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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추억' 30년> ③ 더 이상 '연쇄살인'은 없다

송고시간2016-10-21 07:30

화성 사건 '증거없이 자백 강요' 원시적 수사에 용의자 3명 사망

과학수사 진화 계기…"살인범은 반드시 잡힌다" 최근 검거율 100%

(화성=연합뉴스) 기획취재팀 = 71년 경찰 사상 오욕의 역사로 남은 화성 연쇄살인사건은 당시 미천한 과학수사 수준을 여실히 보여줬다.

미흡한 초동조치, 증거없는 자백강요, 용의자 폭행과 고문 등 지금의 경찰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원시적인 방식으로 수사하다 범인 검거의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경찰 내부에서도 흘러나온다.

다만 화성 연쇄 살인사건을 겪으면서 경찰의 과학수사 기법은 눈에 띄게 발전해 8차 사건 때는 국내 최초로 DNA 분석기법이 도입되기도 했다.

9차 사건 범인으로 지목됐다 풀려난 10대[자료사진]
9차 사건 범인으로 지목됐다 풀려난 10대[자료사진]

1990년 12월 9차 사건 김모(13)양 살해 피의자로 검거됐다가 증거부족으로 풀려난 윤모(19)군이 현장검증을 하고 있다. 윤군은 경찰 강압에 못이겨 자백했으나 검찰에서 자백을 번복했고, 증거도 없어 풀려났다.[연합뉴스 자료사진]

지금은 '살인범은 반드시 잡힌다'는 속설이 생길 정도로 수사기법이 진화,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연쇄 살인은 더 이상 국내에서 발생하지 못할 것이라고 경찰은 자신한다.

◇ 동원 경찰 200만명, 수사대상자 2만여명…단일 사건 최고 기록

1986년 10월 박모(당시 25세·여·2차)씨 살인사건이 발생한 직후 경찰은 화성경찰서에 수사본부를 구성하고 수사에 나섰다.

하지만 2개월여 아무런 진척이 없던 중 같은 해 12월 이모(당시 23세·여·4차)씨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이듬해 1월 경찰은 화성경찰서에 있던 수사본부를 경기지방경찰청 단위로 격상하면서 86년 9월 15일 발생한 이모(당시 71세·여·1차)씨 피살사건을 1차 사건으로 분류하고, 박씨 사건을 2차, 이씨 사건을 3차 사건으로 조정했다.

그러나 86년 12월 실종된 권모(당시 24세·여·3차)씨 시신이 87년 4월 발견되면서, 3∼4차 살인사건은 다시 조정됐다.

지방청 단위의 수사본부가 꾸려지면서 수사는 활기를 띠었지만, 번번이 용의자 검거에 실패했다.

원시적인 수사기법 탓에 현장도 제대로 보존되지 않았고, 제대로 된 증거도 거의 없었다.

우범자나 동종 전과자를 잡아들여 폭행해 자백을 유도하는 방식이 주를 이뤘다.

그사이 엉뚱한 용의자를 검거해 고문, 강제 자백을 받아내는 일이 수차례 발생했다.

자살 기도한 죄없는 용의자
자살 기도한 죄없는 용의자

1993년 화성 연쇄살인사건 범인으로 지목돼 고문을 받고 풀려난 김모씨가 자살을 기도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용의자로 몰린 남성 3명이 자살을 하거나 고문 후유증 등으로 숨졌고, 수사팀 형사가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비보도 있었다.

범인이 경찰 수사를 비웃기라도 하듯 사건은 91년까지 끊이지 않고 일어났다.

화성 연쇄 살인사건에 동원된 경찰은 연인원 200만여명으로 현재까지도 단일사건 최다 동원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화성사건과 관련해 경찰의 수사를 받은 대상자만 2만여명에 달했고, 지문대조 수사 4만여명, DNA 분석 600여명, 모발 감정수사 180여명 등이 용의선상에 올랐다.

경찰은 모방범죄로 밝혀진 8차 사건에서 모발 중성자 분석법을 수사 사상 처음 적용, 음모에 특정 중금속 성분이 많이 함유됐음을 확인하고 용의자 직업군을 압축해 용접공인 범인을 검거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치안본부장 화성 현장 방문
치안본부장 화성 현장 방문

1988년 12월 조종석 당시 치안본부장이 화성 사건 수사본부를 찾았다.[연합뉴스 자료사진]

또 9차와 10차 사건은 일본에 범인 정액의 DNA 감식을 의뢰하는 등 화성 연쇄 살인사건 수사를 계기로 우리나라 과학수사 기법도 함께 발전했다.

