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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추억' 30년> ① 아직도 끝나지 않은 공포

송고시간2016-10-21 07:30

86년9월∼91년4월 화성일대 여성 10명 연쇄피살 '악몽'

"천지개벽할 정도로 변했지만 아직 그때 공포에 몸서리"

<※ 편집자주 = 전국을 충격에 빠트린 화성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한 지 올해로 30년이 됐습니다. '세계 100대 살인사건'에 포함될 정도로 잔혹했던 이 사건은 공소시효가 이미 만료됐지만, 피해자 가족이나 지역 주민들에겐 아직도 잊히지 않은 상처이자 공포로 남아 있습니다. 연쇄살인사건을 계기로 경찰은 치안환경을 개선하고, 처음으로 DNA 분석 등 과학수사 기법을 도입하는 등 긍정적인 변화도 있었습니다. 이에 연합뉴스는 30년 사이 상전벽해처럼 변한 화성 연쇄살인 사건 현장을 찾아 아직도 30년전 공포에 몸서리치는 현지 주민과 당시 수사관의 증언을 들어보고,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의 전모, 이 사건이 우리 사회에 남긴 것은 무언인지 등을 3꼭지로 나눠 짚어봅니다.>

(화성=연합뉴스) 기획취재팀 = 1986년 10월 23일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현 화성시 진안동) 한 농수로에서 박모(당시 25세·여·2차)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단순 살인사건으로 보고 수사에 착수했지만 사건은 곧 난항에 부닥쳤다. 그리고 2개월여 뒤 인근에서 이모(당시 23세·여·4차)씨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화성 연쇄살인사건'이라는 명칭이 처음 붙여졌다.

당시엔 이 사건이 무려 5년에 걸친 잔인한 살인극의 서막이 될지 아무도 몰랐다.

이듬해 1월 경찰이 86년 9월 15일 있었던 이모(당시 71세·여·1차)씨 살인사건도 동일범 소행일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뒤늦게 1차 사건으로 분류하면서, 박모씨는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2차피해자로 공식 발표됐다.

20대 여성 2명이 살해된 2건의 살인사건과 달리 이씨(1차) 사건은 피해자가 노령이어서 연쇄살인은 아닐거란 판단 때문이었는데 경찰 내부에선 현재까지도 이견이 많은 부분이다.

이로 인해 일각에선 10월 23일을 화성 연쇄살인 첫 사건 발생일로, 박씨를 첫 희생자로 기억하고 있다.

수사본부가 작성한 몽타주(자료사진)
수사본부가 작성한 몽타주(자료사진)

◇ 범인은 누구일까…풀리지 않은 연쇄살인 '미스터리'

86년 9월부터 91년 4월까지 경기 화성 일대 반경 3㎞ 내에서 부녀자 10명이 살해된 끔찍한 사건의 범인은 여전히 잡히지 않았다.

3차 사건 피해자 시신발견
3차 사건 피해자 시신발견

3차 피해자 권모(25·여)씨가 실종된 지 4개월여 만인 87년 4월 24일 3차 사건 현장(사망일시 86년 12월 12일).[연합뉴스 자료사진]

첫 사건 이후 30년이 흐른 채 10년 전 마지막 사건 공소시효마저 만료돼 연쇄 살인 '미스터리'는 영원한 미제로 남았다.

1986년 9월 15일 오전 6시 20분께 태안읍 안녕리 목초지에서 귀가하던 이씨(1차)씨가 목이 졸려 숨졌다.

한 달여 뒤인 10월 20일 오후 10시께 태안읍 진안리 농수로에서 박씨(2차)가 성폭행당한 뒤 살해됐으며 이후 12월 12일과 14일 2차례 더 태안읍과 정남면 일대에서 20대 여성 2명이 같은 방법으로 살해됐다.

이어 87년 1월 10일 홍모(당시 18세·여·5차)양, 5월 2일 박모(당시 30세·여·6차)씨, 88년 9월 7일 안모(당시 52세·여·7차)씨, 90년 11월 15일 김모(당시 13세·여·9차)양, 91년 4월 3일 권모(당시 69세·여·10차)씨가 잇따라 희생됐다.

88년 9월 16일 발생한 박모(당시 13세·여·8차)양 살인사건은 모방범죄로 판명났고, 피의자도 검거됐다.

8차 사건을 제외한 나머지 9건은 10차 사건이 2006년 4월 2일 공소시효가 만료되면서 모두 미제로 남았다.

9차 사건 현장
9차 사건 현장

1990년 11월 15일 숨진 9차 사건 피해자 김모(19·여)양이 발견된 사건 현장.[연합뉴스 자료사진]

4차 사건이 발생하기 보름 전인 86년 11월 30일 오후 9시께 교회에 가기 위해 논길을 지나던 김모(당시 45세·여)씨가 흉기를 든 남자에게 성폭행당한 뒤 이 남자가 가방을 뒤지는 사이 가까스로 도주해 목숨을 건진 사건이 있었다.

범인은 양말을 벗겨 양손을 묶었으며 속옷으로 재갈을 물리고 얼굴을 덮는 등 연쇄 살인사건과 범행 수법이 유사했다.

경찰은 이 사건이 연쇄 살인사건의 범인이 실패한 범행으로 봤다.

