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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체제 30년> ①87년체제의 명암...미래향한 보완과 혁신 나서야

송고시간2016-10-24 09:00

헌정사에 남긴 기념비적 의미 결코 퇴색될수 없어…발전적 계승 필요

정치·경제·사회·문화 각 분야 '지난 30년' 점검하고 개혁 공론화할 시점

<임기내 개헌> 헌법 30년만에 시대에 맞게 바뀌나?
<임기내 개헌> 헌법 30년만에 시대에 맞게 바뀌나?

(서울=연합뉴스) 황광모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임기내 개헌을 밝힌 24일 오후 국회 본청 내 대한민국 헌법 전문 동판의 모습.

<※ 편집자주 = 오는 27일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하는 제9차 개헌안이 국민투표로 확정된 지 꼭 29년이 된다. 내년이면 꺾어지는 30년, 한 세대(世代)가 지나는 역사적 분기점이 된다.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의 산물로서 국민의 지지속에 탄생한 이른바 '87년 체제'는 우리 사회의민주화 성취라는 시대적 요청에 충분히 부응했다. 그 정치사적 의미도 크다.

하지만 그 사이 우리에게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전 분야에 걸쳐 많은 변화가 일어났고. '87년 체제'가 이런 다기화된 변화상과 시대정신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평가 속에 미래세대를 향한 점검과 보완, 새로운 도전과 혁신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이에 연합뉴스는 각 분야에 걸쳐 87년 체제의 공과와 그 한계를 짚어보고 이를 극복해 가는 비전을 모색하는 기획물을 매일 2회씩, 총 14회내보낸다.>

<87년체제 30년> ①87년체제의 명암...미래향한 보완과 혁신 나서야 - 1

(서울=연합뉴스) 노효동 기자 = 『대통령 직선제를 내용으로 한 제6공화국 헌법이 확정됐다. 이에 따라 집권자의 자의(恣意)에 의해 굴절만 거듭해왔던 헌법은 헌정사상 40년 만에 처음으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국민적 합의로 고쳐짐으로써 정통성도 회복했다』

1987년 10월 27일 제9차 개헌안이 국민의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된 직후 연합뉴스가 타전한 해설기사의 첫 대목이다.

"대통령을 내 손으로 뽑아야 한다"는 국민적 열망을 반영한 새 '권리장전'을, 그것도 헌정사상 초유의 여야합의로 만들어낸 데 대한 감격과 자긍심이 묻어난다.

이렇듯 6월 민주화 항쟁의 찬란한 결과물로 기록된 87년 헌법은 그러나 한 세대를 지나가는 지금 '헌' 법이 된 듯한 느낌이다.

세기(世紀)의 전환 속에서 '상전벽해'에 가까웠던 우리 사회의 시대적 변화상을 담아내기에는 너무 '낡은 틀'이 아니냐는 문제의식도 없지 않다.

이제는 더 이상 군부독재의 장기집권을 청산하자는 식의 시대정신을 정치영역에서 찾기 힘들다. 군정이 종식되고 5년 단임제가 도입된 이후 에는 대통령의 '임기'가 아니라 '권력집중'이 문제가 되고 있다. 대통령 1인에게 쏠린 권한을 분산하고 협치(協治)를 하라는 민심도 결코 가벼이 할 수 없다.

강산이 세 번 바뀌는 동안 경제 역시 지축이 흔들렸다. 고도성장기가 막을 내리고 저출산·고령화 추세 속에서 저성장과 양극화가 구조화되고 있다. 소득 3만 불 시대를 앞두고 도전과 혁신의 패러다임을 구축하지 않고는 선진국 문턱에서 좌초할 수 있는 위기국면이다. 인공지능(AI)으로 상징되는 4차 산업혁명은 기존 제조업 틀에서 벗어나 고도의 창의력과 규제 혁파를 요구하고 있다.

사회의 내부갈등은 급격한 속도로 다원화·복합화하고 있다. 노동과 복지, 병역, 환경, 성(性), 인권 등 각 영역에서 '판도라의 상자'처럼 켜켜이 퇴적된 갈등과 요구가 분출하고 있다. 덩달아 무책임한 떼쓰기, '갑질', 찌라시, 괴담 등 저급한 문화현상까지 등장하며 기존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다. 87년 헌법이 미처 상정하지 못한 시대적 상황이다.

큰 틀에서 보면 지난 30년 가까이 정치와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를 규율해온 헌정 질서인 이른바 '87년 체제'에 대한 보완적 계승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87년 체제가 우리 헌정사에 남긴 기념비적 의미는 결코 퇴색될 수 없다. 군부독재의 장기집권을 저지해야 한다는 시대정신에 따라 국민의 힘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해낸 것은 우리 민주주의 발전사의 빛나는 금자탑이다. 5년 대통령 단임제와 소(小) 선거구제, 대통령의 국회해산권 폐지, 국정감사 등 절차적 민주주의 구현에 필요한 기본요건을 갖췄다.

