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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체제 30년> ⑭전문가 제언(끝)

"권력구조 넘어 기본권·통일·4차산업 등 폭넓은 사회적논의 필요"
"정치권 주도 개헌논의는 공감대 얻기어려워…국민의사 확인이 중요"

(서울=연합뉴스) 각계 전문가들은 내년이면 30년을 맞는 '87년 체제'의 공과를 현시점에서 다각도로 점검하고 새로운 사회환경과 시대정신을 반영한 국가의 기본 틀을 모색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또 '민주화'를 핵심 가치로 했던 87년 헌법도 시대 흐름에 맞춰 손을 봐야 할 시점이 됐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러나 정치권이 주도하는 개헌논의는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 힘들다고 지적하고, 단순히 권력구조 개편을 넘어 기본권 보장 확대와 남북통일 준비, 4차산업혁명 대비 등 사회시스템 전반을 폭넓게 다뤄야 한다고 주문했다.

<헌법·공법학>

■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87년 헌법은 가장 완벽한 헌법으로 불리지만 오랜 기간이 지나 개헌 필요성이 제기된다. 정부 형태와 대통령권한의 축소, 기본권, 통일관련 조항 등이 대표적 개헌사항이다. 5년 단임제는 대통령의 장기집권을 막기 위한 예외적 제도이지만 독재의 위험이 적어진 지금 가장 먼저 개헌의 대상으로 언급된다. 정치학자들은 의원내각제 내지 이원집정부제를, 헌법학자들은 4년 중임제 개헌을 선호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의 의사를 확인하는 작업이다. DJP(김대중+김종필)연합에 따른 의원내각제 주장도 국민 법감정에 맞지 않아 폐기되고 말았다. 충실한 여론조사는 물론 개헌과정 속에서 하나 하나 국민의 공감대를 얻어가며 개헌을 추진해야 한다.

■ 김중권 한국공법학회 회장

아무리 좋은 헌법이라도 30여 년 동안 한 조항도 개헌되지 않았다는 것은 문제다. 헌법에는 반드시 원안 그대로 지켜져야 할 조항이 있고, 반대로 시대 상황에 맞춰 시시각각 개선돼야 할 조항들이 있다. 현실을 반영한 개헌마저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은 헌법상 개헌요건이 엄격하기 때문이다. 정치적 협의가 있고 국민의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현행보다는 쉽게 개헌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정치권의 통치구조 개헌논의는 각각의 정치적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어서 국민적 공감대를 얻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소모적인 개헌논의만 되풀이될 것이다.

<외교·통일>

■ 한승주 전 외교부 장관

독일 통일의 경우 미국의 지원이 결정적이었다. 조지 H.W. 부시 행정부는 독일 통일을 반대하는 프랑스와 영국을 설득하고 소련의 부정적 입장을 적극 무마했다. 우리의 통일에도 미국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소극적인 일본을 설득하고 한국의 통일과 관련된 중국의 우려 사항을 안심시킬 수 있는 것도 미국이기 때문이다. 중국을 상대로는 한반도 통일이 중국에도 위협인 북핵 문제를 해소하는 최선의 방법이자 한·중 간 경제관계를 확대 발전시키는 길이라는 점을 설득해야 한다. 북한은 독일 통일을 역으로 교훈 삼아 전철을 밟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또 우리가 통일을 강조하는 것을 자신을 흡수하려는 위협으로 간주한다. 우리는 통일보다는 교류와 협력, 통합을 강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만 북한의 비핵화를 교류와 협력, 지원의 전제 조건으로 삼는 것이 필요하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남북대화와 국제대화를 통해 북한의 핵을 동결시키고 비핵화를 이끌어내 통일로 가야 한다. 북한이 핵을 보유하고 있다고 통일방안을 바꾼다는 것은 맞지 않는다.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노태우 정부 때 만들어지고 이후 이어져 대한민국의 통일방안을 인정받고 있다.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핵심은 남북연합 단계다. 그 단계를 거치지 않고 통일로 간다는 것은 북한 붕괴가 아니면 가능성이 없다. 다만, 남북연합 개념을 재정립해야 한다. 낮은 단계에서 높은 단계로의 점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경제>

■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 부문장

1987년 당시부터 전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와 세계화가 진행됐다. 이런 흐름이 우리처럼 개방도 높고 수출을 통한 대외 의존도 높은 나라에는 좋은 여건이었다. IMF도 개혁의 기회가 됐다. 경제 질적인 전환을 하면서 위기도 극복하고 다음 체제로 나아갈 수 있는 변화도 이뤄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후로는 크게 바뀌지 않고 있다. 산업 고도화나 경제 혁신 등 질적인 전환을 계속했어야 하는데 제대로 안 됐다. 이제 신자유주의가 끝나고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이 나오고 있다. 우리 경제가 대외개방은 매우 크지만 대내 개방은 그렇지 않다. 내부에 기득권이나 이해집단이 많다. 대내 개방 수준을 높여야 새로운 산업이 등장하고 새로운 변화가 생길 수 있다. 단기적으로 노동개혁이나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

■ 김상조 한성대 교수

한국을 둘러싼 세계 경제와 정치 질서가 변화했으나 우리는 87년 이전의 기억에 매몰돼 있었다. 87년의 경제민주화는 고도성장의 절정에 있던 시기에 만들어진 개념이다. 대표적인 것이 재벌개혁이다. 재벌의 이익을 나누고 거부할 경우 칼을 사용해 개혁하고 해체하자는 것이지만 이제는 성장이 멈췄다. 만병통치약을 제시하는 근본주의적 접근방식은 버려야 한다. 세계 경제가 저성장이 고착화되고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할 상황인데 임기 5년의 대통령이 해법을 내놓을 수는 없다. 지도자가 실현 가능한 수준의 목표를 제시하고 일관성 있게 이끌면 팔로워들이 따라야 한다. 점진주의가 필요하다.