김씨의 진술로 미뤄 용의자는 단독범이고 나이는 20대 중반으로 키 165∼170㎝에 호리호리한 몸매였다.

이는 팔탄면 7차 사건 당시 범인으로 추정되는 남자를 버스에 태웠던 운전사의 진술과 거의 일치한다.

4, 5, 9, 10차 사건 범인의 정액과 혈흔, 모발 등을 통해 확인한 범인의 혈액형은 B형이었다.

9차와 10차 사건의 범인 DNA가 확인됐는데 두 DNA가 달라 10차 사건은 모방범죄일 수 있다고 경찰은 추정하고 있다.

범행의 잔혹성, 계속성 등을 고려할 때 경찰은 범죄를 저지르고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사이코패스' 성향의 인물인 것으로 보고 있다.

◇ 30년 세월에도 떨치지 못한 '살인의 공포'

"그때 그 친구가 마중만 나가지 않았어도 목숨을 잃지 않았을텐데…"

18일 경기도 화성시 진안동(옛 태안읍 진안리)에서 만난 6차 사건 피해자 박모(당시 30세·여)씨의 이웃이었다던 A(56·여)씨는 30년 전 그날을 떠올리며 몸서리쳤다.

30년 전 그곳
30년 전 그곳

(화성=연합뉴스) 강영훈 기자 = 지난 18일 오후 경기도 화성시 진안동 화성연쇄살인 6차 사건이 발생한 마을에서 한 주민이 시신 발견 장소를 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30년 전인 지난 1987년 5월 이 인근 야산에서 박모(30·여)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박씨는 시신으로 발견되기 일주일 전 비가 내리자 남편을 마중나갔다가 실종돼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이 마을에 살던 박씨는 1987년 5월 2일 오후 11시께 비가 내리자 남편을 마중하기 위해 우산을 챙겨 집을 나섰다가 실종됐다. 박씨는 일주일 뒤 인근 야산에서 솔가지에 덮여 숨진 채 발견됐다.

A씨는 "박씨가 도로 옆 버스정류장에서 우산을 들고 남편을 기다리는 모습을 봤다는 주민이 있었다"며 "사건 며칠 전 꿈자리가 나빴다는 얘기를 듣고 '안 좋은 꿈을 꿨네'라고 말했는데 사흘 만에 살해됐다"고 끔찍했던 기억을 되살렸다.

박씨가 남편을 마중 가던 길은 이제 그날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변해버렸다.

범인이 숨어있었을 것으로 추정된 옥수수밭이나 시신을 끌고 건너간 논에는 주택이 들어섰고, 시신이 발견된 야산은 아파트 단지로 채워졌다.

당시를 기억하는 주민들도 박씨의 시신 발견 지점이 정확히 어딘지 헷갈릴 정도다.

화성 연쇄살인 초기 첫 사건으로 집계된 2차 사건 발생장소도 이젠 천지가 개벽한 것처럼 바뀌었다.

6차 사건 현장에서 직선거리로 1㎞ 가량 떨어진 농수로는 또 다른 박모(당시 25세·여·2차)씨의 시신이 알몸 상태로 발견된 곳이다.

이젠 농수로의 기능조차 상실한 채 썩은 물만 잔뜩 고여 있었다.

30년 전 그곳
30년 전 그곳

(화성=연합뉴스) 강영훈 기자 = 지난 18일 오후 찾은 경기도 화성시 진안동 복합행정타운 공사 현장 인근 농수로는 더 이상 농수로의 기능을 하지 못한 채 썩은 물만 잔뜩 고여 있다. 이 농수로에서는 화성연쇄살인 2차 사건의 피해자인 박모(25·여)씨의 시신이 나체상태로 발견됐다.

농수로 옆 펜스 안쪽은 복합행정타운 공사 현장으로 개발이 한창이다.

그나마 도로 건너 듬성듬성 보이는 황금 들녘만이 이곳이 고요했던 시골 마을이었음을 짐작케 했다.

주민 B(82·여)씨는 "지금이야 아파트도 들어서고, 상가도 들어섰지만 옛날에는 온통 논밭이었다"며 "당시에는 양쪽에 소나무가 심어진 길이 주민들이 다니는 유일한 길이었고 가로등조차 없는 시골이었다"고 전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 강산이 바뀌어도 세 번이나 바뀌었을 시간이 흘렀지만 주민들은 여전히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공포를 떨치지 못한다.

사건을 세세히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비오는 날에는 밖에 나가지 말아야 한다', '빨간 옷을 입으면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소문이 무성했던 옛 '추억' 만큼은 모두가 똑똑히 기억한다고 입을 모은다.

피해자는 모두 여성이었지만, 연쇄 살인사건이 한창이던 수년간 남성들도 못지않은 고초를 겪었다고 한다.

86년 정남면 소재 골재채취장에서 일한 C(57)씨는 "지인 중에는 밤에 돌아다니다 경찰 눈에 띄어 경찰서로 끌려가 고초를 겪은 사람도 있다"며 "이로 인해 해가 지면 시내 다방에는 파리만 날렸다"고 회상했다.

이어 "일하던 동료의 여동생도 사건의 피해자여서 동네 사람들이 모두 찾아 나선 기억도 난다"며 "벌써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 그때만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로 무섭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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