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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이야기> 오순희 "'파우스트'엔 인간 향한 모든 질문 있어"

오순희 서울대 독문과 교수. 사진/임귀주 기자
오순희 서울대 독문과 교수. 사진/임귀주 기자

(서울=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오순희(53) 서울대 독문과 교수는 독일 대문호 요한 볼프강 폰 괴테(1749~1832) 전문가이다. 석사학위와 박사학위 논문의 주제는 모두 괴테였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의 주제도 괴테다. 그는 괴테의 생애와 문학을 통해 현재를 읽어내고, 그의 작품 속에서 현대인에게 필요한 새로운 질문을 찾아내서 고민하는 우리에게 던진다.

그는 질문을 던지지만 해답은 제시하지 않는다. 인간과 시대의 변화에 따라 해답도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지금까지 던져본 적 없는 질문, 불편하고 낯선 질문을 스스로 계속해서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괴테의 대표작 ‘파우스트’와 소설 ‘친화력’을 중심으로 괴테와 그의 작품이 현대인에게 전하는 의미를 들여다봤다.

-- 괴테의 ‘파우스트’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왜 괴테인가요?

▲ 어릴 때부터 문학을 좋아했어요.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고 싶었죠. 그런데 중학교 3학년 때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읽고 너무 기가 죽었어요. 내가 소설을 쓰면 ‘공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학에서 독문학을 전공하면서도 괴테의 ‘파우스트’는 진짜 아니었어요. 강의 시간에도 작품 주제에 관해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강독(講讀)하는 정도여서 실망했죠. 독문학을 계속 전공해도 괴테는 아니었고, 괴테를 공부하더라도 파우스트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죠.

그런데 대학원에 가서 괴테를 공부하는데 괴테의 문학 세계가 굉장히 포괄적이었고 재미도 있었어요. 그리고 당시 좋아하던 문학 이론가인 게오르크 루카치가 괴테에 대해 쓴 책을 읽었는데 그게 결정적이었죠.

석사 논문만 괴테로 하고 박사 때는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야지라고 생각했는데 괴테와 그의 문학 세계가 공부를 하면 할수록 재미있어서 박사학위까지 하게 됐어요.

-- 괴테는 어떤 인물인가요?

▲ 괴테는 시민 계급 중 경제적으로 상류였죠. 당시 ‘금수저’였겠죠. 그런데 그는 금수저들이 흔히 갈 법한 길을 가지 않았어요. 아버지는 법학자, 관료 등 그 당시 가장 안정된 직업을 원했는데 그쪽으로 가지 않아 갈등이 컸어요. 주어진 조건을 누릴 수 있었을 텐데 여러 번 번민하고 갈등하며 새로운 길을 간 거죠. 물론 아버지의 뜻과 타협하기 위해 법대를 가게 되지만 집을 떠나 대학이 있는 도시로 갈 때는 무척 해방감을 느끼기도 하죠.

괴테는 문학만큼이나 정치, 미술, 자연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큰 족적을 남긴 사람이에요. 굉장히 많이 배우고 열심히 살았던 인물이죠. 그의 문학이 폭넓고 다양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겠죠. 그리고 이런 다양함은 바로 그가 살았던 시대가 굉장히 다양한 발전을 보여준 시대라는 데서 기인한다고 생각해요. 괴테의 시대에 영국에서는 산업혁명이 시작됐고, 프랑스에서는 시민혁명이 일어났죠. 어떻게 보면 시대를 잘 타고난 행운아죠. 괴테는 독일 문화사를 한 단계 끌어올린 주역 중 하나였죠.

-- ‘파우스트’가 세계적인 고전으로 꼽히는 이유는 뭔가요?

▲ 우리나라에 있는 ‘한’(恨)이라고 하는 정서는 다른 나라 사람이 보기에 이해하기가 어렵죠. 이것을 역으로 말하면 ‘한’은 우리 역사의 특수성을 보여주지만 세계적인 보편성으로 전환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말해주죠. 하지만 파우스트는 독일의 특수성을 담아내면서도 세계와 인간의 보편성이 있는 작품이에요. 괴테의 경험에 근거한 것이면서, 우리들의 이야기면서, 어떻게 보면 미래에도 할 수 있는 이야기이죠.

파우스트를 처음 읽으면 이해하기가 힘든데 읽다 보면 굉장히 잘 받아들여지는 작품이기도 하죠. 처음에는 지겹고 어렵지만 끝까지 읽으면 ‘아, 이건 내 얘기다’ 하는 게 있어요.