<산업·경영>

■ 유규창 한양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87년 체제 이후 지난 30년 동안 우리는 늘 생산성을 앞세웠다. 이른바 '빠른 추종자(fast follower)' 전략이다. 이제 창조성 중심으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문제는 창조성과 그에 수반되는 다양성을 용인하지 못하는 것이다. 창조성을 북돋우면 한 방향으로 결집된 조직문화가 깨질 우려가 있다. 87년에 고정된 체제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연공서열형 인사시스템이 대표적이다. 일 중심으로 공정인사, 능력중심 인사가 돼야 한다. 경영자들의 의식 수준도 달라져야 한다. 끼리끼리 문화를 없애고 합리적 과학적 사고방식으로 바꿔야 한다.

■ 전인식 대한상공회의소 기업문화팀장

기업문화와 기업인의 의식을 바꾸지 못하면 혁신이 어렵다는 건 우리 기업계가 현재 가장 뼈저리게 절감하고 있는 문제다. 사회의 혁신, 개인의 혁신이 전제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혁신의 문제는 실타래처럼 얽혀있다. 어디서부터 풀어가야 할지 자체가 난제다. 삼성전자가 기업문화 혁신을 선언했는데 개별기업의 액션이 나타난 시발점이다. 현실적으로는 산업화 시기에 형성된 기업 마인드와 실제 산업구조 사이에 차이가 있다. 청탁금지법과 같은 외부의 충격요법이 필요하다.

< IT·미래>

■ 김진형 지능정보기술연구원(AIRI) 원장

4차산업혁명 시대에는 기존 제조업과 달리 창의력이 중요하다. 게임의 경우 부정적 사회인식 때문에 성장하지 못했고 인터넷을 이용한 새로운 서비스 역시 우리가 먼저 만들었는데도 산업화에 실패했다. 인터넷을 연결해 온·오프라인을 결합한 상품도 만들어 낼 수 있는 만큼 관련 규제를 풀고 새로운 일자리가 많이 생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국말로 쓸 수 있는 한국형 인공지능은 국가적 사명을 갖고 도와야 하며 관련 서비스도 적극 지원해야 한다.

■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

아이디어가 아무리 많아도 생산과 연구개발이 뒤따라주지 않으니 결국 미국 등 선진국에 뒤처질 수밖에 없다. 정부 지원에는 한계가 있으니 대학부터 관련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판교·상암·구로 등에 벤처 밸리가 있지만 생태계가 지속적이지 않고 정책도 계속 바뀐다. 집중투자를 통해 한 곳이라도 제대로 키워야 한다.

<문화·종교>

■ 김상근 목사(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비상시국대책회의 상임의장·제12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민주화를 핵심 가치로 하는 87년 체제에서 권력창출 구조는 민주화됐다. 그러나 민주적 절차로 창출된 국가권력이 반민주적 퇴행을 자행하는 경우 임기 중에는 이를 막을 수 없는 현실적 한계를 아프게 경험했다. 평화통일 역시 선언에 그치고 있다. 지난 30년간 남북 간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많은 노력이 있었다. 그러나 그 노력은 정전협정 현실에 부딪히면서 쉽게 깨지고 마는 유리그릇이라는 아픈 경험도 되풀이됐다. 삼권분립의 실제화, 대통령의 임기 중 반민주적 통치에 대한 민주적이고 실질적인 견제, 평화통일이라는 가치의 실제적 실현을 위한 대전환이 필요하다.

■ 김종엽 계간 창작과비평 편집위원

87년 체제를 극복하는 논의는 헌법개정의 문제라기보다는 사회적 세력관계의 재편 문제다. 30년 가까이 지나면서 자본의 힘은 엄청나게 커졌고 노동은 1987년보다 못한 상태이다. 재벌은 법을 제대로 지키도록 엄격히 하면 거의 통제할 수 있지만, 노사관계는 노동법에 대한 전향적 해석과 개정이 필요하다. 국제적 표준에 이른 노사관계와 노동자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 노사의 세력관계에 균형을 잡아줘야 헬조선 얘기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시민사회>

■ 안진걸 참여연대 공동사무처장

87년 체제에 대한 극복 담론은 한국 사회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돼야 한다는 긍정적인 담론으로 볼 수 있다. 그 방향은 절차적 민주주의를 넘어 사회적·경제적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것이다. 정치권에서 4년 중임제, 의원내각제, 이원집정부제 등의 이야기가 나오지만 이는 국민과 동떨어진 '그들만의 리그'다. 국민이 87년 체제 극복 담론에서 원하는 것은 정치공학적인 것이 아니라 국민으로서의 기본권과 발언권, 생존권, 사회적 권리가 강화하는 것이다.

■ 박주희 바른사회시민회의 사회실장

87년 당시에는 정부의 일방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국민의 목소리를 듣는 민주주의를 추구했지만 지금은 과잉 민주주의다. 최근 집회·시위나 노조 사태를 보면 떼로 몰려하는 주장을 무조건 민주주의로 포장한다는 생각이 든다. 87년 당시 청년층과 지금의 청년층은 다르다. 젊은 층에서 변화·발전·개혁하는 움직임이 나와야 하지만 지금의 청년들은 일자리 고민이 많아서 사회에 대한 관심을 전혀 기울일 수 없다. 당시 변혁을 이뤄낸 50대나 지금의 청년이 균형을 맞추면서 함께 고민하고 같이 호흡하는 분위기가 됐으면 한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6/10/30 09:0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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