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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로 나가고픈 마음…' 조선 여류작가의 순한글 시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작은 동이에 물을 담으니 비록 깊지 않으나 / 물고기 때때로 떴다 잠겼다 마음껏 하네 / 그것을 보니 결코 동이 속에 있을 물건이 아니니 / 활발하여 스스로 강호로 나가고픈 마음이 있네'

19세기 중반 여성 시인 기각(綺閣)의 순한글 시 '어항 속 물고기'다. 작가는 작은 물동이에 갇힌 물고기에 자신의 자아를 비춰본다. 규방에서 벗어나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싶은 욕망, 이를 가로막는 현실을 표현한 것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은 570돌 한글날을 맞아 기각의 여성의식이 드러나는 순한글 시 3편을 7일 소개했다. 기각은 오빠가 지은 시 4편을 포함해 249수로 이뤄진 시집 '기각한필'을 남겼다. 한시를 짓고 음을 한글로 적은 뒤 우리말로 다시 풀어쓴 탓에 한시집인데도 한자는 등장하지 않는다.

'머리털은 성성하나 마음은 소년이고 / 푸른 물은 곤곤하여 세월만 흐른다 / 평생 절로 남아의 뜻이 있으되 / 다만 안방 가운데 여인네 머리쓰개 쓴 것을 탄식하노라'

'우음(偶吟·우연히 읊조리다)' 중 일부다. 작가는 나이가 들어감을 스스로 인식하면서 지난 삶을 더욱 안타까워 한다. 바깥 세계를 향한 관심과 이를 억누르는 관습의 충돌은 말년의 시 '자탄'(自歎)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하늘이 내 재주를 내심에 반드시 쓸 데 있건마는 / 예로부터 현철한 이는 다 마음을 수고로이 하였다 / 여자로 태어난 것도 한인데 또 이룬 것이 없으니 / 희끗희끗한 머리털 누가 막으리오 / 손으로 가슴을 만지며 앉아 길게 탄식하니 / 쇠잔한 등잔불 깜빡거려 밤은 이미 깊었다'

2007년 한중연 장서각에서 발굴된 '기각한필'은 정절이나 열녀를 주제로 한 작품 대신 일상과 한시 학습에서 떠올린 시상을 옮겨담았다. 기각은 여성의 주체성을 표현했다는 점에서 허난설헌·김만덕·김금원 등에 버금가는 여류작가로 평가된다.

강문종 한중연 선임연구원은 "19세기 중반을 살다간 한 여성을 통해 억압된 유교적 이데올로기 속에서 서서히 형성돼 가는 여성의 주체적 내면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dada@yna.co.kr

기각 '자탄' [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기각 '자탄' [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6/10/07 11:55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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