특히 사업가들이 파우스트의 삶이 자신의 삶과 닮았다고 많이 얘기하죠. 파우스트의 주제가 ‘한순간에 머무르지 말고 끝까지 발전하고 나아가라’거든요. 이 부분에서 굉장한 동질감을 느끼는 거죠. 다른 한편으로 19세기 서유럽 사람들은 ‘파우스트’야말로 ‘서유럽의 이야기다’, ‘서유럽의 본질이다’라고 했죠. 끊임없이 다른 세계로 나아가는 것, 나쁘게 말하면 제국주의를 작품에서 본 거죠.

-- ‘파우스트’는 현대인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 첫 번째는 ‘파우스트처럼 열심히 살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파우스트처럼 열심히 사는 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거죠. 예를 들어 첫 번째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명문대를 들어가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그럴 경우 인간성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라는 거죠.

파우스트는 거의 강박적으로 자기 발전에 몰두하죠. 그러다 보니까 다양한 문제들이 발생하게 되죠. 우리는 열심히 살아가는 게 삶의 본질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열심히만 살면 되나?’, ‘그것으로 충분하가?’ 라는 생각도 하게 되죠.

공부해서 출세하고 성공하라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1970~1980년대 세대라면 파우스트를 긍정적으로 봤을 확률이 높지만 요즘 세대 독자들은 오히려 과도한 발전에의 집착과 자기 성찰의 부족 등 파우스트의 문제점을 많이 읽어내죠. 파우스트를 고전으로 계속 칭송해 온 기성세대의 의식을 비판하기도 하는 거죠. 그래서 파우스트는 다양하게 읽힐 수 있어요.

한 영화를 다섯 번을 봐도 재미있다면 그 영화는 대단한 거죠. 그런 측면에서 파우스트는 보면 볼수록 재미있는 책입니다. 이게 바로 고전들의 특징인 것 같아요.

-- 파우스트에 등장하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는 어떻게 봐야 합니까?

▲ 메피스토펠레스는 악한 존재죠. 당시 악한 것은 존재하지 않거나 우리 바깥에 있는 것으로 여겼어요. 악한 것이 내 안에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죠. 내가 악행을 저지르는 것도 외부의 악마 때문이라고 설명했죠. 메피스토펠레스는 바로 우리 안에 있는 악마죠. 메피스토펠레스는 파우스트가 대적하는 악마이기도 하지만 내면에 있는 또 다른 자아라고 생각해요. 이 작품이 뛰어난 것은 바로 모든 문제가 내면의 문제로 해석될 수 있게 했다는 점이죠. 이런 관점은 당시에 굉장히 시대를 앞서간 발상인 거죠.

메피스토펠레스는 우리 안에 있는 폭력과 가학성에 대해 생각해보게끔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아이가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하면 이 사건을 그 아이의 문제로 국한해 생각할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우리의 문제로 볼 수도 있다는 거죠. 괴테가 악마는 외부에 있는 존재라는 교회의 논리에 수긍했다면 우리는 ‘파우스트’를 세계적인 명작으로 가지고 있지는 않을 겁니다.

오순희 교수. 사진/임귀주 기자
오순희 교수. 사진/임귀주 기자

-- 괴테가 진정 ‘파우스트’를 통해 말하는 것은 뭔가요?

▲ 괴테는 실제 자기가 무엇을 말하는지를 정확히 몰랐다고 해요. 괴테는 인간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예요. ‘내 어머니의 모든 것’이란 영화가 있는데, 정말 어머니에 대한 모든 것을 보여주는 것처럼 괴테는 인간에 관한 모든 것을 작품에 담은 거죠. 물론 해답을 주지는 않았어요. 파우스트처럼 사는 게 좋은지 아닌지,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될 것인지, 신은 정말 존재하는지, 인간은 정말 선한 존재인가, 인간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가 등 다양한 질문을 던지죠. 인간에 대해 던질 수 있는 모든 질문이 들어가 있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끊임없이 풀어야 하는 퍼즐과도 같은 거죠.

-- 대표 소설인 ‘친화력’은 현대의 통속적인 TV 드라마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 보통 괴테 시대의 작품을 보면 낯설고 이해하기 어려운데 ‘친화력’은 무난하게 읽히죠. 지금 어떤 소설가의 작품이 앞으로 200년 후에도 잘 읽힌다고 보장할 수는 없잖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친화력’은 굉장히 모던한 작품인 거죠.

