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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경숙의 시각> "참 이상한 정부"

검찰에 출두하는 최순실
검찰에 출두하는 최순실

(서울=연합뉴스) 태국에 있는 한국 교민 업체들은 몇 년에 한 번씩 사업이 잘 안 돼 홍역을 치른다. 태국 정정이 불안해 거의 주기적으로 반정부 시위와 쿠데타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정국 불안으로 폭력 사태가 발생하면 신변 안전을 우려해 태국을 방문하는 외국 관광객이 심하게 줄어든다. 한국인 방문객도 감소해 이들을 상대로 하는 교민 업체들은 매출이 격감한다. 2014년 봄에도 그랬다. 탁신 친나왓 전 총리 계열의 정부에 반대하는 시위가 반년 가까이 이어졌고, 그해 5월에는 기어이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다. 그런데 그해 교민 사회의 불황에 시위와 쿠데타보다 더 치명적인 타격을 준 것이 있었다. 태국이 아닌, 고국 한국에서 발생한 세월호 참사였다. 사회가 통째로 침울에 빠진 바람에 한국인들은 태국 정국이 안정된 뒤에도 이 나라에 놀러 오지 않았다.

세월호 충격에서 벗어날 즈음인 1년쯤 뒤 2015년 봄에는 한국에서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가 터졌다. 이번에는 태국인들을 한국으로 관광 보내는 한국계 여행사들과 항공사들이 고전했다. 두말할 것도 없이 태국인들이 한국 관광을 포기하거나 유보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경제 규모 세계 11위, 수출 세계 6위다. 한국에서 일어나는 큰 사건은 세계 경제에 직간접적으로 여파를 미치고, 해외의 교민에게도 크고 작은 영향을 준다. 선진국 문턱에 선 나라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믿기 어려웠던 세월호·메르스 사태와, 이를 수습하는 정부의 지리멸렬한 대응을 지켜보던 교민 중에는 "참 이상한 정부야. 정부가 아닌 것 같아"라고 말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이상한 정부의 징후는 2016년에도 나타났다. 정부는 대우조선해양에 국민 혈세 4조2천억 원을 지원하기로 했고, 이 중 3조5천억 원을 집행했는데도 부실은 더 심해져 추가 지원이 불가피하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관리·감독하고 있었던 이 회사가 수조 원대의 분식회계 등 경영비리로 금융권에 안긴 피해는 10조 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당국은 국내 1위, 세계 7위 선사인 한진해운의 법정관리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다 국내는 물론 세계 곳곳에서 물류 대란을 초래했다. 산업과 기업 구조조정은 원래 뼈를 깎는 듯 고통스럽고 지난하다. 그러나 천문학적인 자금을 지원하고도 부실을 걷어내지 못하고 밑 빠진 독 물붓기식으로 혈세를 투입하고, 업계 1위 해운 기업의 붕괴에 직면해서도 물류 대책을 세우지 않은 정부를 보고 국민은 입이 딱 벌어졌다. 그간 정부 정책 실패가 적지 않았지만 이처럼 시스템이 붕괴한 듯한 인상을 주지는 않았다.

전례를 찾기 어렵고,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들었던, 이런 '정부 실패'의 원인이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지금에 와서야 찾아지는 듯하다. 최근 몇 년 동안 국민이 목격했던 무능, 불통 정부는 전문성 없는 일개 사인이 인사·예산·정책을 농단하고, 있어야 할 사람이 있을 곳에 있지 않고 엉뚱한 이들이 나랏일을 주물러 빚어진 국정 난맥상의 결과였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그동안 이해하기 힘들었던 정부 실책 원인이나 배경을 설명하기 위한 퍼즐 맞추기에 마지막으로 '최순실 농단'을 끼워 넣으면 퍼즐이 완성되는 것 같다는 국민이 많다.

이국만리 타국에서 생계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교민들은 최순실 게이트로 혼돈에 빠진 조국을 바라보면서 어떤 심정일까. 한국을 선망했던 세계의 한류 팬들은 이번에 드러난 코리아의 사회·문화, 국격 수준에 얼마나 실망할까. 우리와 정치·경제 관계를 맺고 있는 국제사회, 기업, 투자자들은 한국의 국가 신인도를 다시 조정해야겠다고 벼르지는 않을까.

최고 지도자가 직접 관련된 비선 실세 농단 의혹으로 국가 시스템 붕괴, 국정 마비 조짐이 나타나고, 국민은 충격을 넘어 불안에 떨고 있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장기 경기 침체, 북한 핵위기와 도발 우려, 줄줄이 기다리고 있는 조선·해운·철강·유화 산업 구조조정, 1천200조 원을 넘는 가계부채, 언제 꺼질지 조마조마한 부동산 거품, 미국 대선 뒤 몰아칠 보호무역주의 등 대내외 악재가 쌓여 있어 더 그렇다.

최고 지도자는 국정 운영 동력을 상실했고 이를 회복할 길이 보이지 않는다. 국회와 여야 정당들은 위기를 수습할 수 있을까.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공학적 셈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국가와 국민을 앞세우기보다 정쟁에 매몰돼 있는 정치권에 해법을 맡겨도 될까. 일본에서 2011년 세계 역사상 4번째로 큰 지진이 일어나 원자력발전소가 파괴되고 해안 마을들이 초토화돼 정부와 정치권이 우왕좌왕하고 있었을 때, 일반 대중이 침착하게 질서를 유지하는 것을 보고 서방 언론들은 "이 놀라운 국민을 보라"고 찬탄했었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상상할 수 없는, 어처구니없는 국기 문란 앞에 국민은 충격받고 분노하고 수치스러워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분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는 지혜와 지성을 갖고 있을까.

국가 최고 지도자의 리더십 부족과 비선 실세 의존이 그의 임기 4년 차에 국민에게 알려졌다는 것은 정치권, 언론, 정부가 모두 반성하고 자책해야 할 일이다. 오래전부터 이를 알고 있었음에도,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애써 외면하거나 국민에게 알리지 않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도 대통령의 비정상적인 통치를 정면으로 문제 삼지 않았고, 국민은 함께 바보가 됐다. 절망의 끝에 다다르면 희망의 빛이 보인다고 했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국정 농단을 철저히 규명하는 것이 국기를 다시 세우는 출발점이고, 아직도 허술한 우리 사회의 시스템을 보완할 수 있는 열쇠다. 그 주체는 정치권이 아니라 국민이다. 정치권이 더는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지 않도록 국민이 요구하고 압박해야 한다. 그것이 위기 극복을 가능하게 하는 집단 지성이다. 우리는 전에 없이 의혹 규명과 위기 극복의 시험대에 올라 있다. 이에 성공하지 못하면 우리는 "참 이상한 국민"이 될 수도 있다. (논설위원)

ksh@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6/11/02 07:31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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