경제와 사회영역에도 의미 있는 주춧돌이 놓였다. 경제균형 발전과 소득 적정분배와 함께 '경제민주화' 개념이 명문화됐고 언론자유 보장, 최저임금제, 구속적부심 등 국민 기본권 신장과 사법부의 독립성 보장, 헌법재판소 설치 등의 제도적 장치가 마련됐다.

그러나 87년 체제는 장기집권을 막는데 치중한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어서 태생적 한계가 있었다. '절차적 민주화'에는 성공했지만 '내용적 민주화'를 갖추기에는 충분치 못한 과도기적 성격이었던 셈이다.

87년 헌법의 핵심인 '직선제에 의한 5년 단임 대통령제'는 5공 청산을 비롯한 각종 부조리 척결과 제도적 개혁, 환란위기 극복과정에서 분명한 순기능을 발휘해온 게 사실이다. 그러나 대통령에게 과도하게 힘이 집중된 통치시스템은 각종 부작용을 일으키며 오히려 민주주의의 성숙을 저해하는 걸림돌로 작용해왔다는 의견도 나온다. "제왕적 대통령으로 시작해 식물 대통령으로 임기를 끝낸다"는 말이 나올 만큼 임기 내내 롤러코스터식 국정운영 난맥상이 되풀이돼왔다.

'승자독식제'에 기반을 둔 5년 단임 대통령제는 국회를 '저주의 대결장'으로 만들고 있다. 청와대와 수직관계에 놓인 여당과 정권교체에 목을 맨 야당이 대권(大權)을 놓고 사생결단식 대결과 정쟁을 벌이는 것은 일상이 됐다.

대통령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인치(人治)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고 권력분점, 특히 협치의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는 컨센서스가 정치권에 형성돼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원집정부제와 내각제 등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 또는 견제하는데 초점을 맞춘 권력구조 개편 논의가 무성하게 등장한 것은 이런 맥락이다. 87년 체제의 또 다른 폐해인 지역주의 청산을 위해 행정구역과 선거구역 개편을 서둘러 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경제영역에서는 경제민주화가 87년 헌법에 최초로 도입됐지만 아직 '선언적 문구'에 그치고 있다. 성장 주도형 패러다임을 보완하는 차원을 넘어 지속가능한 성장을 목표로 실질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게 관건이다. '기계적·정량적 평등'을 넘어 경제력 집중해소와 공정경쟁, 동반성장이 중심개념이 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87년 당시의 사회적 가치체계와 패러다임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사회·경제적 의제들도 즐비하다. 북한 정권의 불안정성으로 인해 언제 닥쳐올지 모를 '통일 한국'에 대비한 법적 체계와 제도를 준비해나가는 것은 생존과 직결된 당면과제다. 디지털 시대에 따른 정보 인권과 소비자기본권, 생명권 등 국민기본권 확충과 지방자치 분권, 새로운 노사관계 확립을 비롯한 시민의식의 선진화 등도 '성숙한 대한민국'으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짚어봐야 할 화두다.

이렇게 볼 때 시대적 흐름을 뒤따라가지 못하는 '87년 체제'를 넘어 국가시스템 전반을 다시 들여다보고 급변한 사회환경과 시대정신에 맞춰 새로운 틀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그렇다고 87년 체제가 '시대적 소임'을 다한 것은 결코 아니다. 87년 헌법은 당장 고치기보다 오히려 우리 정치권이 소중히 가꿔나가야 할 '미완(未完)의 헌법'이라는 시각이 엄존한다. 제왕적 대통령제 논란도 결국 '사람'의 문제이지 '제도'의 문제는 아니라는 지적도 귀 기울일만하다. 지금의 개헌논의 자체가 국민 정서와는 유리된 정치공학적 담론이라는 회의론 역시 나온다.

하지만 역사의 한 굽이를 맞는 시점에서 각 분야에 걸쳐 87년 체제의 공과를 진지하게 되돌아보고 새로운 국가의 틀을 모색하는 노력을 마냥 미룰 수만은 없어 보인다. 그 연장선에서 사회변화와 시대정신을 반영한 '살아있는 헌법'을 만들어내기 위한 논의도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나 '포스트 87년 체제' 논의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정치권이 아니라 국민이어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이데올로기와 진영 논리, 내년 대선을 겨냥한 당리당략에서 벗어나 국민이 주도하는 공론화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 87년 체제가 최초로 국민의 힘으로 연 시대였던 만큼 '포스트 87년 체제' 역시 국민의 몫이기 때문이다.

rh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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