이 소설에는 정답이 없어요. 보통 인문학이라고 하면 뭔가 정답을 주고 진리를 제시해주는 거로 알려졌잖아요. 그런데 사실 인문학은 해답을 주지는 않죠. ‘친화력’은 읽는 사람이 해답을 찾아야 하는 소설이죠.

저는 인문학이 세상에 대한 답을 보여줄 수 없다고 생각해요. 인문학자가 어떤 의미가 있는 질문을 찾기 위해 공부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세상에 대해 새로운 질문들을 던져야 하죠. 지금까지 던져본 적 없는 질문들, 불편하고 낯선 질문을 계속해서 찾아야 한다는 거죠.

-- ‘친화력’은 어떤 작품인가요?

▲ ‘친화력’이란 단어는 자연과학 용어에요. 괴테는 인간관계를 실험해본 거죠. 당시 사람들은 인간관계가 정해져 있다고 생각했어요. 조부모나 부모가 결혼의 의미와 결과를 정했죠. 친화력은 남녀의 관계를 실험해보고 한번 평가해보라고 하는 거죠. 아주 단순하게 이야기하자면 부부간의 갈등, 이혼, 불륜을 다루고 있어요. 이런 주제가 지금도 불편한데 괴테 시대에는 얼마나 낯설었겠어요. 특히 이 소설은 이혼의 필요성을 다루고 있죠.

친화력을 썼을 때 괴테는 결혼한 직후였어요. 괴테는 결혼한 이유에 대해 자기가 굉장히 어려울 때 도와줘서 감사하는 마음에 결혼했다고 해요. 괴테가 과연 아내를 사랑했는지 많이 궁금해하죠. 괴테는 결혼생활에서 길에서 우연히 본 여성이 마음에 들면 어떻게 하느냐고 묻고 있어요.

이걸 도덕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 남자는 당연히 나쁜 사람이죠. 하지만 도덕적으로 비난한다고 해서 현상이 사라지는 건 아니에요. 사랑의 감정이 장기간에 걸쳐 계속 동일한 강도로 유지되어야 도덕적일까요. 실제 우리 삶에서 사랑은 그렇게 유지되지 않죠. 하지만 아무도 이 문제를 건드리지 못해요. ‘친화력’은 그런 면에서 현대 안방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원형들을 갖고 있어요. 꺼내기 힘든 문제를 굉장히 고전적이고 품격 있는 언어로 그리고 있죠.

-- 사랑이 없는 결혼은 유지되어야 합니까?

▲ ‘친화력’에서 한 귀족 부부는 계약 결혼을 주장해요. 5년을 살아보고 다시 생각하고, 또 5년을 살아보고 다시 생각하자. 그렇게 세 번째까지 생각해봐도 괜찮다면 이건 천생연분이니까 계속 같이 살아야 한다고 말하죠. 당시로써는 굉장히 파격적인 사고죠.

물론 결혼해서 쭉 오래 살 수 있으면 행복하겠지만 모두 그렇지는 않죠. 상대방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결혼생활을 유지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 불행이죠. 그런데 지금 우리를 보면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살아야 한다’는 일반적인 도덕률 때문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힘든 거예요.

개인적으로는 꼭 감정만이 결혼의 전부는 아니기 때문에 웬만하면 ‘그냥 살자’는 주의에요. 하지만 감정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된다면 단순히 강요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죠. 자신의 감정을 성실하고 충실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어요. 소설 속 주인공들은 도덕적인 비난을 받겠지만 감정으로 접근하면 아무도 잘못한 사람이 없어요. 비난할 수가 없죠. 아무도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이렇게 됐을까를 묻고 있죠. 도덕적인 문제 제기는 ‘누구 잘못일까’, ‘그 사람은 어떤 책임을 져야 할까’를 질문하죠. 하지만 인문학은 ‘나쁜 사람은 없는데 서로 사랑하지 않아.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어려운 질문을 던지죠. ‘예’, ‘아니오’로 대답할 수 없는 답을 요구해요. 어떤 사람을 부도덕한 것으로 낙인을 찍은 다음에는 더는 논의를 진행할 수가 없는 거죠.

-- 그렇다면 사랑은 도대체 뭔가요?

