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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에 이틀 쉽니다" 홀로 학교 지키는 70대 당직기사

송고시간2016-10-27 07:03

경기 학교 96% '나홀로 당직' 격무 …4곳 중 1곳은 기본시급 미달

"갑에게 유리한 근로계약서 알면서도 서명…잘릴까 봐 불평 못 해"

(수원=연합뉴스) 이영주 기자 = 경기도 한 초등학교 학교경비(당직 기사)로 근무 중인 A(79)씨는 시청 공무원 출신이다. 정년퇴직 후 재취업 직장을 알아보던 중 구인 전단에서 우연히 발견한 학교경비 모집에 응해 이 일을 시작한 지가 어언 5년이 넘었다.

교직원이 모두 퇴근하고 난 뒤 학교 건물 출입문을 잠그는 당직기사

교직원이 모두 퇴근하고 난 뒤 학교 건물 출입문을 잠그는 당직기사

그의 일과는 교직원이 퇴근하는 오후 4시30분 학교로 출근하는 것으로 시작해 이튿날 오전 8시30분에 퇴근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학교 본관 1층에 있는 당직실이 그의 사무실이다.

오후 7시가 되면 학교 건물을 비롯한 정문 후문을 모두 걸어 잠가 외부인 출입을 막는다. 오후 10시가 되면 무인경비를 작동하고 혹시 모를 때를 대비해 학교 건물을 순찰하거나 당직실 책상에 있는 여러 대의 CCTV 화면을 살핀다.

언제 올지 모르는 비상 전화나 외부 침입에 대비해 잠잘 때에도 신경을 바짝 세워야 한다.

날이 어두워지면 운동장으로 모여드는 소위 '비행청소년'의 선도도 비공식적 업무가 됐다.

그는 "처음 이 학교에 왔을 때만 해도 날이 어두워지면 학교 운동장 구석에 중고등학생들이 모여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곤 했다. 내가 직접 파출소에 순찰을 요청해 다시는 이런 문제가 생기지 않게 했다"는 자랑을 늘어놓았다.

이어 "내가 근무하던 중 무슨 일이 생기면 모두 내 책임이라고 생각하며 일한다"며 "내 나름대로 기준을 갖고 일하다 보니 질서가 생겼고, 어느새 교장이 3번이나 바뀌었다"고 뿌듯해했다.

그러나 어려운 점을 묻는 질문엔 학교 경비로서의 책임감으로 반짝거리던 A씨의 눈이 한순간 어두워졌다.

그는 "한 달에 이틀, 그러니까 딱 두 번 쉰다"며 "그날을 제외하고는 매일 나와야 하는 게 힘들다. 괜히 '불평 많은 사람'이라고 찍혀 직장을 잃을까 봐 이런 고충은 말도 못한다"고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한달에 이틀 쉽니다" 홀로 학교 지키는 70대 당직기사 - 2

월급도 턱없이 부족하다고 했다.

A씨는 "한 달에 받는 돈이 100만원 남짓이다. 직급도 없고 호봉도 없다. 야간근무나 공휴일에 대한 수당도 없다"며 "많은 돈을 달라는 게 아니라 일한 만큼은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조금 섭섭한 마음"이라고 하소연했다.

계약관계에 대한 불만도 털어놓았다.

그는 "학교와 근로자가 직접 계약하는 게 아니라 중간에 용역업체가 끼어 있다. 학교는 용역업체에 내 임금을 주고, 용역업체는 일정 수수료를 떼고 나에게 돈을 주는 것 같다"고도 했다.

이어 "나같이 나이 많은 사람들이 경비 말고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느냐"며 "봉급이 낮아도 불평 못 하고 갑에게 유리한 근로계약서에 서명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약점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기도 내 학교경비 상당수가 A씨와 같은 열악한 조건에 놓여있다.

27일 경기도교육청이 파악한 '2016년 당직 기사 채용 및 근로조건 현황' 자료를 보면 고용노동부가 제시한 위탁경비 근로자 기본 시급(단순노무 종사원 시급×수의계약 낙착률) 7천203원에 미달하는 학교는 1천934개 학교 중 489곳(25%)에 달한다.

이 가운데 6곳은 올해 최저 시급 6천30원을 겨우 충족했다.

또 전체 학교 중 대부분인 96%에서 당직 기사들이 대체 근로자가 없는 '나 홀로 근무'로 격무에 시달리고 있다. 게다가 경비 10명 중 7명은 70세 이상 고령이다.

하루 15시간 야간 당직 학교경비원...산재 인정 못받아(CG)
하루 15시간 야간 당직 학교경비원...산재 인정 못받아(CG)

[연합뉴스TV 제공]

이들 대부분 '월 2회 휴무'로 근무하고 있으며, 그나마 사정이 좋은 경우는 '월 4회 휴무' 또는 재단이 같은 이웃한 학교경비와 '격일 근무' 정도다.

학교의 위탁용역 계약을 지도, 감독하는 경기도교육청은 "근로 시간이나 형태 등이 근로기준법에는 어긋나지 않아 계약관계에 문제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도교육청 재무담당관 한 관계자는 "학교경비는 현행 근로기준법 제63조 '감시 또는 단속적 근로에 종사하는 자'에 해당해 주 40시간, 하루 8시간 근무 지침 등 일반 근로자에게 적용되는 근로기준 제외대상"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고용노동부가 제시한 위탁경비 근로자의 기본급 기준이나 휴게시간 기준 등은 따라야 하는 게 순리"라며 "현장점검을 통해 이 기준에 미달하는 학교에 대해선 시정조치 하도록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나홀로 근무' 등 고용 형태에 대해서는 "2명 이상 경비를 두려면 결국 인건비 부담이 2배로 늘어나는 것인데, 매년 운영비 부족에 시달리는 학교들이 경비 여러 명을 채용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라며 "용역업체와 근로자 간 계약관계 부분은 우리가 관여할 권한이 없다"고 말했다.

young86@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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