고전교향곡'의 경우 18세기 음악가 하이든의 고전적 스타일을 모방하고 풍자한 음악이지만, 게르기예프와 마린스키 오케스트라가 구현해낸 굵직하면서도 풍요로운 사운드는 하이든이 아니었다.

하이든 풍의 경쾌함 대신 베토벤을 연상시키는 무게와 진중함, 차이콥스키를 떠올리게 하는 풍부한 서정성에 프로코피예프 음악 특유의 신랄함이 더해져서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특별한 '고전교향곡'이 완성되었다.

대개 제1바이올린의 고음에 묻히곤 하는 비올라나 더블베이스 소리도 강한 힘을 과시하며 현악기 그룹의 소리 몸체를 풍성하게 했다.

피아니스트 손열음과 마린스키 오케스트라의 트럼펫 수석 주자의 협연으로 연주된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의 경우 오케스트라 편성이 소규모였음에도 현악기의 풍성한 소리가 다양한 색채감을 만들어내며 귀를 사로잡았다.

도입부에서부터 트럼펫의 음량 밸런스와 타이밍 감각이 매우 예리하여 감탄을 자아냈으며, 피아노의 리드미컬한 연주 역시 음악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다만 마린스키 오케스트라의 음색 자체가 기본적으로 풍부한 데다 서정적인 레가토(음과 음 사이를 이어서 연주하는 주법)에 바탕을 두고 있는 탓인지 손열음의 톡톡 튀는 연주 스타일과 잘 조화되지 않는 듯했다. 피아노의 음량 밸런스가 오케스트라에 비해 다소 약하게 느껴진 점도 아쉬움으로 남았다.

이번 공연의 백미는 무엇보다도 후반부에 연주된 프로코피예프의 발레 음악 '로미오와 줄리엣'이었다.

'로미오와 줄리엣' 가운데 주요 곡들을 모아 연주한 게르기예프와 마린스키 오케스트라는 무대장치나 발레 없이, 단지 음악만으로도 셰익스피어의 이 유명한 비극을 재현해낼 수 있음을 그 탁월한 연주로 증명해냈다.

'로미오와 줄리엣' 중 첫 곡으로 연주된 '몬태규가와 캐퓰릿가'의 도입부에서 관악기들이 급격하게 긴장감을 고조시키며 무시무시한 불협화음을 만들어내는 순간, 그 누구라도 이 불협화음이 자아내는 비극과 통렬한 메시지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젊은 처녀 줄리엣'에서는 튀어 오르듯 활기차게 표현된 현악기의 선율이 발랄한 14세 소녀 줄리엣의 생기 넘치는 에너지를 생생하게 전했다. 또 마지막 곡으로 연주된 '티볼트의 죽음'에서 팀파니의 타격이 계속되는 동안에는 마치 로미오의 칼에 맞은 티볼트가 극심한 고통 속에 신음하며 죽어가는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게르기예프와 마린스키 오케스트라는 환호하는 청중을 위해 베르디의 오페라 '운명의 힘' 서곡과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을 앙코르로 연주했다.

두 곡 모두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대표적인 관현악곡이지만 '마린스키 사운드'로 변모한 베르디와 드뷔시의 음악은 풍요롭고 광대한 느낌의 러시아 음악처럼 다가왔다.

특히 '운명의 힘' 서곡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의 메시지를 전하듯 비장하게 연주되어 프로코피예프의 '로미오와 줄리엣'에 대한 일종의 에필로그처럼 다가왔다.

독창적인 '마린스키 사운드'와 세심한 앙코르 선곡에 이르기까지, 게르기예프와 마린스키 오케스트라의 이번 내한 공연은 음악애호가들에게 큰 만족감을 안겨주었다.

herena88@naver.com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6/11/01 10:28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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