그러나 10년 넘게 여전히 수사에 진척이 없자, 지방청 단위이던 수사본부는 96년 화성경찰서 단위로 격하됐다.

명맥만 유지한 채 성폭력 용의자 DNA 대조만 해오던 전담수사팀은 2006년 4월 10차 사건 공소시효 만료를 기점으로 해체됐다.

공소시효 만료
공소시효 만료

2006년 마지막 사건 공소시효가 만료된 화성 연쇄살인 사건 파일.[연합뉴스 자료사진]

당시 수사에 참여한 한 전직 형사는 "화성 연쇄 살인사건은 유족들에게 면목이 없는 사건이었다"며 "여러 피해자 시신을 직접 손으로 거두면서 피해자와 가족의 한을 풀어드리지 못한 것 같아 아직도 죄송하다"고 말했다.

◇ '경찰 오욕의 역사', 과학수사 진화 계기로

"살인은 몰라도 '연쇄살인'은 이제 국어사전에서 사라져야 할 단어입니다."

"화성 연쇄 살인사건이 10년만 늦게 발생했어도, 미제로 남진 않았을 겁니다."

현직 형사들의 말이다.

유족에겐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로, 지역 주민에겐 아직도 공포로, 경찰에겐 오욕의 역사로 남은 화성 연쇄살인사건은 수사기법에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온 계기가 됐다.

증거수집하는 과학수사요원[자료사진]
증거수집하는 과학수사요원[자료사진]

88년 처음 도입된 DNA 분석기법은 날로 진화해 이젠 미세한 흔적만으로도 범인을 검거하는 사례는 부지기수다.

치안환경이 불안했던 사건 발생 주변에는 CC(폐쇄회로)TV가 수천 대 설치돼 살인범은 반드시 검거된다는 속설까지 남겼다.

경기도에서 발생한 살인사건 가운데 경찰 과학수사가 빛을 발한 사건은 단연 '육절기 살인사건'을 꼽을 수 있다.

지난해 2월 4일 경기도 화성시 정남면에서는 A(67·여)씨가 돌연 행방불명됐다.

용의자인 세입자 B(59)씨는 자택을 수색하겠다던 경찰의 요청을 받고는 수색을 3시간여 앞둔 9일 오후 3시께 집에 불을 질렀고, A씨 시신조차 찾지 못한 상황에서 유일한 단서였던 B씨의 셋방은 방화로 인해 증거가 대부분 인멸됐다.

경찰은 다음날 B씨를 방화혐의로 일단 구속한 뒤 이 사건을 '시신없는 살인사건'으로 규정하고 증거수집에 나섰다.

'모르쇠'로 일관하는 B씨와의 끈질긴 두뇌싸움은 결국 과학수사를 활용한 경찰의 승리로 끝났다.

경찰은 CCTV 영상을 확보해 B씨의 행적을 좇던 중 그가 몰고 다니던 화물차 짐칸에 실려있던 육중한 물체가 어느 순간 사라진 사실을 확인했다.

이것은 정육점에서 소나 돼지의 뼈를 자를 때 쓰는 육절기였다.

그는 A씨가 사라지기 며칠 전 육절기를 중고로 산 뒤 10일여 만에 수원의 한 고물상 앞에 버렸고 톱날은 따로 빼내 의왕시 청계산에 버렸다.

육절기와 톱날을 수거해 정밀감정한 경찰은 그 안에 남겨져 있던 피해자 A씨의 인체조직을 찾아내 B씨가 A씨를 살해한 뒤 육절기로 시신을 훼손해 유기한 사실을 밝혀냈다.

B씨는 올 2월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현재까지 경기도에선 2011년 7월 부천시 오정구 야산에서 발견된 여성 변사체 사건 이후 살인 미제사건은 단 한 건도 없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 국내에서 발생한 연쇄살인사건은 강호순(2005∼2008년) 사건 이후 단 한 건도 없는 상태"라며 "앞으로도 살인사건은 사라지지 않겠지만, 연쇄살인은 더 이상 없을 거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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