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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난민정책에 맞서다 추락한 헝가리 '빅테이터'(종합)

송고시간2016-10-03 04:07

운동권 출신에서 우향우…국민투표 무산으로 입지 좁아져


운동권 출신에서 우향우…국민투표 무산으로 입지 좁아져

(제네바=연합뉴스) 이광철 특파원 = 유럽연합(EU)의 난민할당제를 반대하며 국민투표를 시행한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는 이번 투표 결과로 헝가리 내에서는 물론 EU에서도 정치적 입지가 매우 좁아지게 됐다.

동유럽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 EU 전체의 '공적'이 된 그는 실업, 교육, 복지 등 국내 문제를 덮기 위해 난민 문제를 국민투표로 넘겼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같은 강한 지도자를 꿈꿨던 그는 인종차별 논란까지 불러온 캠페인 때문에 극우 정치인이라는 꼬리표만 남게 됐다.

오르반 총리는 난민할당제 찬성 의견이 높으면 사퇴하겠다고 말했지만 투표한 유권자의 95%는 압도적으로 반대해 그의 사퇴가 현실화하지는 않을 전망이다.

1998년 중도 좌파 연립 집권당을 무너뜨리고 서른네 살의 젊은 나이에 헝가리 총리로 취임했던 그는 애초 운동권으로 정계에 진출했다.

1988년 부다페스트의 반체제 대학생들이 꾸린 청년민주동맹 창립회원이었고 헝가리 공산정권의 감시 대상 인물이었다.

1989년 헝가리 반소련 봉기 때 처형된 임레 나지 전 총리의 시신 이장식에서 연사로 나서 소련군 철수와 다당제 총선 등을 요구하는 등 당시 목숨을 건 정치적 행보를 보였다.

소련이 붕괴하고 1990년 첫 총선에 나선 그는 진보를 표방하면서 원내에서 21석을 얻었다.

중산층 표를 얻지 못하면 집권할 수 없다는 판단에 그가 총재를 맡았던 청년민주동맹은 '우향우'하며 보수 정당으로 변했다.

1998년 첫 총리에 취임한 오르반은 2002년 중도좌파인 사회당에 총선에서 패배하며 총리직에서 물러난다.

개발독재 이미지가 강했던 오르반에게 피로감을 느꼈던 유권자들은 온건한 이미지로 어필했던 페데르 메드제시가 이끄는 사회당을 택했다.

그는 제1야당 총재 신분으로 돌아가서는 공무원 수 감축, 법인세 인상 정책 등을 추진하고 거짓말 파문을 일으켰던 쥬르차지 페렌츠 총리의 퇴진 운동을 주도하고 불신임 투표를 밀어붙이기도 했다.

2008년에는 정부 의료개혁에 반대하는 국민투표를 성사시켜 연립 정부를 무너뜨렸다. 헝가리에서 치른 4번의 국민투표 중 유일하게 성사된 국민투표였다.

2010년 국제통화기금(IMF) 체제에 헝가리가 편입되면서 오르반은 8년만에 총선에서 승리해 두번째 총리직에 취임했고, 2014년에도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며 세 번째로 총리직에 오른다.

그는 젊은 시절 소련군 철수를 공개적으로 주장하고 사회당에 정권을 내줬을 때는 총리 불신임 투표를 성사시키는 등 타고난 정치적 감각으로 고비마다 주도권을 쥐었다는 평을 받는다.

그는 공개석상에서 난민을 '독(毒)'이라고 불렀고 "단 한 명도 받아들일 수 없다"며 EU에 불만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투표 정국을 주도했다.

'빅테이터'(빅토르와 독재자를 뜻하는 dictator를 합성한 말)라는 별명까지 얻으면서 EU 집행부와 맞서는 승부수를 던졌지만 이번에는 EU와 갈등이 확대될 것을 우려한 유권자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추락했다.

투표하는 헝가리 총리
투표하는 헝가리 총리

2일(현지시간) 시행된 난민할당제 반대 국민투표에서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가 투표하고 있다. 그는 이번 투표를 성사시키면서 빅테이터(빅토르와 dictator의 합성어)라는 별명을 얻었다. [AP=연합뉴스]

minor@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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