▲ 중세 연구자들은 사랑이 중세에 발명됐다고 해요. 서로의 감정을 존중하고 서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런 감정과 느낌이 고대에는 없었다는 거죠.

그리스 신화에서 트로이 전쟁의 불씨가 된 헬레네를 보면, 그녀의 감정은 중요하지가 않아요. 영웅들이 헬레네를 어떻게 보는 지가 중요하죠. 쌍방향의 사랑이라는 것이 없었으니까요. 영웅이 헬레네를 납치해 부인으로 삼는 것을 사랑이라고 표현하지만 요즘 관점에서 보자면 이건 성폭력이죠. 사랑이란 개념이 지금과 달랐다고 할 수 있겠죠. 서로의 감정이 중요시되는 지금 같은 사랑의 개념은 중세에 기사도 사랑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시작된 거죠. 이런 것을 보면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 거예요. 사람에 따라서 사랑의 개념도 다른 거죠.

지금의 사랑은 내재해 있는 것이 아니라 인류 보편의 숭고한 가치라는 형이상학적인 믿음이 사회적으로 유전돼 온 거예요. 그런데 요즘 ‘혼족’이 늘어나고 이혼이 이전보다 훨씬 자연스러워지는 것을 보면 인간 보편의 속성인 것처럼 믿어왔던 사랑이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는 것 같아요. 부부가 운명처럼 만나서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을 하고 세대를 이어가는 이 전통이 이제 거의 말기에 다다른 거죠. 괴테는 이미 200년 전에 그런 이야기를 꺼낸 거죠.

-- 이혼율 증가, ‘혼족’ 등은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인가요?

▲ 아직 답이 주어져 있지 않은, 답을 찾아야 하는 문제인 거죠. 이건 아무도 경험해보지 않은 새로운 현상인 거예요. 어느 쪽이 옳은 건지도 모르겠고 제3의 길이 있는지도 모르는 거죠. 자신의 결혼생활도 불안할 수 있는데 ‘결혼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해답을 줄 수는 없겠죠. 이건 진정성이 없는 거죠. 또 인간이 달라졌는데 옛날부터 내려오는 보편적인 응답만 한다면 공허할 뿐이겠죠. 다만 분명한 것은 인간사회가 너무나 뚜렷하게 변하고 있다는 거예요. 우선 이런 변화를 정리하고 이를 근거로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가 뭔지를 찾아보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인문학은 답을 주는 학문이 아니라 문제를 제기하는 학문입니다.

--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뭔가요?

▲ 사실 인간의 본질적 가치를 점점 덜 느끼는 시대에요. 더는 만물의 영장도 아니고, 생물학적으로 인간과 동물의 유전자 차이가 큰 것도 아니고, 심지어 요즘은 지능도 알파고보다 떨어지죠.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 지구를 파괴해서 결국은 암이 다른 세포를 죽이고 사멸하듯이 인간도 그렇게 될지 모르겠어요.

‘내가 인간이야!’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닌 거죠. 하지만 우리는 인간이죠. 인간의 가치에 대한 신뢰와 그래도 인간적인 것이 중요한 본성이라고 말해주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우리가 남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이기적으로 산다고 생각하지만 결국은 인간에 대해 고민을 하며 살죠. 괴테는 바로 200년 전에 이런 고민을 했어요.

인간은 사랑하고 질투하고 외로움을 느끼는 존재입니다. 인간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인간적인 요소는 감정일지 모르겠어요. 알파고와 우리를 구분해주는 것은 알파고를 보면서 당혹해 하는 감정이죠. 그런 감정의 가치를 이야기해야 합니다.

오순희 교수. 사진/임귀주 기자
오순희 교수. 사진/임귀주 기자

-- 요즘 관심을 기울이는 연구 주제는 무엇입니까?

▲ 괴테의 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를 보면 영국의 산업혁명이 배경으로 깔렸어요. 산업혁명이 도래하지 않은 독일의 작가가 그것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그리고 독일에 도래하게 될 산업혁명은 어떤 문제점을 갖고 있는가를 얘기하죠. 이렇듯 정말 중요한 사회적 현상과 관련되는 연구를 해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섹슈얼리티를 연구하고 있어요. 성(性)이라는 것을 가지고 인간의 삶, 역사, 사회문제, 인간과 다른 동물과의 관계 등을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과학자, 19세기 독일의 작가, 그리고 21세기 한국사회의 사회적 문제들을 엮어서 설명해보고 싶어요.

dklim@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6/10/11 07:3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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